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선비정신
선비는 500년 역사의 유교국가 조선(朝鮮)이 길러내고자 했던 이상형의 유교적 인간상(人間象)이다. 그것이 유교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선비는 우선적으로 유교적 소양을 갖춘존재여야했다.유교적소양은유교경전의공부를통하여얻어진기본지식이나학문을 이른다. 그런 점에서 선비는 일단 유교적 지식인(知識人)이다. 이 점은 충남정신의 다른항목들에 비해 선비정신이 지니는 변별적 측면일 수 있다. 대개 충효정신이나 절의정신,또는 예의정신, 개척정신을 말하면서 유교적 지식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비정신에서 유독 유교적 소양을 요구하는 것은 조선조 선비의 기본 학문이 성리학이었고, 성리학은기본적으로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입장이강했기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선비는 또한 그 배워서 아는 바를 실천하지 않으면 선비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교가 요구하는 선비는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해야 한다는 ‘지행일치(知行一致)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한 성찰 때문이고, 또 세상에 대한 공적 책임의식 때문이다. 일찍이 증자가 말하기를, 선비[君子]는 날마다 자기 자신을 세 가지 문제로써 반성하는데, 그것은 “남을 위하여 일을 하면서 내가 혹 충성스럽지 못함 은 없었는가?(爲人謀而不忠乎), 친구와 더불어 사귀면서 내가 혹 신의를 저버린 바는 없었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 스승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내가 혹 익히지 못함은 없었는가?(不習乎)”등3가지라했다.이렇게선비는먼저자기자신을돌아다보면서철저한자기반성을한다.스스로에대한걱정,즉우환의식(憂患意識)인것이다.그러나선비의우환의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가족으로 이웃으로 그리고 국가와 천하로 이어진다.『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선비의 관계 영역을 살필 수있다. 선비는 이러한 단계적 관계망에서 평생토록 인(仁)을 구현 할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있다고믿고,그노력은죽고서야끝난다고생각하는존재이다.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지 않을 수 없으니, 맡은 바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마치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논어』,『태백편』)
이것이 선비가 세상을 위하여 걱정하는 책무와 기간이니 그야말로 ‘임중도원(任重道遠 : 임무는 중하고 갈 길은 멀다)’이다. 이것은 선비가 다만 충효를 행하고 절의와 예의를 실천하는 것과는 또 다른 측면이다. 선비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존재일 뿐 아니라 이렇게 자신과 이웃과 세상에 대해서 끝없는 우환의식으로 세상의 교화(敎化)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따라서선비는스스로모범적인삶을실천하여남의귀감이되어야한다.그리하여겉은부드러우면서도 속은 의지가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인간이어야 하고, 검소하고 근검해야 한다. 또한 예스럽고 의롭고 청렴하고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예의염치(禮義廉恥)의 도덕적 실천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옛 선비는 예의와 의리를 중시했고 청렴하고 불의에굽히지 않는 굳센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선비의 기본자세이고 책무였다. 소타고다니던 ‘청백리 재상’ 맹사성(1360~ 1438)은 그런 모범적인 선비였다. 그러나 학자관료의 선비는 또한 변통개혁에도 앞장서야 했다. 송시열의 「기축·정유 봉사」나 이유태의 「기해봉사」는그대표적사례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선비는 또한 숙련되고 품위 있는 교양인이었다. 선비는 기본적으로 예(禮)와 음악을 알고, 활쏘기와 말타기를 하고 또 글씨를 잘 쓰고 수리에도 밝아야 했다. 이른바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가 그것이다. 그것이 향약에도 수록되어 있음을보면 상당히 일반화된 선비의 기본 요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선비는 시서화(詩書畵)를 교양필수로 여겼다. 이것은 이상적인 선비상이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지식인이었음을 알게 한다. 조화로운 인격체, 이것은 오늘의 사회에서도요청되는바람직한인간상이다.
충남의 선비들은 대개 돈암서원(김장생 김집 송시열 송준길), 충현서원(이존오 이목 성제원 서기 조헌 김장생 송준길 송시열), 노강서원(윤황 윤문거 윤선거 윤증) 등 충남의 대표적 서원에 배향된 유현들과, 김장생의 고제인 이유태와 김집의 고제인 유계, 그리고 인물성이동론의 한원진과 이간, 한말의 의병장 최익현 등으로 대표될 수 있다. 또한 죽림서원에 배향된 6현 중 4현인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등저명한유현들도비록충남인은아니지만충남인들이존중하여 함께 향사하였던 도학(道學)의 정통이 되는 선비들이다.(죽림서원에 함께 배향된 나머지 2현은 김장생과 송시열이다.) 돈암서원과 죽림서원에 배향된 유현들은 한결같이문묘(文廟)에배향된유현들이다.
<참고문헌>
1. 충청남도평생교육진흥원,『충남학의 이해』, ㈜디자인시티, 2014.1.24. pp.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