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중국 최고(古) 한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井 은 한국(한반도)을 뜻하는 형상이라고 나온다. 의미는 금수강산 물맑아 우물(샘)들이 많은 한반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가운데 o을 넣어 태양을 상징했다. 고운 태양과 맑은 샘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속에서 사는 심성좋았던 한반도 사람들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그래서 4천년 전의 문헌인[산해경]에서 고대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는 대인(군자)들과 도인들이 사는 나라가 있는데, 무궁화가 아침저녁으로 피는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물론 동방족의 후손인 공자가 한반도에 대해 '군자불사지국'이라고 예찬하는 이유다. 이처럼 3천리 금수강산 한반도는 산천좋고 물맑고 인심좋은 가히 에덴동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서의 에덴동산의 설화도 고대 한국인들(슈메르인들)의 문헌에서 표절한 것이니, 에덴동산의 원형은 가장 오래된 땅 한반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북한산 정상이 화강암인데, 화강암은 지하층에 속하는 암반으로 한반도는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거의 바다속으로 들어간 지형이 아니였기에 소금기가 없어 삼천리 금수강산의 물맛이 좋고 물이 풍부하여 가장 먼저 벼농사를 시작한 땅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듯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땅에 속하기도 하며 지형학적으로도 새의 양날개의 축처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동방족이 만주를 걸쳐 아메리카와 유라시아대륙으로 이동하면서 언어와 풍습과 문자를 가지고 이동하니 고인돌의 흔적이 아메리카에도 있고, 동남아에도 있고, 영국.프랑스에도 있고, 빗살무늬토기가 한반도에서 북유럽지역까지 전파된 것이며, 인디언들과 슈메르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언어.문자구조와 풍습과 피라미드 구조가 같은 것이다. 가까운 중국문명의 주역이야 당연히 한반도 사람들일 수 밖에 없다. 중국문명의 시원지가 만주의 요서지역(홍산문명)이며, 황제헌원부터 요.순임금까지 고대 중국 왕들의 조상이 한반도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고대 중국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출처 -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위와 같이 [井(정)]자의 고대형은 가운데에 [점 , ㅇ, ㅡ]이 있는 것들 많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것들은 [태양]을 뜻한다. 즉 井 자 형태가 생겨난 곳(또한 많이 쓰이는 곳)이 해뜨는 곳 즉 동방(東方)이라는 표현. 즉 고대한국의 상징인 에다가 이 모양이 [해뜨는 동방(東方)]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중에 [순임금]의 뛰어난 신하였던 [백익(伯益)]이 이러한 형상을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점 찍힌 위 모습은 [백익(伯益)]이 처음 만들었다고 [설문해자]가 말하고 있는 것. [순임금]은 원래 동이(東夷)민족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백익(伯益)] 역시 그렇다. 그런데 [백익(伯益)]은 4천년 이상 전 인물이고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약 1천9백년전에 지어진 책이니 2천년 넘게 차이가 나고 그래서 [점]을 두레박이라고 착각한 것으로 본다. ( 이렇게 [설문해자(說文解字)]는 비교적 후대에 지어진 것이라 그런지 고대문자와 비교해보면 맞는 말도 있고 틀린 말도 있다.) 미국의 학술지 <디스커버>지도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이며 가장 과학적인 필기 시스템이라고 극찬한 바 있고, 우리 스스로도 자부심과 함께 민족의 영원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글이다. [자료]대인=고대 한반도 사람들 독일 히틀러가 상징으로 삼은 문양의 비밀 십자가의 기원 고인돌 한반도는 천손신화와 난생설화의 교차지역 동남아 고인돌 분포지와 한반도(해로가 한반도로 일방 통행하며, 해로는 계속해서 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 열도를 걸쳐 동남아로 다시 돌아 오는 순환 해로이다. 칠레 아스터섬의 석상과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도 중 회색지역은 난생설화 지역이다. 한반도는 난생설화와 천손설화가 겹치는 지역으로 난생설화와 천손설화의 원형지역이 한반도임을 알 수 있다) 유럽의 모든 대형 거석유적들은 모두 우리 한반도의 고인돌에서 파생(派生)된 것들입니다. 인도(India)의 고인돌은 한참 늦은 시기에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브리티쉬 제도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원래 스페인(Spain)과 포르투갈(Portugal)에서 건너간 한반도 고인돌 종족의 후손(後孫)들의 영향을 받아, 우리말로 '뫼'라고 부르는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에서 비롯된 구조입니다. 그러니 영국에서의 둘레돌이 얼마나 늦게 만들어졌는지 알만 하지요. 이 '뫼'라는 말은 영국에서 무어(Moor)라는 말로 남아있으며, 이 무어인(Moors)들이 바로 웨일즈 지방과 잉글랜드 서남쪽의 콘월(Cornwall) 지방, 그리고 아일랜드에 살던 아시아인들의 후손(後孫)입니다.
