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전개 보도자료>
천안지역 건국기념관 건립운동의 역사적 의의
1. 건국일을 놓고 세가지 학설이 대립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대한민국 건국일을 놓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개천절인 10월 3일로 할 것인가, 일제시대의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할 것인가, 해방 후 제1공화국 수립일로 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세는 대한민국 건국일을 일제시대의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그것을 수립하는 근거를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 기록된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란 문장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미 3·1 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를 말하고, 민주독립국가란 1948년 5월 10일 북한을 제외한 남한만의 총선거를 통해 수립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정부를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임시정부(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는 기미년인 1919년 3월 1일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항일독립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독립투사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1919년 4월 11일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결정하고 임시로 수립한 정부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이전에 상해에서 임시로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를 말한다. 여기서 ‘임시’란 말을 정부 앞에 붙여 ‘임시정부’라고 부른 것은 상해 임시정부가 국가의 3요소인 영토·주권·국민을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亡命政府,refugee government)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시’란 말 속에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완전히 쟁취한 후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자 열망했던 항일독립투사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상해 임시정부가 임정 요인들의 꾸준한 많은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함에 따라 결국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해 해방 정국을 주도했던 미국·소련·중국으로 부터 푸대접을 받아 제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2. 건국일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해야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조사연구하고 있는 필자의 경우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당연히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정하게 되면 우리 한민족사에서 일제시대의 빛나는 항일독립투쟁사가 단절된 역사로 기록되고 북한 당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8년 7월 17일 제정한 제헌 헌법에도 ‘재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고 제1공화국 수립을 주도했던 이승만((李承晩·1903-1975년) 대통령 스스로도 그 당시 정부수립 기념 연설에서 ‘건국 30주년’이라고 말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가증스럽게도 일본의 건국기념일을 일본 개국신인 신무(神武) 천황이 일본을 세우고 즉위한 기원전 660년 음력 1월 1일을 양력으로 계산해 2월 11일로 정하고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를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면서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신생 독립국’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 이후 선문대 역사학과 이형구(李亨求·66)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복기대(卜箕大·47) 교수·한국항공대 교양학부 우실하(禹實夏·49) 교수 등을 중심으로 발해만 연안에 발달됐던 요하문명(遼河文明)의 꽃인 홍산문화(紅山文化, BC3500-BC2400)가 발굴돼 고조선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과정을 신화(神話)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개천절인 10월 3일로 정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 천안지역의 일부 유지들이 대한민국 건국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천안 건국기념관 건립 운동’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3. ‘천안 건국기념관 건립 운동’ 전개
천안시 사직동에 거주하는 임맹순 옹에 의하면 이미 오래 전부터 천안농촌지도소 직원이었던 유종성(庾鍾聲·75) 옹·상호약국(常湖藥局)을 운영하고 있는 임맹순(任孟淳,73세) 옹·배제대 총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이성근(李聖根·72) 박사 등 천안농고 동문들을 중심으로 천안에 대한민국 건국기념관 유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천안 건국기념관 건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2009년 8월 27일 저녁에 임맹순 옹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한번 천안이 ‘충절의 고장’임을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 아직도 대한민국 건국일을 놓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에 격렬한 논란을 벌이고 있어 국민적 합의로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건국기념관 건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성급한 나머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앞으로 언젠가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 국민합의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해지고 건국기념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질 때를 대비해 건국기념관 건립 장소를 미리 정해 놓는 것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획기적인 애국적 처사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4. 대한민국 건국기념관 천안 유치의 타당성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앞으로 조만간에 국민적 합의에 의해 대한민국 건국일이 확정된 직후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한민국 건국기념관을 충남 천안의 흑성산(黑城山) 기슭에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지역인 천안(天安)은 충남의 수부도시로 영·호남의 분기점에 위치해 도로교통과 철도교통이 편리하고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接近性)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천안은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으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요인은 물론 해방 정국에서의 치안책임자와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요인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항일독립투사였던 석오(石吾) 이동령(李東寧·1869-1940)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 대통령 대리, 주석, 국무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리고 철기(鐵騎) 이범석(李範奭·1900-1972)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 중대장으로 참여해 많은 전공을 세웠고 해방 후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초대 국무총리 겸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또한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1894-1960) 박사는 해방 정국에서 경찰총수를 지내고,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셋째로, 천안의 흑성산 기슭에는 한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민간 차원에서 ‘한민족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국학원(國學院),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한민족역사문화공원, 한국선도(韓國仙道)와 뇌교육(腦敎育, brain education) 연구의 본산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천안시 성정동 1535번지에는 상해임시정부를 이끌고 해방 정국에서 민족통일을 주도했던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선생 선양 사업의 경제적 기반이 되고 있는 재단법인 김구재단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천안에 