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 타계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3.07.04 04:22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 오에 겐자부로 타계

읽기모드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1960년대 일본 문학계에서는 ‘엄청난 재능을 지닌 작가가 나타나서 작가 지망생들이 붓을 꺾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 주인공이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다. 1950년대 후반 등단해 ‘만연원년(万延元年·1860년)의 풋볼’ 등 세계적 명작들을 남긴 그가 타계했다고 일본 언론이 13일 전했다. 오에를 추모하는 이들은 대문호로서의 명성 못지않게 ‘일본의 양심’으로 그를 기억한다.

  “일왕이 사람의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에 놀랐고 실망했다.” 오에는 1945년 8월 15일 라디오로 일왕의 항복 선언 연설을 들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1935년 태어나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그는 어릴 적 “일왕은 신비한 하얀 새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런데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왕 역시 사람임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느꼈던 충격과 미 군정 체제에서 경험한 민주주의가 오에의 세계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58년 소설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 수상하며 필명을 떨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63년 아들이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나면서 그의 삶은 크게 바뀐다. 낙담한 오에는 생후 한 달 된 아들을 병원에 놔둔 채 히로시마로 떠났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들을 돌보던 의사에게서 ‘아픈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말을 듣고선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미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도쿄로 돌아와 아들을 돌보며 쓴 소설 ‘개인적 체험’ 등은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는 “아들과 공동 집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오에는 평소 조용하고 배려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한국인들이 자택으로 찾아온다고 하면 문패 위에 한글로 이름을 써서 붙여놨을 정도였다고 윤상인 전 서울대 교수는 전했다. 하지만 폭력, 특히 국가의 폭력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에세이에서 “권력이 쌓아올리는 사실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적으로 저항하는 목소리를 한결같이 계속 내는 길밖에 없다”고 썼다. 그리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오에는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범죄를 한국에 저질렀다”며 지속적으로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일왕이 주는 문화훈장을 거부했다는 이유 등으로 극우세력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협박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지인들과는 전화 대신 팩스로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노년까지 집회에 참여해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일본의 지식인이 또 한 명 귀천했다는 소식이 안타깝다.
                                                 <참고문헌>

  1. 장택동, "‘일본의 양심’ 오에 겐자부로 잠들다", 동아일보, 2023.3.14일자. 


시청자 게시판

2,426개(11/122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119906 2018.04.12
2225 이문열 소설이 겪은 검열 수난 사진 신상구 631 2024.07.22
2224 신숙주의 생애와 업적 신상구 486 2024.07.21
2223 김형석의 100년 산책, 만일 내가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신상구 451 2024.07.21
2222 유명 역사 강사 설민석, 연세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표절 심경 고백 사진 신상구 550 2024.07.20
2221 김부식의 금 사대 현실론은 역사 퇴보였나 사진 신상구 638 2024.07.20
2220 제헌절이 부끄러운 국회,1748개 법안 중 가결 `1개` 사진 신상구 610 2024.07.18
2219 <특별기고> 제헌절 76주년을 경축하며 신상구 501 2024.07.18
2218 유관순의 첫 스승, 사애리시를 아시나요 사진 신상구 487 2024.07.17
2217 애국의 꽃으로 피어난 신앙, 조국을 가슴에 품다 사진 신상구 397 2024.07.16
2216 ‘고용 없는 성장’의 오해와 진실 신상구 596 2024.07.14
2215 폐지줍는 노인 1만4831명, 평균 78세, 월 77만 원 번다 신상구 524 2024.07.11
2214 인공지능의 미래 예측 난해 신상구 564 2024.07.07
2213 아름다운 것을 그렸더니 그게 조국이었다 사진 신상구 404 2024.07.05
2212 대한민국 3대 악성 사진 신상구 1081 2024.07.04
2211 박희선 불교시인 유품, 고향 대전 품으로 돌아왔다. 사진 신상구 472 2024.07.04
2210 ‘최초의 한류’ 조선통신사 길 따라 ‘경요세계’ 정신 배우다 신상구 554 2024.07.03
2209 목은 이색의 충절과 문향 사진 신상구 602 2024.07.03
2208 한국 가계 빚 2246조, 10년 상승폭 선진국 중 1위 신상구 659 2024.07.02
2207 인공지능 시대의 도전과 기회 사진 신상구 410 2024.07.02
2206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주요 업적 30가지 사진 신상구 528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