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특별기고>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업적을 추모하고 관광자원화해야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3.08.26 00:52

 

                                <특별기고> 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업적을 추모하고 관광자원화해야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문학평론가) 대산 신상구

 

                                                 1, 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업적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는 송도 기생 명월 황진이(黃眞伊), 부안 기생 이매창(李梅窓), 허난설헌(許蘭雪軒), 신사임당(申師任堂), 김호연재(金浩然齋), 김부용(金芙蓉), 옥봉(玉峯) 이숙원(李淑媛)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남녀, 적서, 반상 차별이 극심했던 조선의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후처 소생의 여성으로 태어나 양반 관료의 후처로 들어가 힘든 삶을 영위하다가 버림을 받고 기녀로 생업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온갖 차별과 박해와 지방 수령들의 강제 추행과 성폭력을 당해 불행한 삶을 어렵게 이어가다가 요절(夭折)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들은 천부적으로 인물이 곱고 발랄하고 영특했다. 그리고 글 재주가 뛰어나고, 가무를 잘 하며, 악기를 잘 다루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회에 참가해 회원들과 교류하면서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걸출한 한시로 창작해 상재함으로써 여류 위향문학(委巷文學)을 꽃피워 한국 문학사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옥봉 이숙원은 조선시대 명종9년인 1554년에 옥천의 전주이씨 가문에서 양녕대군의 고손자인 자운(子雲) 이봉(李逢)과 소실 사이에서 서녀로 태어났다.

 

                                          

                                  『조선의 여류시인 미인도』에 그려진 이옥봉(출처 :옥천향수신문)

 

  옥봉의 부친 이봉은 조선 왕가의 후손으로 의병장, 사헌부 감찰, 옥천군수, 괴산 현감을 역임한 정통 관료였다. 그는 놀기를 좋아하고 박식했으며 시문에 능해 당대 문장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등과 어울려 한시를 서로 주고 받으며 즐겼다. 특히 옥천에 있을 때에는 중봉(重峯) 조헌(趙憲), 정립(鄭雴) 선생과 교유했던 문객으로 풍류를 즐기며 호탕하게 살았다고 한다.

  옥봉은 어릴 때부터 청순하고 용모가 단정하고 지혜롭고 총명했다. 특히 문재가 있어 시작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서녀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이봉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 이봉은 옥봉의 글재주를 기특히 여겨 해마다 책을 사주었다. 그래서 옥봉은 비록 서녀였지만 자신이 왕실의 후예라는 점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가사보다는 시 창작에 심혈을 기우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17세에 첫 혼례를 치렀지만 남편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요절한 까닭에 옥봉은 집으로 돌아와 슬픔에 잠겨 독수공방한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그녀는 이 비극을 극복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한시로 풍류를 누리다가 단종 복위운동에 뛰어들었고, 곧 시귀나 짓는 선비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었다.

  옥봉은 어느 날 시화모임에 나가 운명의 상대인 운강공(雲江公) 조원(趙瑗)을 만난다. 조원에게 한 눈에 반한 옥봉은 조원을 직접 만나 사랑을 고백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하고 상사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이봉이 직접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과 그의 장인어른인 신암(申菴) 이준민(李俊民)을 차례대로 찾아가 옥봉을 첩으로 받아 달라 간청한 끝에 조원과의 혼인을 성사시켜 옥봉은 1564년에 조원의 첩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옥봉이 꿈에 그리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옥봉이 누명을 쓰고 잡혀간 백정 아내의 부탁으로 그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한시인「위인송원(爲人訟寃)」를 써줬고 이 시를 통해 백정을 구할 수 있었으나 ‘아녀자가 조정의 일에 끼어들어 남의 귀와 눈을 번거롭게 했다’는 명목으로 조원에게 원망을 사 그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옥봉은 남편 조원에게 버림받아 외로운 처지였지만 항상 자기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정결하게 관리하며 지조와 정절을 지켰다. 그리고 전 남편 조원을 원망하지 않고 그리워하며 대표작「몽혼(夢魂)」을 비롯해「채련곡(採蓮曲)」,「영월도중(寧越道中)」,「만흥증랑(謾興贈郞)」등 수많은 한시를 창작해 상재했다.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져『명시종(明詩綜)』,『열조시집(列朝詩集)』,『명원시귀(名媛詩歸)』등에 작품이 실렸다.