석가모니의 혈통 [자료]그리스의 '제우스'는 동이 '치우'가 건너간 것
고로 고대 중국.유라시아.아메리카 역사의 주역은 한반도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고대 한국(한반도)을 뜻하는 형상 井 고구려이전부터 사용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의 무덤양식인 적석총양식도 한반도 남부의 남방식 고인돌 양식인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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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古) 한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八家一井象 溝韓形 ?之象也 古者伯益初作]
8집에 우물이 하나 있는 모습이다.
[한(韓)]을 뜻하는 형태이고
우물에서 물긷는 [두레박]의 형상이다.
옛날에 백익(伯益)이 처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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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 이모양은 한국을 뜻하는 형상.
이러한 모양이 원래 있었고 - 고대한국의 상징
(고구려 유물에서도 줄줄이 나오는 형태)
나중에 [순임금]의 신하였던 [백익(伯益)]이
이러한 형상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
[井(정) -금문]
井 자형은 고대부터 한국의 상징 중 하나.
그래서 고구려도 이러한 형태를 즐겨 새겼다.
아리안족의 산스크리스트어(서양어의 조상어)
아리안족은 '아리랑'족으로도 불릴 수 있는데, 그 배경은 중앙 아시아에서 기원하여 일부는 인도의 드라비다족(1만년 전의 드라비다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드라비다어는 한반도 사투리와 거의 같은데, 드라비다족은 고인돌 문명을 가진 한반도인들이 해로를 타고 인도까지 와서 정착하면서 인도의 원주민들과 피가 섞인 혼혈족으로 보인다.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인도 남부지역으로 밀려나게 되었다)를 정복하고 아리안들의 지배구조를 위하여 힌두교와 카스트제도(1순위:한국인=정수를 가진 무한의 힘 '브라흐만'을 가진자들=샤먼)를 기반으로 인도문명을 꽃 피웠으며, 일부는 중동과 유럽을 정복하여 중동과 유럽문명의 주역이 되었다. 아리안족의 언어가 한국어라는 사실은 이들이 한반도와 만주에서 서진한 고대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고, 히틀러가 그렇게 자랑했던 게르만족의 겨우 이들 아리안족과 백인족의 혼혈족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또한 동방족인 훈족에 쫓겨 서유럽으로 대거 이동한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주역들이다.
[인도-유럽어족의 조상어-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한국사람이 인도 수라스트란반도 구자라타주 바도다라시에 가면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인즉 거리의 상가 간판을 절반 이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成俔(성현)은 <용재총화 제7권>에서,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언문을 짓게 하니, 초.종성이 8자, 초성이 8자, 중성이 12자였다. 그 글 자체는 범자(梵字)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어음문자(語音文字)로써 표기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막힘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고 말하고 있다.
뜻은 같지 않지만 모양이 너무나 닮은 인도 바도다라시의 문자는 범자(梵字) 한글 기원설과 고대의 가림토와의 관계 등은 민족의 이동설을 다시 한번 재고해 보게 한다. 또한 그 고장에서 유명한 MS대학에는 이천년 동안 언어의 변천을 기록해 놓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한글과 자모(子母)가 같은 문자가 ‘ㄴ, ㄷ, ㅌ, ㅇ, ㅁ, ㅂ, ㄹ, ㅓ, ㅗ, ㅣ’이었고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한글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꺼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의 알파벳은 우리 한글처럼 ‘ㄱ’으로부터 시작해, ‘ㅎ’으로 끝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인도 구자라트에 한글의 모양이 닮은 것은 자음 가운데,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등이고, 모음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ㅡ, ㅣ’의 열자가 똑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두 문자 간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누가 장담 할 수 있을까? 고대의 문자에서 풀어져 나오는 비밀은 뭔가 한글 창제의 기원과 조상의 이동설 등을 연결시켜 줄 듯도 한데, 우리의 학계는 아직은 아무것도 인정치 않고 있다.