건국기념관이 건립되면 재단법인 김구재단, 천안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이동령 생가, 이범석 생가, 독립기념관, 상록리조트,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 기념공원, 유관순 사우, 망향의 동산 등과 연계 관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에는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밝혀주는 국내·외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시료가 집대성돼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어 일년 내내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리고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4대 성인들의 동상이 안치돼 있는데 특히 높이 33m의 단군상이 우뚝 솟아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독립기념관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방문하는 한민족(韓民族)은 누구나 민주화와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희미해진 민족혼과 애국심을 다시 한번 일깨울 수 있어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그 두 곳을 국민관광과 사회교육 장소로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5. 선도문화 발굴로 한·중·일 간의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아무튼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가 중심이 돼 건국 60주년이니 건국 90주년이니 하는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민적 합의에 의해 건국기념일을 확정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 identity)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흑성산(黑城山, 519m) 기슭에 건국기념관을 건립하고 사회교육 장소로 적극 활용하는 한편 국민관광지로 개발해 국민경제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발해만 연안의 대능하(大凌河) 유역을 중심으로 한민족 고유의 문화인 선도문화(仙道文化)를 체계적으로 발굴해 환국(桓國, BCE7197-BCE3897),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 BCE3897-BCE2333), 단군조선(檀君朝鮮, BCE2333-BCE238)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는 대로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계속 상향 조정해 결국은 환국의 건국 연대인 BCE 7197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가 하면,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국내외에 국학연구소와 한국학연구소를 보다 많이 설립해 국학과 한국학을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함으로써 국학과 한국학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고 동북아역사재단과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새로운 사료를 계속 발굴 정리하고 적극 활용해 한·중·일 간의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건국기념관 건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을 주도하는 핵심 인사들이 천안시청, 천안의 3개 문화원(천안문화원, 아우내문화원, 성환문화원), 중앙방송국인 KBS·MBC·SBS·YTN·MBN, 지방과 중앙의 신문사, 김구선생기념사업회,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시민연대, 천안시민포럼 등과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알차게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대한민국 건국일을 놓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면서 개천절인 10월 3일로 할 것인가, 일제시대의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할 것인가, 해방 후 제1공화국 수립일로 할 것인가에 대해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대세는 대한민국 건국일을 일제시대의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그것을 수립하는 근거를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제헌헌법 전문에 기록된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란 문장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미 3·1 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를 말하고, 민주독립국가란 1948년 5월 10일 북한을 제외한 남한만의 총선거를 통해 수립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정부를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임시정부(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는 기미년인 1919년 3월 1일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벌어졌던 항일독립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독립투사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1919년 4월 11일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결정하고 임시로 수립한 정부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이전에 상해에서 임시로 수립한 대한민국 정부를 말한다. 여기서 ‘임시’란 말을 정부 앞에 붙여 ‘임시정부’라고 부른 것은 상해 임시정부가 국가의 3요소인 영토·주권·국민을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亡命政府,refugee government)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시’란 말 속에는 일제로부터 독립을 완전히 쟁취한 후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고자 열망했던 항일독립투사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상해 임시정부가 임정 요인들의 꾸준한 많은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작용함에 따라 결국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해 해방 정국을 주도했던 미국·소련·중국으로 부터 푸대접을 받아 제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2. 건국일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해야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조사연구하고 있는 필자의 경우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당연히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건국일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로 정하게 되면 우리 한민족사에서 일제시대의 빛나는 항일독립투쟁사가 단절된 역사로 기록되고 북한 당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8년 7월 17일 제정한 제헌 헌법에도 ‘재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고 제1공화국 수립을 주도했던 이승만((李承晩·1903-1975년) 대통령 스스로도 그 당시 정부수립 기념 연설에서 ‘건국 30주년’이라고 말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가증스럽게도 일본의 건국기념일을 일본 개국신인 신무(神武) 천황이 일본을 세우고 즉위한 기원전 660년 음력 1월 1일을 양력으로 계산해 2월 11일로 정하고 일제의 조선 식민통치를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면서 1948년 8월 15일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신생 독립국’이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 이후 선문대 역사학과 이형구(李亨求·66)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복기대(卜箕大·47) 교수·한국항공대 교양학부 우실하(禹實夏·49) 교수 등을 중심으로 발해만 연안에 발달됐던 요하문명(遼河文明)의 꽃인 홍산문화(紅山文化, BC3500-BC2400)가 발굴돼 고조선의 실체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의 건국 과정을 신화(神話)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개천절인 10월 3일로 정하는 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 천안지역의 일부 유지들이 대한민국 건국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천안 건국기념관 건립 운동’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3. ‘천안 건국기념관 건립 운동’ 전개
천안시 사직동에 거주하는 임맹순 옹에 의하면 이미 오래 전부터 천안농촌지도소 직원이었던 유종성(庾鍾聲·75) 옹·상호약국(常湖藥局)을 운영하고 있는 임맹순(任孟淳,73세) 옹·배제대 총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이성근(李聖根·72) 박사 등 천안농고 동문들을 중심으로 천안에 대한민국 건국기념관 유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천안 건국기념관 건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2009년 8월 27일 저녁에 임맹순 옹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한번 천안이 ‘충절의 고장’임을 실감하게 됐다.