  옥봉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시인이었던 허난설헌과 친교했고, 남편과의 생이별로 인한 고독과 기다림의 애절함을 소재로 서정적인 한시를 창작해 이별과 정한의 위향문학을 꽃피웠다.

  옥봉은 지금 허난설헌, 황진희, 이매창, 신사임당과 버금가는 조선 제일의 천재 여류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인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은 시비평집인『청창연담(晴窓軟談)』(1650)에서 “근래 규수의 작품으로는 조원의 첩인 이옥봉의 것이 제일이다. 고금의 시인 가운데 이렇게 표현한 자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1618)은 "옥봉 시는 맑고 굳세다. 화장끼가 없다. 누님 난설헌과 동급"이라 썼다. 또한 조선후기 시평가로『순오지(旬五志)』를 저술한 현묵자(玄默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은 옥봉 이숙원을 “국조제일(國朝第一)의 여류시인이다.”라고 칭송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이옥봉은 중국의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알려진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서 그녀의 시는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선과 중국과 일본에서 펴낸 시집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나란히 실려 있다.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志士)의 기개가 엿보이는 옥봉의 시에 감탄했다고 전한다.

  이옥봉은 출신과 성별을 뛰어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재능을 가졌으나 결국 시대에 의해 꺾여버린 꽃으로 남게 됐다. 그녀가 남긴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잡(玉峯集) 1권만이 조원 고손인 조정만이 쓴『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나라가 어수선하던 때 옥봉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는데, 1660년 경 죽었다는 희미한 기록만이 전하고, 묘는 아쉽게도 없다.

                                                    2. 옥봉 이숙원의 추모사업 현황

  옥봉이 운강공 조원으로부터 버림받은 지 400년만인 2017년 5월 11일 임천 조씨 종중에서 경기도 파주에 이옥봉 묘단비를 세웠고, 2022년 음력 10월 14일에는 옥봉 이숙원의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2022년에 본격적으로 옥봉 이숙원의 한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논문 공모 등 문학축제 개최와 선영에 옥봉 시 공원 조성을 추진하는 등 재조명에 나섰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이옥봉 묘단비 전경

 

  서울문화재단은 2015년 12월 23일 이옥봉의 한시인「몽혼」을 현대 무용으로 창작해 공연했고, 서울모테트합창단에서는 2016년 7월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102회 정기연주회를 열고 제2부에서 이옥봉의 네 편의 한시「영연」.「비」,「추사」,「영설」을 작곡한 모음곡을 여성합창단이 불러 관객들에게 기쁨과 평화, 휴식을 선물해 주었다.

  은미희의 소설『나비야 나비야』, 조두진의 소설『이옥봉의 몽혼』, 장정희의 장편소설『옥봉』, 하응백이 번역한 시집『이옥봉의 몽혼』과 허경진의 시집『옥봉 죽서시선』은 이옥봉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23년 8월 7일 오후 옥천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관리팀 우수정 주무관의 증언에 의하면, 옥봉 이숙원의 고향 옥천에는 아직까지 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추모사업회가 창립되지 않아 옥봉 시비가 건립되지 않았고, 추모 문학제도 개최되지 않아, 옥봉 이숙원의 정체를 잘 알고 기억하는 옥천 주민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앞으로 머지않아 옥천문학회 주관으로『옥봉 이숙원 전집』과『옥봉 이숙원 평전』을 발간하고, 옥천읍 중심 광장에 옥봉 이숙원의 시비와 문학관을 건립해야 한다. 그리고 옥천군청 문화관광과가 옥봉 이숙원의 생가터를 찾아 생가를 복원하고, 옥봉 이숙원 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또한 옥천예총이 옥봉을 주제로 한 장편 소설을 참조하여 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업적을 연극과 영화로 제작하고 추모 예술제를 개최하여 관광자원화함으로써 옥천의 침체된 지역경제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옥천군청 홍보팀 주무관이 정지용 시인과 함께 옥봉 이숙원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전국에 널리 홍보하여 옥천을 문향(文鄕)으로 더욱더 빛내주길 기대한다.

                                                      <필자 신상구 국학박사 약력>

  .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출생

  .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 경제학사, 충남대 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 석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국학박사 2호

  .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민속학자, 칼럼니스트

  . 통일문학상, 전국 향토문화 논문공모 대상(국무총리상) 수상

  . 학술논문「태안지역 무속인들의 종이 오리기 공예에 대한 일고찰」등 125편.

  . 대표 저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도서출판 근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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