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본이 한국보다 25대 1로 노벨과학상을 많이 받은 진짜 이유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3.11.27 16:36

   

                                   일본이 한국보다 25대 1로 노벨과학상을 많이 받은 진짜 이유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은 한국인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고산준봉(高山峻峯)을 방불케 할 정도로 높이 솟아 있다. 실제로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 이후 일본 과학계를 이끈 지도자들의 열정과 이를 실행하고자 했던 관료들,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연구자들 덕분에 아시아에서 서구의 과학기술을 제일 먼저 받아들여 과학 선진국을 이룩한 유일한 나라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열강들의 식민지 지배 과정을 지켜보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고도의 과학기술을 통한 부국강병만이 일본이 서구열강들의 식민지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서구의 과학기술을 무수정 도입한 후 국가가 주도하여 이를 응용하고 개량하는 과정을 거쳐 일본화 했고, 그다음 이를 철저히 분석하여 원천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이 아시아 최초로 근대국가에 진입하고는 열강 국가에 편입한 후 한국을 식민지지배하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은 미래를 걱정하여 '학교졸업자사용제한령'(1938.8)을 공포하여 문과계 학생들은 전쟁터에 보냈지만 이공계 학생들 대부분은 징용을 면제해 주었다.

  군인 출신으로 포츠담 선언 수락 당시 일본 총리였던 스즈키 간타로(鈴木貫太郎, 1868-1948)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배는 '과학전의 패배'라고 보았다. 당시 일본 지도부에서도 패전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일본 과학의 낙후로 분석했다. 1945년 10월 20일자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는 필리핀에서 포로가 된 야마시타 도모유키(山下奉文) 대장이 미국 기자가 패배 원인을 물었을 때 영어로 'science'라고 외마디를 외쳤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마치 한국이 포항제철을 건설할 때 '제철 보국'을 외쳤듯이 '기술 보국'을 외쳤다. 패전 다음 해인 1946년 전쟁에 대한 학자들의 책임 추궁이 시작되었지만 여기에는 정치와 경제, 역사와 지리, 철학, 농업 분야의 학자들에 국한하였을 뿐 자연과학자와 기술자들에게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흔한 농담 중 하나가, 미국은 전문 직종인 구성비가 변호사 9인에 엔지니어 1인이라고 하지만, 일본은 엔지니어 9인에 변호사 1인이라고 할 만큼 기술을 강조하고 기술자를 대우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한국은 어떨까. 이공계나 기초과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R&D(연구개발) 투자 비율은 2022년 기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이 4.96%로 이스라엘 다음의 2위인데, 일본은 OECD 평균인 2%에도 못 미치는 1% 전후에 불과했다.

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 역시 세계 1위로 일본보다 많다. 과학기술 분야 논문은 연간 6만 편이 나온다. 일본은 약 10만 편으로 우리보다 많지만, 인구는 2.5배 많고 경제 규모는 우리의 세배에 달하는 일본과 상대적으로 계산해 보면 우리가 많은 편이다. 최소한 데이터만 보면 한국이 일본이나 주요 OECD 국가들에 비해 결코 과학 연구와 관련한 정량 평가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국은 왜 이렇게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일까.

  2023년 현재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미국적 취득자 3명 포함 29명으로, 노벨경제학상 외에는 전 분야에서 골고루 노벨상을 배출했다. 평화상 1명, 문학상 3명을 제외하면 25명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장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이 노벨평화 수상으로 인해 전 나라가 떠들썩하였던 기억마저 이제는 아련할 뿐, 23년이나 흘렀지만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2023년 현재까지 수상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배제대 일본어과 강철구 교수는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노벨과학상을 25대 1로 압도적으로 많이 받은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진단하고 있다.

  첫째, 한국의 R&D는 D인 개발비, 즉 산업계의 응용 분야와 기술 개발에 집중되어 왔고, 일본은 R인 리서치, 즉 기초 과학에 집중해 지원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고도성장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국가 경제 개발에 도움이 되는 응용연구에 집중하는 개도국형 모델을 선택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당장 수출을 우선하는 제품 생산에 도움이 될 만한 응용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하다 보니 기초 연구나 이론 연구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기초 연구 투자 비중은 2006년 23.1%에서 2016년 39.0%로 증가했고, 또 2008년부터는 기초 연구비가 응용 연구비를 추월했다. 그런데 기초 연구비의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아쉬움이 남는다. 순수 기초 연구비가 30%, 목적 기초 연구비가 66%에 이른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비율보다는 정부가 목적을 갖고 계획한 연구프로젝트에 고용되어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 과학자들은 자신이 국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하청 업체와 같다고 불만이 높다.

