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서원 이정우 원장, 동·서양 아우른 첫 ‘세계철학사’ 완간
“지금까지 저술된 철학사들은 대개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적 테두리를 전제한 철학사들이다. 대부분이 ‘서양 철학사’이거나 ‘중국 철학사’, ‘한국 철학사’, ‘인도 철학사’ 등인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1년 출간된 〈세계철학사 1: 지중해세계의 철학〉의 여는 말에 담긴 내용이다. 우리 말로 된 수많은 철학 대중서가 있고 가끔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대중에게 알려진 서양 철학자들의 이론에 중점을 맞춘 ‘서구 철학사’ 중심으로 쓰여졌다. 철학자인 이정우(65) 소운서원 원장은 동·서양으로 양분된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철학사를 쓰는 것은 “철학 자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유로써 미래의 시간을 준비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동·서양을 아울러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철학사를 정리한 이 원장의 방대한 작업이 최근 끝을 맺었다. 2011년 1권이 나온 도서출판 길의 세계철학사 시리즈가 얼마전 〈세계철학사 4 : 탈근대 사유의 지평들〉을 끝으로 완간됐다. 한 명의 학자가 대중서이자 학술서로서 세계철학사를 써내려간 것은 한국 학자로서는 처음 시도한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일이다.
이 원장은 2000년도에 대중을 상대로 철학아카데미를 운영할 때부터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서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당초 3권으로 기획됐던 〈세계철학사〉 전체의 구도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두고 인류 문명의 사유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1·2권에서는 각각 지중해세계의 철학과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다루며 이른바 동과 서의 철학을 비교해 논했다. 근대와 현대를 한꺼번에 다루려 했던 3권이 분화하면서 3권(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에서는 근대철학을, 이번에 출간된 4권에서는 탈근대적 철학으로서의 현대철학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4권은 “탈-근대적 철학으로서의 현대 철학이 전통 철학의 한계를 넘어 전개된 근대 철학을 이어받되 그것이 여전히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를 음미해보는 것”이라는 여는 말로 시작한다. 이 원장은 “근대 철학의 빛나는 한 성취가 자연철학(자연과학)과 그것이 응용된 새로운 문명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나, “현대의 철학자들은 근대 문명이, 나아가 그것을 떠받친 근대 과학기술의 세계관이 근본적인 문제점을 담고 있다고 판단”한다.현대 철학자들이 근대 과학기술의 근저에 존재하는 기계론, 정신-신체 이원론, 환원주의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생성존재론(형이상학)이 탄생했다. 4권에서는 이 생성존재론의 의미를 짚는다. 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철학이 분열돼 철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으로 분화된 과정을 살핀다.
〈세계철학사〉는 20세기 정치철학을 논하고 새로이 숙고해야 할 과제들을 던지며 13년간 이어온 대장정의 끝을 맺는다. 4권에서는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파시즘) 총 세 갈래의 이념을 중심으로 20세기 정치철학을 논했다. 또 20세기 후반의 철학이 일구어 낸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타자의 철학을 푸코와 레비나스, 데리다, 들뢰즈·가타리의 사유를 중심으로 검토했다.
이 원장은 마지막 장에서 ‘글로벌’과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존재론을 요청하는” 현실 속에서 미래를 위해 숙고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하며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우리는 기계의 인간-되기와 인간의 기계-되기를 동시에 목도”하고 있다. 또 인간은 철저하게 ‘효율성’과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계산돼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간주된다. 세계철학사는 이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어떤 생태철학과 주체성이 요구되는지를 거듭 묻는다. “이제 우리는 지난 세기의 위대한 성취인 타자의 사유를 이어받되, 우리가 마주치고 있는 새로운 현실을 개념화하기 위해 이들의 사유를 더 먼 곳까지 밀고 나가야 할 시간의 지도리 위에 서 있는 것”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1. 이혜인, "우리 철학자 손으로 동·서양 아우른 첫 ‘세계철학사’ 완간", 경향신문, 2024.3.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