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고구려본기, 보장왕 27년]기록이다. 668년 당나라와 고구려가 싸우고 있을 때 당나라 시어사 가언충이 "고구려의 비기(秘記)에 이르기를, '900년이 안 되어 80세 된 대장이 나라를 멸한다'고 하였습니다. 고씨(고구려)는 한나라 때부터 나라가 있었는데 지금 900년이 되었고 이세적(李世勣)의 나이가 80세입니다."
가언충이 요동의 전장에 직접 참여했다가 사명을 받고 당나라 고종에게 돌아가 한 말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역사와 정황에 대한 그의 말은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가언충의 말대로 고구려가 개국된 지 900년이 되었다면 신라사관론자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록 705년(서기전 37~668년)보다 거의 200년이나 길어진다. 그렇게 되면 고구려 개국 시기는 서기전 200년대로 앞당겨져야 된다.
47대 고열가단군의 종친-해모수의 부여개국
[한단고기]개천(開天)3,659년 임술 원년: B.C 239년, 단군 고열가 57년, 23세의 젊은 해머슴 천왕랑(天王郞)은 웅심산(熊心山)에 의거하여 난빈(蘭濱)의 제실(帝室)을 지어 황궁으로 삼고, 머리에는 오우관(烏羽冠-까마귀 깃털의왕관)을 썼으며,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차고 출동할 때는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정사(政事)를 보니 그 모습은 천신 같았고 위엄은 천하에 떨쳤다.' 해머슴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천왕랑(天王郞)으로 슬기롭고 용맹하며 눈빛에 광채가 있었다. 그의 선조는 고리국(高離國=고구려) 사람으로, 23세 때 하늘의 뜻에 따라 웅심산(熊心山)에서 군병을 일으켰다.
그는 웅심산의 난빈에 궁궐을 짓고 까마귀 깃털이 달린 황관을 썼으며 용광검(龍光劒)을 차고 오룡거를 탔다. 그는 500명 장졸의 호위를 받으며 정무를 보았는데 때로는 옛 서울까지 가서 사람들을 위로하니 마침내 백성들이 그를 추대하여 단군으로 모셨다. 백성들은 해머슴을 하늘처럼 따랐으며 그의 명령을 하늘의 명령처럼 따랐다. 나라 안의 덕망 있는 사람들에게 장군의 벼슬을 주었고, 기비(箕丕)를 번쥬신[番朝鮮]의 왕으로 봉하여 위아래의 운장(雲障)을 지키도록 하였다.
[고구려900년]부여시조 해모수解慕漱(고추모 할아버지)
B.C 239년 해모수 부여개국
2대 모수리慕漱離,
3대 고해사高奚斯,
4대 고우루高于婁(해우루解于婁)*동생 해부르는 동부여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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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고두막(흑룡강지역의 부여제후국 탁리국 출신으로 한나라침략격퇴시키고 해모수 부여접수)
6대 고무서(고두막의 아들.고추모의 장인.소서노의 아버지)
7대 고추모(부여에서 남하하여 기원전 37년에 압록강지류 환인지역에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로 국호개명)
*고두막세력이 해모수계 고추모가 부여단군에 오르니 반기를 들고 고추모를 살해하려하자 남하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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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역사가 멸망한 668년까지 합하여 907년이라고 하는 이유다.단군조선의 제후국 고구려까지 합하면 200년이 훨씬 넘어서는 나라라 할수 있다.
위만조선가 내분으로 멸명하자 한나라가 요동지역에 설치한 현도군에 고구려현이 존재한다.(한서지리지)현도군이 설치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지명인데,사실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고리국이다.이 고구려현은 본래 단군조선의 제후국으로 고리국을 의미한다.해모수.고추모 선조의 나라다.