  이제는 기초과학, 순수과학에 투자해도 될 만한 분위기와 환경, 그리고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기초 과학에서의 열매를 맺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둘째, 한국의 입시 현황에서도 문제가 드러난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이 구조조정을 할 때에도 자연과학을 담당하는 이과를 폐과시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지방대의 경우 물리학과나 수학과, 화학과 등은 벌써 없어진 지 오래다. 최근 3년간 서울대 이공계 학생과 카이스트 학생 중 15%가 의·약대에 재입학하기 위해 자퇴를 했다고 한다. 2023년 입시에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SKY'로 불리는 한국 최상위 대학의 정시 모집에 합격한 약 4660명 중 28.8%에 해당하는 1343명이 등록을 포기하고 의학 계열로 지원했다.

  정부는 2023년부터 반도체 특성화 대학 8곳을 선정해 540억 원을 지원하고, 이들 대학에서 매년 400명 이상의 반도체 우수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똑똑하다는 인재들은 의대, 치대, 한의대로 몰린다. 서울대 물리학과보다 지방 촌구석에 있더라도 의대가 더 인기가 있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나와도 의대, 과학고를 나와도 재수해서 의대, 전국에 있는 의대․치대․한의대를 다 채우고 나야 그 다음 서울대 공대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의대․치대․한의대를 졸업한 수재들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만큼 연구에 몰두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왜냐면 대한민국의 0.1%의 의대 진학자들이 압구정동 성형외과 골목으로 진출하려고 하지 결코 의학이나 생리학의 연구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초 과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지 않고는, 또 이공계 출신이 사회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국민들 간에 형성되지 않고서는 기초 과학의 중요성은 한낱 구호에만 머무를 것이다.

  셋째, 과감한 연구비 투자다. 기초 과학에서는 특히 자본의 투입이 중요하다. 2002년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2002년 수상)와 가지타 타카아키(梶田隆章, 2015년 수상) 교수는 일본 기후현(岐阜縣) 가미오카 광산(神岡?山) 지하 1000m에 설치된 지름 39.3m, 높이 41.4m의 초대형 실험 시설에 5만t의 물을 담고 있는 '슈퍼 가미오칸데'를 활용하여 중성미자의 질량을 발견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지하 1000미터 지점에 설치한 이유는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방사선의 간섭 없이 물리 현상을 관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0년에는 8000억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하이퍼-가미오칸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슈퍼 가미오칸데 보다 더 큰 검출 시설로, 지름 74m, 높이 60m의 거대한 탱크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이 탱크에 불순물을 제거한 26만t의 물을 채우게 되면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할 수 있어 물질과 반물질의 비대칭성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소위 '장비빨'이 받쳐줘야 연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우수한 연구 결과는 대부분 연구 장비, 그리고 분석 도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기초과학은 개인의 연구 분석에 한계가 있어서 정부나 대학 등의 기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하면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설비투자를 통해 기초과학도 튼튼해지고 노벨상도 받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일본도 처음부터 기초과학에 올인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방향을 초기 과학기술자들이 방향을 잘 다져 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넷째, 과학자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문제다. 다카미네 조치키(高峰?吉, 1854~1922)가 일본 노벨상의 산실인 리켄(이화학연구소)의 2017년 설립 기념 모임에서 강조했던 스피치를 되돌아 보면 실감이 난다.

  "일본의 폐단은 너무 조급하게 성공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응용 연구를 개척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이화학 연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죠. 반드시 순수 이화학 연구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이게 1917년 당시의 발언이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가 중간자의 존재를 연구해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을 때의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도 일본의 과학계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진정으로 일본 과학의 발전을 기뻐하고 한층 더 높은 진보를 원한다면, 일반 과학자들의 생활 문제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생활 문제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자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빗대어 부탁한 말이기도 하다.

  노벨상은 올림픽이나 월드컵의 금메달과 다르기 때문에 과학자를 운동선수처럼 압력을 가해서 단시간에 끌어올릴 수는 없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시류에 민감하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주목을 받게 되자 갑자기 '2020년까지 AI(인공지능)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사업은 망한다고 한다. 왜냐면 정부가 투자를 했다는 건 한국 정서상 단기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연구 풍토는 결국 오랜 시간과 끈기를 요구하는 기초과학을 후퇴시킨다.

  반면 일본은 특유의 장인 정신과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풍토가 있다. 맡은 분야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태어나고 살면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길이라는 생각과 여기에 더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몰입하는 오타쿠(オタク) 문화가 맞물려 한 우물을 파는 연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천재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들여 집중력을 발휘하는 과학자들이자 정규분포를 벗어난 오타쿠들이 대부분이다.

