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별기고>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2주년을 경축하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4.30 01:59

 

                                        <특별기고>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의거 92주년을 경축하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향토사학자, 칼럼니스트) 대산 신상구


                                                1.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업적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구공원(虹口公園)에서 일본 군인들을 향해 도시락 폭탄을 투척한지 92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본명 尹禹儀, 1908-1932)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오전 일제가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天長節)과 상해 점령 전승기념 축하행사를 진행하는 도중 단상을 향해 물통 폭탄을 투척해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와 상해 일본거류민단장인 가와바타 사다쓰구(河端貞次)는 사망하고, 중국 공사 시게미쓰 마모루(重光 葵)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으며,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중장은 왼쪽 다리가 잘리었고, 제3함대 사령관인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郞) 중장은 오른쪽 눈을 잃었다.

  중국 국민당 장개석(蔣介石, 1887-1975)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극찬했고, 이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로 많은 피해를 당한 일제가 보복으로 임시정부를 밀착감시하며 혹독한 탄압을 가하자 임시정부는 상해, 항저우, 전장, 청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으로 무려 4000Km를 이동하며 광복군을 창설하고 무장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거사 직후 체포 연행되어 5월 25일 상하이 파견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다가 그해 11월 일본으로 호송되어 1932년 12월 19일 이시카와현 금택형무소 교외 미쓰코치 공병작업장 내 산골짜기에서 잔혹하게 총살되어 25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윤봉길 의사의 항일독립운동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군 덕산의 파평 윤씨 문중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0세 되던 해에 덕산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했다.

  그 후 동생 윤성의(尹聖儀)와 함께 마을의 최병대(崔秉大) 선생에게 한학을 공부했고, 1921년 14세부터는 예산군 덕산면 둔2리 노곡 16길에 위치해 있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매죽헌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의 후손인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에게 사서삼경과 한시를 배웠다.

  1923년 오치서숙 시 대회에서 장원을 했고, 1928년에는 시집인 ‘오추嗚推)’ · ‘옥수(玉睡)’ · ‘임추(壬椎)’ 등을 발간했다.

  1926년 오치서숙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국사와 신학문을 공부했으며 농민 운동에 관심을 갖고 오치서숙 동창들과 야학을 개설했다.

  1927년 20세 때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 청소년들에게 한글, 역사 등을 가르치면서 수업의 교재로『농민독본(農民讀本)』3권을 저술했다.

  1929년 부흥원(復興院)을 설립해 인기리에 '토끼와 여우'를 공연하기도 했다.

  윤 의사는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월진회(月進會)를 조직, 이를 기반으로 농촌 자활운동을 펼쳐나갔다.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1930년 3월 6일 새벽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란 비장한 출향가를 써놓고 삽교역에서 기차를 타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백범(白凡) 김구(金九, 본명 金昌洙, 1876-1949) 선생의 지도하에 항일 독립운동을 했다.

  그리하여 윤봉길 의사는 문무를 겸비한 애국지사로 항일독립운동가, 낭만적인 시인, 농촌개혁가, 농민계몽가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현행 국사교과서에는 홍구공원 폭탄투척만 간단하게 기록해 놓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윤봉길 의사를 단지 테러리스트(terrorist)로만 기억하고 있어, 국사편찬위원회 주도로 국사 교과서의 윤봉길 의사 관련 기록을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제92주년 기념행사

  2024년 4월 29일 오전 10시 예산군과 매헌 윤봉길 월진회가 충의사에서 주관한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제92주년 기념식은 김태흥 충남도지사를 비롯해 최재구 예산군수, 정창식 해군 윤봉길함 함장, 윤여두 월진회장, 도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해 의거 기념 다례와 추모가 합창 등에 이어 도중도에서 윤봉길 의사 선양 유공자 표창 등 순으로 진행됐다.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매헌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 제92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는 모습


  김태흥 충남도지사는 “상하이 의거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선생의 피 끓는 마지막 독립투쟁이었다”며 “숭고한 헌신은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광복의 길을 비추는 빛이 되었다”고 윤봉길 의사를 추모했다.

  이어 “올해부터 어느 시군에 사시든지 전국 최고 수준의 참전명예 수당을 드리고, 독립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의료비 지원한도도 없앴다”며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의 명예로운 삶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 “항일의병의 중심지인 충남은 2027년까지 내포에 의병기념관을 건립해 애국의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고 제대로 기억하겠다”며 “선생의 뜻을 받들어 더 강한 나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필자 대산 신상구 국학박사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 2호 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한민족의 원대한 꿈 노벨상 수상전략』(2023), 『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6권.

  .주요 논문 :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 129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천손민족중앙회본부 연수원장, 대덕문학회․백수문학회 회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의원, 평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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