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도 대전 시민… 함께 사는 세상 되길”
하루 4번 순찰하며 건강 살피고, 김밥-생수-핫팩 등 물품 지원
작년 센터 입소한 노숙인 115명… 그중 88명 자활 훈련 받고 자립
올해 지원 끊겨 관리 소홀 우려
지난 달 29일 오후 11시 20분경 대전 동구 삼성동 북부교 아래. 문재진 대전시노숙인종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가 산책로 옆에 있는 텐트 안으로 은박지에 싼 김밥 한 줄과 500mL 생수 한 병, 핫팩 두 개를 집어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기온은 영하 3도, 북부교 다리 밑을 지나며 더 날카로워진 칼바람이 텐트를 뒤흔들었다. 텐트 안에는 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10년 넘게 노숙하고 있다. 남성은 주름이 깊게 팬 손으로 음식과 핫팩만 받을 뿐 말이 없다. 문 씨는 “10년 동안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마음이 열릴 때까지 돌보는 게 우리 일”이라고 말했다.
● 하루 4번 길거리 노숙인 만나
대전시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2004년 노숙인상담보호센터로 시작했다. 오전 9시, 오후 2시, 6시, 11시 이렇게 하루에 4번씩 센터(동구 중동) 주변 4km 정도를 매일 걸으며 노숙인을 살핀다. 대상자가 있을 법한 곳을 물색하고, 필요한 것을 지원하며 기관으로 찾아오게 유도하는 ‘아웃리치’ 방법이다. 노숙인들이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 적극적인 복지로 다가가는 것이다.
취침 시간과 맞물린 오후 11시 순찰은 노숙인 현황이나 상태를 꼼꼼히 알 수 있다. 이날 ‘희망동행’ 근로자 4명을 포함해 6명이 순찰에 나섰다. 희망동행 근로자들은 노숙 경험이 있기도 해 노숙인의 심리와 거처를 꿰고 있다. 노숙인들은 대전역 근처 원도심에 집중돼 있다. 현재 센터가 파악한 거리 노숙인은 54명(동구 43명, 중구 11명)이다. 희망동행 근로자 A 씨(59)는 “24시간 열려 있고 바람도 피할 수 있는 지하도는 명당이다”라고 말했다.
이날도 동구 목척교 지하도에는 노숙인 14명이 종이상자를 깔고 몸을 뉘었다. 한 명이 감기약이 필요하다고 하자 문 씨가 약 한 알을 건넸다. 그는 “일부러 감기약을 모았다가 한 번에 먹으면 사고가 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 것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다리 밑, 하천 변, 공중화장실, 지하도를 지나 대전역에 이르자 하루가 넘어갔다. 오후 11시에 시작한 순찰은 날을 넘겨 오전 1시경 끝났다. 노숙인에게 나눠주려고 챙겨간 김밥 40줄, 생수 40병, 핫팩 70개는 동났다.
● 노숙 시민도 함께 사는 대전 사람
센터 간판에는 ‘노숙인’이란 단어가 없다. 2016년 7월 지금 자리로 사무실을 옮길 때, 노숙인 시설이란 소문이 퍼져 주변에서 현수막을 내걸고 입주를 반대했다고 한다. 직원들이 건물주에게 사정한 끝에 어렵게 월세를 얻었다. 사무실에서 300m 떨어진 곳에는 보호센터가 있다. 2층 침대 8개가 있는 남성용 방과 이불을 펴고 잘 수 있는 여성용 방, 식당이 있다. 여기 간판에도 ‘노숙인’은 빠졌다. 직원은 총 18명(종합지원센터 11명, 보호센터 7명)이다. 계약직 등을 뺀 직원 11명이 쉼 없이 24시간 센터를 지키며 노숙인 순찰, 응급구호, 생활·자활 지원, 주거복지사업 등을 한다. 김의곤 센터장은 “우리가 포기하면 노숙인은 갈 곳이 없다는 각오로 버틴다”고 말했다.
노숙인 중에서도 정신질환이나 몸이 아픈 고위험군은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올해는 관련 예산이 끊겼고 담당 직원도 정리됐다. 보건복지부가 ‘노숙인 위기관리사업’을 없앴기 때문이다. 정혜원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고위험군 노숙인 관련 사건이 터지면 시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고 수습하는 데 사회적 비용도 든다. 예방과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센터 사무실 곳곳에는 ‘노숙시민도 함께 사는 대전 사람’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지난해 센터에 들어온 노숙인은 총 115명이고, 88명이 자활 훈련을 받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노숙 생활을 끝낸 것으로 집계됐다.
<참고문헌>
1. 김태영, "노숙인도 대전 시민… 함께 사는 세상 되길”, 동아일보, 2024.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