  2002년에 학사 출신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가 노벨화학상을 받은 것은 끈질긴 탐구 정신으로 학력의 벽마저 넘어선 케이스다. 석박사 학위도 없는 그가 노벨화학상을 받기까지는 회사도 한몫했다. 다나카가 근무한 시마즈제작소(島津製作所)는 연구원들이 하고 싶은 연구 테마나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또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을 묻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야마나카 신야 교수(山中伸弥, 2012년 수상)는 또 어떤가.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로 국제학술계에서 주름잡을 때만 해도 변방의 무명 연구자였다. 그러나 결국 이 분야에서 황우석 박사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신야 교수는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 온 결실을 인정받아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 2014년 수상)는 대학의 교수나 대기업 연구소 출신도 아니다. 지방의 중소기업에 불과한 니치아 화학공업 주식회사(日亜化学工業株式会社)에서 근무 중 1990년 청색 LED 소자 개발 후 상용화까지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때의 연구가 근간이 되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LED 조명이나 TV, 스마트폰이 가능해진 것이다. 연구자도, 기업도, 국민도 모두가 진득하게 기다려 준 덕분이다.

  오무라 사토시(大村 智, 2015년 수상) 명예교수 역시 장인 정신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흙 속의 미생물을 모으기 위해 늘 비닐봉지를 들고 다녔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연구를 게을리하거나 교만해지지 않고 여전히 장지갑 속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든다. 언제 어디서든 토양의 샘플을 곧바로 채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두들 남의 시선을 그다지 개의치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상을 받든 안 받든 자신의 연구를 계속해 나가는 연구자들의 우직함이 이렇다. 그 누구도 연구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재촉하거나 논문 조작에 대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저 내가 하는 연구이니 결과를 낼 때까지는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는 자세를 유지해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 교수들의 연구비가 많은 것도 아니고, 연구 환경이 좋다고 만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저 정시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친구도 없이 단조롭게 연구만 한다. 과학자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 그리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연구 활동에만 전념하는 프로 정신을 갖고 있을 뿐이다.

  국가 경영이나 정치 성향을 드러내고 발언하는 경우도 좀처럼 보기 힘들거니와 교내 정치에 휘말리거나 관심을 갖는 교수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회의가 있을 경우 우리나라는 식사를 겸해서 하거나 스낵과 커피는 기본적으로 제공하지만 일본은 일절 없다.

  회의가 끝나면 자투리 시간에 수다를 떨지도 않는다. 조용히 자기 연구실로 들어가 연구에 전력한다.

  어릴 때 꿈이 과학자라고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이런 꿈은 물거품이 되는 나라가 현재 대한민국이다.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가르치는 암기해야 할 과목이 어린 청소년들을 짓누르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고나 꿈을 펼칠 '시간'이 없다.

  공교육이 무너진 이런 교육 시스템은 확실한 결과물은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코 창의성을 길러낼 수 없다. 고3 때까지 수능에 목숨을 거는 교육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창조력이 저하된다. 창의력이 발휘될 나이에 모두가 입시에 '몰빵'하기 위해 전전긍긍 학원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초중고는 입시 학원이고, 대학은 취업 학원이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고민하는 근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히 바꾸어야 한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지금까지는 따라가는 과학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앞서가는 기초과학 강국이 되어야 한다. 철학이 물리학의 베이스가 되었듯 당장은 돈도 안 되고 왜 하는지 모르게 보일지언정 앞으로 기초과학을 무시해서는 우리는 영원히 '넘버 투'에 머무를 것이다.

                                             <참고문헌>

  1. 강철구, “일본이 노벨과학상을 많이 받은 진짜 이유”, 머니투데이, 2023.10.8일자.


                          < 배재대 일본어과 강철규 교수 약력>

 1. 학력

   일본 Meiji University 상학박사(상학 전공)

   일본 Meiji University 상학석사(상학 전공)

   일본 Meiji University 학사

 2. 경력 및 활동

   2016. 06 ~ 2016. 08 : 도쿄경제대학 일한문화교류기금 팰로우십연구교수

   2015. 03 ~ 2015. 12 : 행자부 지방행정연수원 자기주도학습 지도교수

   2011. 02 ~ 2011. 03 :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방문연구원

   2010. 05 ~ 2011. 02 :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2008. 02 ~ 2010. 04 : 한동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06. 07 ~ 2007. 12 : 고려대학교 경제학부 연구교수

   2004. 09 ~ 2006. 06 : 서울대학교 행정연구소 선임연구원

     현) 한국동북아경제학회 회장

     현)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객원연구원

     현) 한일경상학회 부회장

     현) 고려대 일본연구 편집위원

     현) 한림대 일본학연구 편집위원

     현) 일본경제경영연구소 소장

     현) 한일정책연구소 소장

     현) 지방시대위원회 위원

 3. 논문

   일본의 경제안보 입법화에 따른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정책동향, 국제학논총, 2022.

