제목 화장장 1곳당 연 5600명, 죽을 때도 경쟁이다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8.27 10:15


                                                            화장장 1곳당 연 5600명, 죽을 때도 경쟁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세금과 죽음이다.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어쩌면 가장 공평하게 맞이하는 운명이다.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죽음은 개인과 가족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여러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매년 많은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들이 사망한다. 우리 관심은 주로 급격하게 감소하는 출생아 숫자에 쏠려 있지만 사망도 최근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23만명이 태어났고 35만2700명이 사망했다. 1981년 86만명에서 2023년 23만명까지 줄어든 출생아 수에 비해 사망자는 1970년대부터 오랫동안 연간 25만명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고령화의 진전에 따라 연간 사망자 수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2020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섰으며 2023년에도 35만2000명을 기록하였다. 통계청 추계로는 연간 사망자가 계속 늘어 2029년 40만명을 넘어서며, 2072년에는 69만명에 이르다.

출생아 수에서 사망자 수를 뺀 것을 자연 증가라고 표현하는데, 대한민국의 자연 증가가 +(플러스)를 기록한 마지막 해는 2019년(7566명)이었다. 이후 자연 증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020년 인구는 3만2611명이 감소하였고 2022년에는 12만3753명으로 감소 폭이 급격히 커져 이제는 매년 10만명 단위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사망자 증가에 따른 인구 감소 규모도 시간이 갈수록 빨라져 2040년 한 해에만 27만명이 감소하고, 2060년에는 59만명이 감소할 것으로 통계청은 추산한다. 매년 중소 도시 한 곳의 인구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망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 삶보다 죽음이 가깝고 일상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죽음을 미리 이야기하거나 논의하는 것은 피한다. 하지만 죽음과 관련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빠른 변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점철된 대한민국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도 한국적이다. 1990년대만 해도 매장이 주류였고 화장(火葬)은 낯설었다. 하지만 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화장 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화장 비율은 2005년 50%를 넘어선 이후 2022년에는 91.7%까지 상승하였다. 하지만 전국 화장장 61곳에 설치된 화장로는 2018년 347개에서 2022년 382개로 증가하는 데 그쳐 화장을 치르는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2028년까지는 전국 어디에도 새 화장로를 만들 계획이 없기 때문에 화장을 치르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일본은 화장장 1400곳에 화장로가 5320개 있어 2022년 기준 화장장 1곳당 약 1130명(전체 158만2033명)의 장례를 담당했지만 우리는 같은 해 1곳당 5608명(전체 34만2128명)을 화장했다. 치열한 경쟁이다.

화장이 아닌 매장도 사후에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설 묘지 및 사설 묘지에 설치된 분묘의 설치 기간은 30년으로 정해져 있고, 이것이 지나면 개장하여 화장하거나 봉안해야 한다. 2022년 말 기준으로 공설 및 사설 묘지에 설치되어 있는 분묘는 144만2000기인데 이들 가운데 2001년 이전에 설치된 분묘는 2030년이 시한이기 때문에 조만간 개장해야 한다. 물론 1회에 한해 30년을 연장할 수 있어 당장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분묘 역시 영원한 안식처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공간도 가정이 아닌 의료 기관이 된 지 오래다. 2022년을 기준으로 사망자의 74.8%는 의료 기관에서 사망했고 가정에서 죽음을 맞이한 경우는 16.1%에 불과했다. 그마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해도 사후에 병원을 방문해 의사를 만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망을 신고하려면 어떤 이유로 사망해야 했는지 의료적 판단을 받은 후 사망 진단서나 사체 검안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송윤혜

다행스러운 점은 자살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4.1명으로 OECD 평균 11.1명을 훌쩍 뛰어넘는 세계 1위였지만 2014년의 27.6명과 비교해 보면 많이 낮아졌다. 한때 10만명당 120명에 이르던 80대 이상 고령층 자살률이 60명 수준으로 낮아진 데 따른 것이다. 기초 연금 확대를 비롯한 경제적 지원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죽음의 파도가 점점 거세지면서 우리의 인식과 제도도 변화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존엄사가 2018년 합법화되면서 연명 의료 사전 거부 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들이 230만명을 넘어섰다. 존엄사를 넘어서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 찬성 여론도 80%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고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형제자매에게 상속 재산 일부를 배분하도록 하였던 민법의 유류분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한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속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빨라지는 죽음의 속도에 비해 우리 사회의 변화와 준비는 여전히 느리다.

일본은 다사(多死) 사회 이행을 준비하고 있다. 2019년부터 후생노동성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한 인생 회의(ACP)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죽음을 대비해 스스로가 원하는 의료와 돌봄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가족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의료진 등과 논의하면서 생의 마지막 단계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죽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과 남겨놓은 과제는 계속된다. 모두가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죽음이라는 단계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국가적으로 고민할 때가 되었다.

                                                                                    <참고문헌>

  1. 최준영, "화장장 1곳당 연 5600명, 죽을 때도 경쟁이다", 조선일보, 2024.8.26일자. A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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