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충북 옥천 출신의 김규흥은 상해임시정부를 파괴하는 밀정이었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대산 신상구
'밀정'은 우리 항일독립운동 진영의 치명적 정보를 일제에 은밀히 빼돌린 사람을 뜻한다.
그동안 학계와 언론계 통틀어 밀정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는 사실상 없었다. 자료가 많이 부족한 데다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상찬하는 데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할 판에 '우리 안의 어두운 이야기'를 파헤친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KBS탐사보도부가 8년간 8여장에 달하는 일본과 중국 기밀문서를 수집해 찾아낸 밀정 혐의자만 895명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이들 밀정 가운데에는 안중근 의사의 동지 우덕순, 김좌진 장군의 비서 이정, 의열단장 김원봉의 부하 김재영 등 현재 독립유공자로 분류돼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정은 김좌진 장군과 함께 1920년 청산리전투를 수행한 독립군 대원으로서 김좌진의 막빈(비서) 역할을 맡은 최측근이다. 그는 독립군 간부들의 용모와 특징, 김좌진과 김원봉의 향후 합동 의거 계획, 군자금 모금 상황 등에 대해 매우 세세하게 일제에 밀고했다. 그리고 이정의 밀고 내용을 보면 이홍래의 모금 활동에 대한 것도 있다
우덕순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만일에 대비해 채가구역에서 이토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도 1920년대 들어 이상 행적을 보인다. 친일단체인 조선인민회 하얼빈지부장을 맡은 것이다.
일제는 1919년 4월 11일 상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밀정을 동원해 집요하게 임정 붕괴 작전에 돌입했다. 그 중심에는 1918년부터 2년간 조선군 총사령관을 지낸 우쓰노미야 다로가 있었다.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 1861.4.27-1922.2.15)는 일본 제국의 육군 대장이다. 영국 공사관 부관, 참모본부 2부장, 제7군단장, 제4사단장, 조선군 사령관, 군사참의관을 역임하였다.
우쓰노미야 다로가 우선 포섭한 사람은 당시 독립운동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던 범재 김규흥이다. 김규흥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청명학교와 흥화실업은행을 세우고 신해혁명에 참여하는가 하면 독립 운동 토대를 만들어서 임시정부 형성에 큰 역할을 하여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우쓰노미야 다로는 김복(실명 김규흥)을 다섯 차례 만난 후 임시정부를 파괴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KBS는 김규흥이 우쓰노미야에 보낸 편지 내용을 확인했다. 김규흥의 친필 편지로, 한국에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우쓰노미야 사령관 각하에게."
"임시정부에 200명이 있었지만 대부분 귀국하고 60명만 남았다, 이중 극렬분자는 40명"이라고 보고합니다.
이어 "이들을 회유하기 위해선 2, 30만 엔이 필요하다"며 밀정비를 요청합니다.
김규흥의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밀정 의심 행적이 처음 밝혀진 겁니다.
[배경한/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 "경악스러웠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연구자들의 연구를 기다려야 되지, 조급하게 이쪽이냐 저쪽이냐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아무튼 2018년 10월에는 충북 옥천에 김규흥 기념비가 세워졌고, 2018년 12월에는 김규흥 평전 1,500권이 발간되어 전국 도서관에 배포되었다.
상해 일본 총영사관은 끊임없이 밀정을 생산해 내는 이른바 '밀정 공장'이었다.
[쑨커즈/중국 푸단대 사학과 교수 : "일본총영사관은 당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지휘소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집요하게 임정 내부에 밀정을 침투시켰고 김구 선생의 경호원까지 밀정으로 포섭했다.
세 차례에 걸쳤던 김구 암살 시도.
모든 공작에 일제는 밀정을 동원했다.
[한시준/단국대 사학과 교수 : "김구 선생은 심장 있는 데 관통을 당하고,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매수돼서 저격을 하게 됐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가 있기 10년 전부터 지속적인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1912년 작성된 일본 기밀문서, 밀정이 된 홍범도의 부하가 밀고한 내용이다.
"홍범도는 러시아 말을 타고 있다. 완장에는 붉은색 선 두 줄이 둘러져 있고, 견장은 청색이며 '통령감'이라고 적혀있다."
"홍범도가 사는 곳은 혜산진 대안 일리에서 약 30리 떨어진 신약수동이다."
한국에 은밀히 파견된 홍범도 부하들의 구체적인 신상정보까지 낱낱이 담겨있다.
밀정은 독립운동을 와해시키려는 일제의 핵심 전략이었다.
<참고문헌>
1.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2. [탐사K/앵커의 눈]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일제의 밀정 공작
<필자약력>
.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 아호 대산(大山) 또는 청천(靑川), 본관 영산신씨(靈山辛氏) 덕재공파(德齋公派)
.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 한국상업은행 종로구 재동지점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조치원중, 조치원여고, 삽교중, 한내여중, 천안북중, 천안여중, 태안중, 천안중 등 충남의 중등학교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2019),『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5권.
. 주요 논문: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97편
. 주요 발굴 : 민촌 이기영의 천안 중앙시장 3·3항일독립만세운동 기록(2006)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2007)
. 수상 실적: 예산군수 감사장, 대천시장상(2회), 천안시장상(2회),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2회) 교육부장관상(푸른기장),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문학 21』시부문 신인작품상,『문학사랑』·『한비문학』 문학평론 부문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 칼럼/기고 활동: 동아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경향신문·한국일보·서울신문·서울일보·신아일보·문화일보·전국매일신문·시민신문·천지일보 등 중앙 일간지, 대전일보·충청일보·충청투데이·중도일보·동양일보·금강일보·중부매일·충남일보·중앙매일·충청타임즈·충청매일·대전투데이·충청신문·충북일보·우리일보·시대일보·중부일보·강원도민일보·국제신문·영남일보·경북일보·전북도민일보·무등일보·한라일보·제민일보·대한일보· 등 지방 일간지, 충남시사신문·천안일보·충남신문·천안투데이·아산투데이·아산시사신문·예산신문·홍성신문·태안신문·태안미래신문·보령신문· 내포시대·진천신문·증평신문·옥천신문 등 주간신문, 아산톱뉴스·천안일보·디티뉴스·대전뉴스·충청뉴스·충청뉴스인·시티저널·충북인뉴스·굿모닝충청·예산뉴스 무한정보·괴산타임즈·코리안스프릿 등 인터넷신문 등에 수백편의 칼럼 기고.
. 방송활동: 30년 간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환경운동 전개, KBS 중앙방송국 라디오 <논술 광풍>프로 출연, STB 상생방송 <홍범도 장군> 프로 출연, KBS 대전방송국·MBC 대전방송국·CJB 청주방송국 라디오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발굴> 프로 출연.
. 대전 <시도(詩圖)> 동인,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충남민주시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회원, 한국국민윤리교육회 회원, 천안향토사 연구위원,『천안교육사 집필위원』,『태안군지』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동양일보 동양포럼 연구위원, 통합논술 전문가, 평화대사, 대덕문학회 회원, 백수문학회 회원, (사)대한사랑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