   일본의 반도체 및 디지털 산업의 현황과 전략, 사회과학연구, 2021.   

   일본의 과학기술정책과 4차 산업혁명의 남은 과제, 사회과학연구, 2020.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국의 부품·소재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사회과학연구, 2019.

   일본의 금융개혁과 3대 메가뱅크의 수익전환 시기, 비교일본학, 2019.

   일본 ODA 정책의 형성과 역사적 변천: 대중국 ODA 사례, 예술인문사회융합멀티미디어논문지, 

   2019.

   일본의 메인뱅크제도의 변천에 관한 고찰, 동북아경제연구, 2018.

   아베노믹스 이후의 일본 경제의 변화, 사회과학연구, 2018.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한국의 World Class 300과일본의 GNT 정책, 한일경상논집, 2018.

   배재대학교 사제동행 상생 멘토링 프로그램 운영에 관한 고찰, 인문논총, 2017.

   中堅企業の成長と戦略に関する日韓比較, 한일경상논집, 2017.

   일본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 및인재육성 활용에 관한 고찰, 한일경상논집, 2017.

   배재대학의 ‘실천하는 청년아펜젤러’란 어떤 인물인가?, 인문논총, 2016.

   석유최대소비국의 주식시장과 국제유가와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 로고스경영연구, 2015.

   일본의 번역주의 선택과 근대화의 갈림길, 인문논총, 2015.

   일본의 대 아세안(ASEAN) ODA정책의 현황과 전망, 사회과학연구, 2015.

   대 베트남 ODA 지원에 대한 한일 비교분석, 한림일본학 (구 한림일본학연구), 2015.

   배재대학의 "일본취업IT인력" 송출현황 및 과제, 배재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2014.

   한일전자산업의 발전과정과 변천, Issues & Studies, 2014.

   일본의 대 동남아시아 ODA 정책에 대한 평가, 비교일본학, 2014.

   A Study on the Interdependence of Stock Markets in Mainland China and Hong Kong , 중국학,     2014.

   일본과 독일의 역사인식의 차이, 인문논총, 2013.

   일본 대도시중심의 규제완화추진정책, 사회과학연구, 2013.

   일본의 전자산업 관련 정부정책의 변화와 대응전략, 한일경상논집, 2013.

   한일 간 기업집단의 경제력집중 배경과 논쟁, 일본근대학연구, 2013.

   일본의 고령사회와 경제정책, 인문논총, 2012.

   대기업의 경제력집중에 대한 한일 양국의 인식, 사회과학연구, 2012.

   일본경제위기 : 잃어버린 10년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한림일본학, 2012.

   한국 중견기업의 육성정책, Issues & Studies, 2012.

   한일 중견기업의 성장전략 비교를 통한 시사점, 아태연구, 2012.

   일본의 메인뱅크와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고찰, 인문논총, 2011.

   일본의 동아시아 지역통합에서의 역할과 한계, 사회과학연구, 2011.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대한 일본의 시각과 남겨진 과제, 일본공간, 2011.

   일본인 투자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일본연구, 2011.

   일본에 있어서의 중견기업과 연구성과에 관한 연구, 중견기업연구, 2011.

   EPA전략과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일본의 시각, 국제문제연구, 2011.

   일본의 메인뱅크제도와 기업지배구조의 변화,2010.

   일본의 중견기업에 관한 연구 : 현황과 특징, 정책을 중심으로, 2010

   일본 메인뱅크제도와 기업의 자금조달 구조, 2010.

   일본 국제원조정책의 배경과 특징에 대한 고찰, 2009.

   일본 중견기업의 성장이 주는 시사점, 2009.

   From Conflict to Rapprochement: the Limits of ROK-Japanese Rapprochement in the Early 

  1980s, 2008.


    4. 저역서

  2022. 12. 『일본, 위험한 레트로』, 스리체어스

  2021. 12. 『부동산 버블 붕괴는 어쩌다 시작되었나』, 어문학사

  2021. 05. 『소프트뱅크 거액적자의 결말과 매가뱅크 위기』, 어문학사

  2021. 01. 『필름을 버리고, 필름으로 살아남다』, 북저널리즘

  2020. 12. 『코로나 이후 동북아질서의 변화와 포항의 전략적 선택』, 포항시(공저)

  2020. 11. 『일본정치 고민없이 읽기』, 어문학사

  2019. 08. 『일본 경제 고민없이 읽기』, 어문학사

  2016. 12. 『일본은 왜 독도에 집착할까』, 동북아역사재단(공저)

  2016. 11. 『청년아펜젤러를 위한 노트』, 어문학사

  2012. 02. 『일본에 교회가 안보이는 진짜 이유』, 인문사

  2010. 03. 『일본문학사전』, 도서출판 문(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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