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인문학의 위기와 외화내빈의 한국사회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5.25 00:10

                     인문학의 위기와 외화내빈의 한국사회


김종회 문학평론가·한국디지털문인협회 회장

김종회 문학평론가·한국디지털문인협회 회장

  클릭 몇번으로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얻는 디지털 세대의 한 청년이 노인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왜 책을 읽고 계세요. 이제 모든 게 인터넷에 있어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청년을 서재로 이끌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읽었던 이 책들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단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과 연결된 것들을 말한단다.”

  인문학은 인간의 언어·문학·예술·철학·역사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정보를 기계에서 얻는 청년의 시대에 여전히 책만 읽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인문학은 그 노인이 가진 지혜와도 같다.

서울 한 대학, 독문과·불문과 폐과
인문정신 부재로 사회 황폐해져
인문학 강화하는 교육 개편 필요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기계가 동원하는 인터넷이나 인공지능(AI)은 지식을 제공하지만, 자신의 독서 경험과 생각을 끌어내는 책은 지혜를 제공한다. 이 지혜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과 사회를 선하게 하고 함께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인문학의 융성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국가나 공동체는 직무유기를 저지르는 셈이다.

   21세기 들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말이 ‘인문학의 위기’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이런 현상은 치유하기 어렵다는 냉소가 퍼져 있다. 심지어 “인문학의 위기란 없다. 이미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서 끝장이 났기 때문이다”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있을 정도다.

   인문학이 인간과 그 삶의 본질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 만능의 시대에 인문학의 위기를 ‘인간의 위기’ 또는 ‘인류의 위기’라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형국에서 인문학계의 변명은 대개 두 가지 유형을 보인다. 하나는 “인문학이 스티브 잡스의 돈벌이에 도움이 됐다”와 같은 자기방어적 변명이다. 다른 하나는 “천박한 자본주의 탓에 인문학이 몰락한다”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대한 비난이다. 문제는 그러한 변명이나 비난이 눈앞에 당착한 위기 극복의 대안과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같이 언론 보도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뉴스를 보면 아름답고 귀한 소식은 참으로 드물고 불화와 다툼, 반목과 충돌의 사건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저마다 주장과 변명이 있겠지만, 메마르고 황폐한 사람들의 심성에 일차적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곧 건전한 상식과 균형 있는 교양의 부재, 곧 인문학적 정신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언명할 수밖에 없다. 형편이 이러한데도 이 상황을 개선하고 향상해야 할 책임을 우리 사회는 방기하고 있다.

   절박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사회에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겉만 화려한 겉치레의 언사를 버리고 실질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 인문학을 강화하고 교사와 학생이 동시에 인문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문화 및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보호함으로써 인문학의 활성화를 촉진하고 예술인과 예술 단체, 박물관과 도서관 등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운영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서울 소재 대학에서 불문과와 독문과를 폐지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안타깝다. 인문학의 회생을 위해서는 다른 어떤 국가기관보다 교육 당국의 심기일전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인문학 교육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금의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한다. 인문학 과목 비중을 늘리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개발해 학생들이 인문학적 상상력과 시각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교사들에게도 전문적인 인문학 교육을 제공하고, 새로운 교수법과 학습 동기를 증진해야 한다.

       외화내빈(外華內貧)한 한국사회를 올곧고 굳건하게 일으켜 세울 힘이 인문학의 재건에 있다. 근대 서구의 인문주의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나 유럽과 세계로 확대됐다. 그 바탕에 있는 고전적 이상으로 현세적 인간성을 앙양하는 것이 목표였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이 정신운동의 핵심은 언제나 ‘인간’이었고, 이는 동양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옛말이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살아 있는 새로운 문화 연구와 실천으로서 인문학을 반드시 살려내야 할 시기다.                                                                                                                                                                            <참고문헌>                                                      1. 김종회, "인문학의 위기와 외화내빈의 한국사회", 중앙일보, 2024.5.24일자.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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