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9세 일기로 타계
반세기 지역문학 밭 일궈
박용래 시비 건립 앞장서 주도하고
대전문학상 제정·대전문학 창간도
시력(詩歷) 58년, 왕성한 창작의욕과 높은 작품성을 구현하며 대전문단의 거목으로 굳건했던 백강(白崗) 조남익 시인이 먼 여행을 떠났다. 반 세기 지역 문학의 밭을 새로이 일구고자 누구보다 혼신을 다한 그였기에 남은 이들의 어깨가 한없이 무겁다.
백강 조남익 시인이 지난 11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1935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고인은 현 고려대학교인 국학대학 문학부 국문학과 졸업한 뒤 시와 평론을 쓰기 시작해 1966년 ‘현대문학’에서 ‘수고리’, ‘북촌리 타령’ 등으로 추천받아 문단에 데뷔했다.
교사와 교장까지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은 고인은 그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높은 창작 의욕을 보였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후배들도 퍽 흉내 내기 어려운 작품성을 구가했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세계엔 고향의 향토적 취향이 생동감 있게 묻어났다. 시로 삶의 본질적 탐색을 중심으로 한 아득한 실존의식의 지평을 열었고, 때론 민족의 상고사(上古史)를 무대로 시의 정취를 펼치기도 했다. 무릇 시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은 끝까지 흔들림 없었다.
이규식 한남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고인의 시 세계는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작품보다도 깊이있었고 사색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었다”며 “특히 고인은 후배들의 등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등 작품활동뿐만 아니라 지역 문단 발전에 의욕적으로,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고인은 후배들에게 새롭고 큰 발자국을 남긴 은인이다.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박용래 시비 건립을 앞장서 주도한 이가 바로 그였으며, 35년 전 갓 태어난 대전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조직의 기틀을 다지기에도 바쁜 와중에 대전문학상을 제정하고 ‘대전문학’ 창간을 주도한 장본인이 백강 조남익 시인이었다. 그가 평생을 기울여 남긴 저서만 ‘산바람소리’를 비롯해 20여 권. 충남문화상(1970년)·공산교육상(1997년)·국민훈장 석류장(1999년)·정훈문학상(2004년)·시예술상(2007년)·윤동주문학상(2010년)·금강일보문학상(2017년)·한국문학상(2019년) 등은 지역 문화 창달과 문학 인재 육성에 진심이었던 그가 걸어온 뚜렷한 발자국이었다. 선배 문인을 존경하고 후배 문인을 사랑하는 기풍을 누구보다 꿈꿨던 그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지역 문단의 가슴이 시리기만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리헌석 오늘의문학사 대표는 “후배들에게 문학 창작을 통한 교훈과 정서적 오롯함을 몸소 실천하시고 떠나셨다”며 “얼마 전 아파트 곁의 보문산 걷기도 힘들어 집에서 쉬고 계시다는 전화를 주셨는데 이제 평안한 곳에서 부디 강건하시길 바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원준연 대전문인협회장은 “대전 문단의 큰 별이 승천한 건 하늘나라에서는 영광이겠으나 우리에게는 크나큰 아픔으로 다가온다”며 “이제 지상에서의 무거운 짐은 모두 내려놓고 가족, 문우들과 좋았던 추억만 기억하며 고이 잠드시기를 두 손 모아 빈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