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파란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떠나고픈 계절 여름입니다. 뱃사공이 노를 저어 가며 부르는 노래를 ‘뱃노래’라고 하는데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뱃노래들이 있어요. 은은한 물결과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한 음악의 특성상, 클래식 음악에서 뱃노래는 주로 낭만파 작곡가들이 즐겨 다뤘는데요. 피아노 선율로 그려낸 뱃노래들을 알아보겠습니다.
◇곤돌라 뱃사공의 노래에서 유래
처음으로 소개할 곡은 독일의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의 작품입니다. 클래식 작곡가들의 뱃노래는 대부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라(베네치아 시내의 물길을 운행하는 배)’와 연관돼 있어요. 뱃노래는 곤돌라의 노를 젓는 뱃사공이 흥얼거리던 노래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멘델스존은 곤돌라를 노래한 작품 여럿을 남겼는데요. 그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담은 피아노 소품(짧은 음악 작품)을 여러 곡 작곡했는데 여기에 ‘무언가(無言歌)’, 즉 ‘가사가 없는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한 개의 곡집(曲集·악곡을 묶은 책)에 여섯 곡씩 모두 여덟 개의 곡집으로 소개된 48곡의 무언가 중 멘델스존은 ‘베네치아 곤돌라의 노래’라는 같은 제목으로 곡을 3개 썼습니다. 세 곡 중 한 곡(작품 19의 6)은 시종 우울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또 다른 곡(작품 30의 6)은 좀 더 감상적인 느낌으로 애절한 기분을 표현합니다. 두 곡보다 후반기에 쓰인 곡(작품 62의 5)에서는 사색적인 느낌이 강하게 나타나죠.
다소 처진 분위기의 멘델스존의 세 곡과 달리 달콤한 멜로디로 가득 차 있는 뱃노래도 있어요. 폴란드의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뱃노래 작품 60이 그 곡이죠. 이 곡이 완성된 1846년 여름은 그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의 불화가 시작된 시기였어요. 불행한 이별의 예감이 커지고 있었지만, 작품 속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하고 은밀한 속삭임을 그린 것처럼 들립니다.
뱃노래를 그린 곡 중에는 세 박자 계열의 곡이 많은데요. 배의 흔들림이 세 박자에 가깝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쿵짝짝’이나 ‘하나, 둘, 셋’을 떠올리면 됩니다. 그런데 쇼팽은 이 곡에서 부드럽게 흔들리는 느낌의 세 박자가 아니라 호흡이 긴 8분의 12박자를 선택해 잔잔한 물의 흐름을 만들어냈어요. 연인의 공간인 듯한 작은 배의 움직임이 마음의 흐름을 따라 흔들리는 듯 들리지요. 처음 등장하는 1주제는 유연함과 풍성함을 지녔고, 중간부의 2주제는 좀 더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느낌입니다. 중간부의 끝 부분에 등장하는 보조 주제는 사랑의 즐거움과 그 환희를 자연스레 나타내는데, 이 주제는 절정 부분인 클라이맥스에서 화려하게 반복되며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가 만든 뱃노래 역시 세 박자가 아닌 여유 있는 네 박자로 우울한 기분을 만들어내죠. 이 곡은 사계절을 다룬 모음곡 ‘사계’ 중 6월에 해당하는 곡입니다. 사계는 12개월의 서로 다른 자연을 표현한 열두 곡인데, 차이콥스키가 활동하던 당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되던 음악 잡지 ‘누벨리스트’의 의뢰로 1875년 12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1년간 연재한 피아노 소품곡이에요. 그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6월 ‘뱃노래’는 그 차분한 정서가 밤의 분위기를 나타낸 야상곡(夜想曲) ‘녹턴(nocturne)’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슬픔으로 차 있는 첫 대목과 달리 중간부에서는 약간의 율동성도 느껴지는데요. 이 모음곡에는 각각의 표제와 함께 잡지에 실릴 때 같이 소개됐던 시구(詩句)들이 붙어 있어요. 그중 6월에는 차이콥스키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러시아의 시인 알렉세이 플레셰예프의 시가 함께합니다. ‘강가로 나갑시다 그곳은/ 물결이 우리의 발에 키스하는 곳/ 비밀스러운 슬픔을 간직한 별빛이/ 우리의 앞을 밝혀줄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도 즐겨 작곡해
뱃노래는 감각적인 화성과 다채로운 색채감을 피아노 음악에서 나타내는 데 익숙했던 프랑스 작곡가들도 즐겨 작곡했어요. 그중 뛰어난 가곡과 실내악을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한 가브리엘 포레(1845~1924)는 뱃노래를 13곡 작곡했는데, 특유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와 비밀스러운 매력으로 넘치는 악상(樂想) 때문에 훌륭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어느 곡이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화려한 피아노의 기교가 잘 드러나는데요. 쇼팽의 영향을 받아 감성적인 느낌이 강한 1번 작품 26(1880), 서정적이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이 웅장한 규모로 나타나는 5번 작품 66(1894) 등이 널리 사랑받습니다.
두 사람이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뱃노래도 있어요.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한 프랑스의 음악가 클로드 드뷔시(1862~1918)는 물과 바람, 비와 바다 등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썼는데요. 그가 만든 뱃노래도 친숙한 악상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1889년 초연된 ‘작은 모음곡’은 피아노 ‘연탄’(連彈·한 대의 피아노를 두 사람이 연주하도록 만든 작품)용으로, 모두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어요. 그중 첫 번째 곡의 제목이 ‘조각배로’라는 이름의 뱃노래예요. 긴 호흡을 지닌 아름다운 선율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이 곡은 기교적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피아노를 어느 정도 배운 두 사람이라면 함께 연주에 도전해볼 만합니다.
망망대해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작은 배를 묘사한 독특한 분위기의 뱃노래도 있어요. 드뷔시의 후배 격인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모음곡 ‘거울’(1905) 중 세 번째 곡인 ‘대양 위의 조각배’는 서정적인 멜로디나 부드러운 배의 움직임 등과는 거리가 먼데요. 처음에는 단조롭게 흔들리는 파도와 조각배의 모습을 나타내다 점차 불규칙하고 거칠게 변화하는 바다의 모습을 현란한 피아노의 음향으로 표현하며, 자유로운 구성 안에서 예측불허의 대자연을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위의 작품 중 드뷔시와 라벨의 작품은 관현악곡으로 편곡돼 연주되기도 하죠. 다양한 뱃노래 중 내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 들으며 이번 여름의 더위를 식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1. 조유미, "서정적인 멜로디, 은은한 선율로 흔들리는 물결 노래했죠", 조선일보, 2022.8.1일자. A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