그런데 아직도 대한민국 건국일을 놓고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사이에 격렬한 논란을 벌이고 있어 국민적 합의로 대한민국의 건국기념일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건국기념관 건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성급한 나머지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앞으로 언젠가 대한민국 건국기념일이 국민합의에 의해 공식적으로 정해지고 건국기념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질 때를 대비해 건국기념관 건립 장소를 미리 정해 놓는 것은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획기적인 애국적 처사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4. 대한민국 건국기념관 천안 유치의 타당성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앞으로 조만간에 국민적 합의에 의해 대한민국 건국일이 확정된 직후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한민국 건국기념관을 충남 천안의 흑성산(黑城山) 기슭에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지역인 천안(天安)은 충남의 수부도시로 영·호남의 분기점에 위치해 도로교통과 철도교통이 편리하고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接近性)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천안은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충절의 고장’으로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요인은 물론 해방 정국에서의 치안책임자와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요인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항일독립투사였던 석오(石吾) 이동령(李東寧·1869-1940)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 대통령 대리, 주석, 국무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리고 철기(鐵騎) 이범석(李範奭·1900-1972)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 중대장으로 참여해 많은 전공을 세웠고 해방 후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초대 국무총리 겸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또한 유석(維石) 조병옥(趙炳玉·1894-1960) 박사는 해방 정국에서 경찰총수를 지내고,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과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셋째로, 천안의 흑성산 기슭에는 한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민간 차원에서 ‘한민족사 바로 세우기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국학원(國學院),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한민족역사문화공원, 한국선도(韓國仙道)와 뇌교육(腦敎育, brain education) 연구의 본산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천안시 성정동 1535번지에는 상해임시정부를 이끌고 해방 정국에서 민족통일을 주도했던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 선생 선양 사업의 경제적 기반이 되고 있는 재단법인 김구재단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넷째로, 천안에 건국기념관이 건립되면 재단법인 김구재단, 천안박물관,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이동령 생가, 이범석 생가, 독립기념관, 상록리조트,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 기념공원, 유관순 사우, 망향의 동산 등과 연계 관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에는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正體性)을 밝혀주는 국내·외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시료가 집대성돼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어 일년 내내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리고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4대 성인들의 동상이 안치돼 있는데 특히 높이 33m의 단군상이 우뚝 솟아 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독립기념관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방문하는 한민족(韓民族)은 누구나 민주화와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희미해진 민족혼과 애국심을 다시 한번 일깨울 수 있어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그 두 곳을 국민관광과 사회교육 장소로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5. 선도문화 발굴로 한·중·일 간의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아무튼 앞으로 대한민국 국회가 중심이 돼 건국 60주년이니 건국 90주년이니 하는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국민적 합의에 의해 건국기념일을 확정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正統性, identity)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족의 성전인 독립기념관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이 위치하고 있는 흑성산(黑城山, 519m) 기슭에 건국기념관을 건립하고 사회교육 장소로 적극 활용하는 한편 국민관광지로 개발해 국민경제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
또한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발해만 연안의 대능하(大凌河) 유역을 중심으로 한민족 고유의 문화인 선도문화(仙道文化)를 체계적으로 발굴해 환국(桓國, BCE7197-BCE3897), 신시배달국(神市倍達國, BCE3897-BCE2333), 단군조선(檀君朝鮮, BCE2333-BCE238)의 실체가 정확히 밝혀지는 대로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계속 상향 조정해 결국은 환국의 건국 연대인 BCE 7197년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가 하면, 국가 정책적 차원에서 국내외에 국학연구소와 한국학연구소를 보다 많이 설립해 국학과 한국학을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함으로써 국학과 한국학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고 동북아역사재단과 국립박물관을 중심으로 국내외에 산재해 있는 새로운 사료를 계속 발굴 정리하고 적극 활용해 한·중·일 간의 역사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건국기념관 건립운동’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 운동을 주도하는 핵심 인사들이 천안시청, 천안의 3개 문화원(천안문화원, 아우내문화원, 성환문화원), 중앙방송국인 KBS·MBC·SBS·YTN·MBN, 지방과 중앙의 신문사, 김구선생기념사업회,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 시민연대, 천안시민포럼 등과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알차게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천안중학교 사회과 교사(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 경제학과, 충남대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를 거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과정에서 선도문화 전공 중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2년간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연극의 역사적 고찰’,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항일독립운동가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등 35편
·수상 경력 :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국무총리상 등 21회 수상
·주요 논문 : ‘천안시 연극의 역사적 고찰’,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항일독립운동가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등 35편
·수상 경력 :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국무총리상 등 21회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