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번역 완료·공개
일제에 저항하거나 가능성 있는
790명 인물정보 세세하게 담아
충남지역 인물로는 129명 확인
약명부 수록인 중 168명만 서훈
“국가유공자 서훈 근거 가치 높아
일제가 남긴 블랙리스트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朝鮮人要視察人略名簿)’가 번역·분석을 마치고 공개됐다. 현재 5개 도(道)의 약명부만 남아있는데 충청권에선 충남지역 인물 129명이 확인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번역한 일제의 약명부에 포함된 이들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사회주의자·민족주의자·노동운동가는 물론 외국인·일본인 심지어 사상전향자에다 밀정까지 다양하다. 식민통치나 침략전쟁 수행을 저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약명부에 올라 집중 감시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일제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다.
◆일제의 블랙리스트 ‘약명부’
약명부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지난 1945년 3월 조선의 각 도에서 생산해 일본에 보낸 문서를 하나의 서류철로 묶은 것이 약명부다. 약명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일본에서 노획해 국립문서보관소(NARA)에 보관하다 돌려준 문서 사이에 섞여 있다가 알려지게 됐다.
약명부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지시로 당시 조선의 13개 도에서 작성했는데 그중 충남을 비롯해 전남·전북·경남·함북 등 5개 도 약명부만 남아있다. 일제는 약명부에 자신들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해 함북 280명·전남 206명·전북 131명·충남 129명·경남 44명 등 모두 790명의 인물 정보를 세세하게 담았다. 특히 인물 정보에 이름·창씨명·별명(이명)·출생일·본적·거주지·얼굴과 신체 특징·시찰요점 등을 기록했는데 사실상의 블랙리스트인 셈이다.
◆왜 만들었나?
일제가 패전의 종말로 향하던 태평양전쟁 무렵인 1944년 12월 일본 내각회의는 ‘조선과 대만 동포에 대한 처우 개선’이란 안건을 결정했다. 당시 식민지 조선인은 징용·징병 등 갖은 형태의 강제동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유롭게 일본에 가고 싶어 할 사람도, 갈 수 있는 사람도 있을 리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전쟁에 식민지 조선인 협력을 더 끌어내기 위한 처우 개선 방안의 하나로 1945년 3월 1일부터 내지도항(內地渡航) 제한제도를 폐지했다.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에 자유롭게 건너가지 못하도록 한 제약을 해제한 것이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조선인이 일본에 건너가는 것이 자유로워지자 일제로선 요시찰인 관리에 허점을 메워야만 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각 도에 약명부 제작을 지시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감시망 오른 독립운동가, 그리고…
일제는 한 번이라도 식민통치에 저항했던 사람은 잊지 않고 약명부에 올려놓고 감시했다. 충남 약명부에는 129명의 기록이 남았다. 그중 충남 예산 출생 박헌영이 눈에 띈다. 박헌영의 소재를 모르던 일제 경찰 당국은 그의 본적지인 충남에서 요시찰 명부를 관리하게 했다. 그는 약명부에 ‘화요회계 공산주의자로서 러시아와 상하이에서 활약,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6년, 집요한 투쟁경력을 가진 자’라고 적혀 있다.
1930년대 아나키즘 계통의 노동 운동을 펼친 아나키스트 이윤희도 약명부에 올랐다. 일제는 1945년 3월 그가 국내에 들어와 거주 중인 것을 파악해 약명부에 남겼다.
한경석·한만석에 대한 내용도 흥미를 끈다. 약명부에 이들 주소와 본적이 비슷하게 기재돼 있는 점이 그렇다. 한 사람은 아산군 영인면 신화리 371번지, 다른 한 사람은 372번지로 나오는데 두 사람이 형제 혹은 사촌일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일제는 충남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민병길·민성기가 그들이다. 민병길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 1942년 순국했고 해방 후 애국장을 수훈한 인물이다.
민병길 다음으로 기록된 이는 그의 아들 민성기다. 그는 한반도 상공을 최초로 비행한 조선인 첫 조종사 안창남과 함께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약명부에는 ‘1945년 3월 중국 중경에서 비행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시찰요점이 남았다. 부자(父子)가 함께 일제 요시찰인으로 감시 대상이 된 것인데 아쉽게도 아버지와 달리 아들인 그는 아직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약명부가 요시찰규정에 관한 문헌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제 사찰제도의 전모와 수준을 드러내고 있음을 중요한 가치로 손꼽는다. 이와 함께 주목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약명부 수록 인물 중 168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사실이 그것이다.
대다수가 항일운동 행적이 있음을 감안하면 전체 790명 중 서훈이 소수에 그치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인데 추가조사를 통한 발굴 보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권시용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본보와 통화에서 “약명부는 그 자체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조선인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기록으로 남은 독립운동가들을 국가가 서훈할 근거로도 활용할 가치가 높다”며 “약명부에 이름이 올라와 있다는 건 1945년 해방 때까지도 이들이 일제에 저항하고 있었다는 증거로 적어도 해당 인물이 밀정 등 협력자로 돌아서지 않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독립유공자 서훈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참고문헌>
1. 이준섭, "[일제가 남긴 블랙리스트 해부]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에 남은 충남의 독립운동가", 금강일보, 2023.3.13일자.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