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슈토베의 언덕에는 8월의 태양이 작열했다. 85년 전의 강제 이주, 추위와 기아로 숨진 고려인 공동묘지(사진 위)가 중앙아시아의 강렬한 태양을 받아내고 있었다. 지난 11일, 고려인 출신 독립운동가 15인을 기리는 추모의 벽(사진 아래)을 이 묘지 앞에 세웠다. /우슈토베(카자흐스탄)=김태헌 TV조선 기자
우슈토베의 언덕에는 8월의 태양이 작열했다. 85년 전의 강제 이주, 추위와 기아로 숨진 고려인 공동묘지(사진 위)가 중앙아시아의 강렬한 태양을 받아내고 있었다. 지난 11일, 고려인 출신 독립운동가 15인을 기리는 추모의 벽(사진 아래)을 이 묘지 앞에 세웠다. /우슈토베(카자흐스탄)=김태헌 TV조선 기자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에서 300km 떨어진 우슈토베 마을의 바슈토베 언덕.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 언덕에는 마른 풀만 간간이 보였다. 언덕 아래에는 묘지 200여 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러시아어로 적힌 묘 사이 녹슨 쇠 십자가에 서툰 한글로 적은 묘비가 섞여있었다. 1950년대 생을 마감한 고려인들의 묘다.

  언덕 아래에는 85년 전 고려인들이 파놓은 토굴 터가 남아있었다. 2m 깊이에 사람 세 명이 누우면 가득 찰 정도 너비였다. 고려인들은 토굴 바깥에 나무로 벽을 세웠고 갈대로 지붕을 만들었다. 찬 바람이 불면 그대로 맞아야 했고 비가 오면 갈대 지붕에서 물이 샜다. 김 게르만 알파라비 카자흐스탄 국립대학교 교수는 “고려인들은 마을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맨손으로 토굴을 파 추운 겨울을 버텼다”고 설명했다.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고려인들은 여기에 왔다. 고려인 17만여 명은 그해 가을 연해주에서 6500km 떨어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역에 도착했다. 이들은 7km를 걸어 바슈토베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을 버티기 위해 토굴을 팠지만, 첫해 겨울에만 1만7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대부분이 어린아이와 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2년 뒤 바슈토베 주변에 집단농장 20여 개가 생겼고 그제야 고려인들은 토굴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우슈토베 전경 / 우슈토베(카자흐스탄)=김태헌 TV조선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우슈토베 전경 / 우슈토베(카자흐스탄)=김태헌 TV조선 기자


  광복 77주년을 나흘 앞둔 지난 11일. ‘카자흐스탄 고려인 독립운동가 추모의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추모의 벽 가운데에는 이동휘, 최재형, 김경천 등 카자흐스탄 고려인 독립운동가 15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지난해 한국으로 유골이 봉환된 홍범도 장군의 이름도 포함됐다. 홍 장군을 비롯해 벽에 이름을 올린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를 주무대로 활동했다. 본인이 직접 강제 이주된 이름도 있고, 후손이 우슈토베에 온 이름도 있다.

  추모의 벽 제막식에는 독립운동가 후손 13명도 참석했다.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의 외고손자 허 다니일(13)군은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1400km 떨어진 누르술탄에서 우슈토베까지 왔다. 허군은 최근 고조할아버지의 자서전을 읽기 전까지는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허군은 “사람들이 독립 영웅을 알고 기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조국 카자흐스탄과 역사적 조국인 한국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장군은 신흥무관학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다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199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같은 날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을 맞아서 한-카자흐 우호 기념비 제막식도 진행됐다. 기념비에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양국 교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기념문이 적혔다. 이날 행사에는 박내천 주알마티 총영사와 오가이 세르게이 고려인협회장, 이사베코브 에르란 카라탈군 군수와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김부섭 남양주 현대병원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장 등 양국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다.

우슈토베 지도
우슈토베 지도


  조선일보와 통일문화연구원, 남양주 현대병원은 방치되어있던 바슈토베를 카자흐스탄 고려인을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어 오고 있다. 2019년 동족여천(同族與天 동포를 하늘과 같이 섬기라)이라는 문구가 적힌 고려인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공원 조성에 착수했다.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토굴 복원 작업도 진행 중이다. 2028년까지 고려인 추모의 숲과 함께 둘레길도 만들 계획이다.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후손들이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노고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슈토베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5년째 카자흐스탄에 ‘통일과 나눔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고려인들을 상대로 한글, 문화 교육을 지원한다. 매년 30명에 달하는 고려인이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 넬리 카자흐스탄외국어대학교 교수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고려인 4세, 5세들이 자기 뿌리를 알고 싶어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에 사는 고려인은 10만8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장과 상·하원 의원을 배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1923년 창간된 한글 신문 ‘선봉’을 모태로 한 고려일보와 설립 90주년을 맞은 고려극장을 운영하는 등 전통문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193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살던 고려인 17만여 명이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추위와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역에서 7㎞쯤 떨어진 바슈토베는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부터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다. 우슈토베는 이 나라 말로 세 개의 언덕, 바슈토베는 큰 언덕이란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