[자료]
세계 언어학자들이 세계최고의 과학적 문자로 선택한
한글과 단군조선의 가림토문자의 비밀
비록 국가 공휴일에서도 밀려났고 영어에 치여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글임에는 틀림이 없다. 국악 보다는 서양음악을 먼저 배우고 한국화 보다는 서양화를 먼저 접해야하는 우리의 현실 교육에 비한다면 그나마 조금은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국어 교육 보다는 영어 교육의 비중이 훨씬 큰 요즘, 우리 것이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거의 없는 듯도 싶다. 그래도 민족의 자랑거리인 한글이니 우리가 다듬고 가꿔야 하겠다.
이번에는 한글의 창제 과정과 우리의 고대문자로 알려진 가림토문자, 일본에서 발견되고 있는 아히루문자(神代文字),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등을 비교해보고 모양을 살펴서 궁금증을 풀어 보자.
가림토문자
가림토문자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단군세기편을 보면 [3세단군 가륵(嘉勒)2년 경자(庚子/BC1281년)에 당시 습속이 한결 같지 않아서 지방마다 말이 다르니 비록 상혈(象形)과 표의(表意)로 만든 진서(眞書)가 있었지만 열가구가 있는 마을에서도 말이 흔히 통하지 않고 백리 떨어진 나라끼리도 글자를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였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지금의 한글과 많이 닮아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림토 글이 환단고기에만 남아있고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끊임없이 위서 논쟁에 휘말리고 있는 고서이기 때문에 감히 뭐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위서로 보아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뭔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본의 아히루문자(神代文字)
그리고 흥미 있는 것은 일본에도 모양이 거의 흡사한 문자가 존재 한다는 것이다. [이세신궁]에 신대문자라고 추정되는 고대문자가 있는데, 한글과 무척 비슷하며, ‘아타노 거울’에 새겨 진 신대문자를 비롯해서 5백여 점 이상의 신대문자가 존재 한다. 또한 708년에 세워진 비석에 신대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일본인들은 나라시대 이전 즉, 약 5~6세기부터 신대문자가 있었다고 본다.
그들이 <아히루문자(神代文字)>라 부르는 이 문자는 일본의 본토에 지금도 남아있는데 오히려 숨기기에 급급한 느낌을 주고 있다. 훈민정음이 자기들의 신대문자를 베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고대의 문화 수준을 추측컨대 누가 누구를 베꼈는지는 말 안 해도 훤하다. 아무튼 아히루 문자의 모양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한반도의 유민이 세운 나라가 일본이라면 같은 계열의 문자를 상대(上代)에 사용했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
한국사람이 인도 수라스트란반도 구자라타주 바도다라시에 가면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인즉 거리의 상가 간판을 절반 이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成俔(성현)은 <용재총화 제7권>에서,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언문을 짓게 하니, 초.종성이 8자, 초성이 8자, 중성이 12자였다. 그 글 자체는 범자(梵字)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어음문자(語音文字)로써 표기하지 못하는 것도 모두 막힘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고 말하고 있다.
뜻은 같지 않지만 모양이 너무나 닮은 인도 바도다라시의 문자는 범자(梵字) 한글 기원설과 고대의 가림토와의 관계 등은 민족의 이동설을 다시 한번 재고해 보게 한다. 또한 그 고장에서 유명한 MS대학에는 이천년 동안 언어의 변천을 기록해 놓았는데 정말 놀랍게도 한글과 자모(子母)가 같은 문자가 ‘ㄴ, ㄷ, ㅌ, ㅇ, ㅁ, ㅂ, ㄹ, ㅓ, ㅗ, ㅣ’이었고 산스크리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한글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꺼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게다가 산스크리트어의 알파벳은 우리 한글처럼 ‘ㄱ’으로부터 시작해, ‘ㅎ’으로 끝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인도 구자라트에 한글의 모양이 닮은 것은 자음 가운데,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등이고, 모음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ㅡ, ㅣ’의 열자가 똑같다. 사정이 이러하니 두 문자 간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누가 장담 할 수 있을까? 고대의 문자에서 풀어져 나오는 비밀은 뭔가 한글 창제의 기원과 조상의 이동설 등을 연결시켜 줄 듯도 한데, 우리의 학계는 아직은 아무것도 인정치 않고 있다.