한나라가 한4군을 설치할 때 조선유민(고구려유민)들이 압록강지역으로 이주하여 남하한 고추모세력과 연합하여 나라를 개국할 때 '고구려'라고 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일부 민족사학운운하는 사람들이 이 고구려현지역을 고추모가 개국한 고구려라고 주장을 하는데 오류다[윤복현]
[자료]고추모가 나온 부여
동부여.남부여(백제).사로부여(사로국).열도부여(일본) 등 여러 부여나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서 해모수의 부여를 북부여라고 칭한다. 광개토태왕비문에는 개국성조 고추모는 하백녀의 딸(유와)과 북부여 천제(해모수)의 아들(손자)로서 북부여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부여의 황실은 결론적으로 태양의 제국이었다. 부여란 그 이름이 먼동이 부옇게 밝아오는 것을 뜻한다. 초대 단군성조께서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부루, 부우, 부소, 부여가 그들이다. 그 중 막내가 부여인데 이 부여가 동방의 문명을 크게 일으켰으므로, 그 명성에 의거하여 단군조선 44대 구물 단군은 그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고쳤고, 해모수가 다시 북부여를 건국함으로서 그 부여의 이름이 계승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북부여 황실의 제호를 연구해 보면 역대 황제의 이름이 모두 태양을 상징함을 엿볼 수 있다.
해모수 단군의 혈통을 이은 전북부여 황위 세계보는 다음과 같다.
부여시조 해모수解慕漱,
2대 모수리慕漱離,
3대 고해사高奚斯,
4대 고우루高于婁(해우루解于婁)*동생 해부르는 동부여 왕
위에서 해란 태양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러므로 해모수는 순우리말로 ‘해머슴’이란 뜻이 된다. 그리고 2세 모수리의 ‘리’는 태양이란 뜻의 한자말이며, 3세 고해사의 ‘해’는 하늘의 태양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그리고 4세 고우루는 해우루임으로 역시 순우리말인 ‘해’가 들어있어 태양을 뜻하고, 5세 황제일 수도 있으나 고두막한에게 밀려나 동부여 왕이 된 해부루 역시 그 이름에 ‘해’가 들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4세 단군인 고우루를 해우루라 함으로서 ‘고’가 ‘해’를 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후 북부여의 개국시조 5세 고두막高豆莫(두막루豆莫婁), 6세 고무서高無胥의 제호 역시 ‘하늘의 해, 태양’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틀림 없음은 고두막한이 처음 개국을 선포한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다. 그 이름이 바로 ‘동명東明’이다. 동명이란 동쪽의 광명을 뜻한다. 천지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광명, 일출하는 해를 바로 동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옛적 세웠던 모든 나라 이름은 모두가 동방의 광명을 상징하였다. ‘환국, 배달, 조선, 부여, 고구려, 대한’ 모두가 새벽 하늘을 찬란하게 수놓는 동방에 떠오르는 광명을 뜻한다. 그리고 역대 제왕들은 그 자신과 조상의 제호로서 하늘의 제왕인 태양으로 삼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황극(皇極)이란 황제를 뜻하는데 하늘의 태양에서 왔다. 하늘의 태양은 ‘목, 화, 토, 금, 수’ 오성을 주재하는 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황극은 우주 간 뭇 별의 우두머리인 북두칠성이 원 근원이다. 황극은 다스림의 극치 자리를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 역사에 있어서는 황제가 황극이 된다. 그러므로 황제는 항상 광명으로 인간을 이끌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이 황극 사상이 단군조선의 부루태자에 의해 우임금에게 전수되었음으로, 우리 민족이 바로 황제국의 본 고향이 된다. 중국에 전수된 황극 사상은 그 후 하, 은을 거쳐 주 무왕에게 전수되는데, 그 황극 사상을 전한 것은 바로 망국 은나라의 성인 기자다. 기자가 전수한 홍범(洪範) 속에 황극(오왈건용황극五曰建用皇極)이 들어 있으니, 홍범이란 환국의 지위리 환인께서 배달국 거발한 환웅에게 전수하신 바로 그 홍범과 같은 뜻이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그 황극의 진면목은 바로 우리 동방의 광명사상에 있다 할 것이다.
황극의 나라 북부여는 광명의 제국 ‘고구려高句麗’에 계승되었다. ‘고구려란 태양이 동쪽 언덕에서 환히 빛난다는 뜻’이니 이것은 부여의 광명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 시조 고주몽高朱蒙(고추모高雛牟)의 이름 역시 광명을 상징한다. 성씨인 고씨는 당연히 태양의 뜻을 가진다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주몽이란 이름 역시 불덩어리 같이 붉은 것이 아직 어린 것이니, 아침에 동방에서 떠오르는 하얀 광명을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글 : 송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