그 외의 기원설
또 다른 설로는 몽고 파스파(Phasgspa 八思巴)문자 기원설 = 팍파(hPagspa)문자 기원설과 최근에 나온 학설로 히브리문자 기원설이 있다. 수메르어를 전공한 조철수 박사가 주장한 내용은 “훈민정음이 본떴다는 옛글자(古篆)는 <단군세기>에 기록된 가림토문자다. 그리고 이 가림토문자는 11~15세기에 중국유태인들이 쓰던 히브리문자를 모방한 것이다. 따라서 훈민정음은 가림토문자를 바탕으로 중국음운학과 히브리어 문자, 히브리어 음운학을 참조해 창제했을 가능성이 높다.”이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쓰이고 있는 히브리어를 한글의 기원으로 본 것이다. 상당히 특이한 설정이다. 그리고 환단고기의 가림토를 인정했으며 훈민정음이 가림토를 모델로 삼았음 또한 인정했다. 하지만 현재 국어학자의 대부분은 조박사의 학설을 부정한다.
오히려 조철수 박사는 신시배달국의 녹도문자에서 히브리 문자의 원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조상이 슈메르인 아브라함이라면 당연히 환국의 문자와 풍습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세계 문자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신시배달국 시대의 녹도문자(단군조선 가림토의 기원문자)
앵글로색슨족은 브리튼 섬에 들어가 여기저기에 작은나라들을 세웠으며 오늘날 대다수 영국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색슨족(Saxon)은 대개 독일의 작센(Sachsen) 지방에서 건너온 종족으로, 영국에서 거석문화 이후에 영국으로 들어온 종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센은 곧 우랄산맥 주변에 퍼져있던 용맹한 무사 코작(Kozak)인들과 인도 북부를 점령했던 무사귀족 사카(Saka)인들과 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코작과 사카는 터어키(색륜-탁륜-튜르크-토이기)족과 함께 근본이 아시아족으로서, 그 근간이 동아시아의 색륜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색륜은 곧 한반도 북방 동이족으로서, 색에서 작 또는 탁으로 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잉글랜드의 이주민이었던 앵글로 색슨족은 단군시대에 만주일대에서 서로 앙숙이었던 앙골(앙骨, Angol)과 숙신(肅愼, Sukshin, Jushen)과 발음이 통하여 색슨족의 어원이 숙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 라이프찌히(Leipzig) 근처의 할(Halle, 또는 쌀, Saale)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엘베(Elbe)강 유역의 작센 지방 또한 그 대부분 지역이 원래 바다였습니다.
석가(사카)족은 현재 네팔(티벳남부) 포탈라카국 감자대왕의 후예로서 지금의 네팔 타리이지방 카필라국에 정착하였고 코살라국의 주인이 되었으며 카필라국의 수도난다(정반왕)는 마야부인에게서 석가를 낳았다.
영국의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에 의하면 석가족과 藁離族은 동쪽에서 이동했으며 몽골리안중에서 한민족을 형성한 고리족(코리족=치우족=묘족=고구려=부여=몽골)이 네팔지역에 이동한것으로 추정하는< 석존몽고인설>을 주장하였다.
마야부인은 常盤大定의 석가모니전에 의하면 코리족(藁離族,九黎族=고리족=고구려=부여)이며 정반왕과 마야부인은 같은 종족이라고 했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이스의 화풍이 들어간 아테네식도 아니고 후에 전통을 이어간 아리안(현재의 이란 및 인도의 종족)계통의 심목고비가 아닌 몽고계 인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현대 네팔에 샤카족이라 하여 석가모니의 후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가모니 생존시 10대 제자중에서 설법을 제일 뛰어나게 잘했다는< 부루나 다라미자 尊者>가 직접 그렸다는 초상화가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그 초상화를 기준으로 상호를 보게되면 굵은선 의 부드러운 적당한 곱슬 머리에 수염도 적당히 있고 이마나 안면의 선이 아주 서구도 아니고 우리 쪽의 몽골리언 모습에 가까운 티베트인들과 의 중간 형이며 어깨 골격도 넓고 강하며 석굴암의 부처님 정도의 비율의 골격에 인간적인 굴곡이 강한 아주 호남형으로 앞가슴도 적당히 넓게 벌어진 모습 등으로 보아 키도 약 1.87~1m90cm정도로 짐작되는 형상이다.
아래 그림이 부루나 존자가 생존의 석가모니를 그린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