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멕시코 애니깽의 독립운동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3.26 03:12

                                                                           멕시코 애니깽의 독립운동

    지난 17일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시(市)에 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이 우뚝 섰습니다. ‘그리팅맨(Greeting man·인사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이 조각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사하는 것처럼 15도로 공손하게 허리를 숙인 모습인데요. 조각상이 설치된 곳의 주소는 ‘대한민국로(路)’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멕시코의 도시에 왜 ‘대한민국로’라는 주소가 있고 한국식으로 인사하는 동상이 설치됐을까요? 메리다시는 1905년 5월 멕시코에 들어온 한인 1000여 명이 정착한 도시입니다. 당시 멕시코 농장의 인부 모집 광고를 보고 태평양을 건너온 한인들은 유카탄 반도 곳곳의 에네켄 농장으로 흩어져 일했습니다. 가장 많은 한인들이 살았던 도시가 메리다시였죠.

<YONHAP PHOTO-4537> 멕시코 대한민국로에 세워진 '그리팅맨'
    (메리다[멕시코 유카탄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의 '대한민국로'에서 17일(현지시간) 열린 '그리팅맨' 제막식에서 서정인 주멕시코 한국대사(왼쪽 두 번째), 유영호 작가(오른쪽), 메리다 관계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1.3.18
    mihye@yna.co.kr/2021-03-18 14:56:49/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YONHAP PHOTO-4537> 멕시코 대한민국로에 세워진 '그리팅맨' (메리다[멕시코 유카탄주]=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의 '대한민국로'에서 17일(현지시간) 열린 '그리팅맨' 제막식에서 서정인 주멕시코 한국대사(왼쪽 두 번째), 유영호 작가(오른쪽), 메리다 관계자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1.3.18 mihye@yna.co.kr/2021-03-18 14:56:49/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멕시코로 이주했던 한인들은 ‘에네켄(애니깽)’으로 불렸는데요. 이들이 일했던 농장이 섬유를 뽑아낼 수 있는 에네켄(용설란과에 속하는 식물)을 재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멕시코 등에는 한인 이민 1세대의 후손 3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로 이주했던 우리 한인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일제 치하를 피해 해외로 이주했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일본의 ‘보호국’이 됐습니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전부터 한국에서 세력을 넓힐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고, 조국에서의 삶이 힘들어진 한인들은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등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으로 옮겨갔다가 20세기 초, 미국 하와이와 같은 먼 곳으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농장에서 일할 사람들이 부족했던 미국 등에서 인부들을 구했거든요.

    19세기 후반 미국의 밀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생산한 밀을 포장할 포대용 밧줄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에네켄에서 뽑아낸 섬유로 노끈, 밧줄 등을 만들 수 있었는데요. 섬유 수요가 늘어나면서 에네켄도 더 많이 필요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에네켄을 ‘오로 베르데(oro verde)’라고 불렀어요. ‘초록색 금’이라는 뜻인데요. 에네켄이 많은 돈을 벌어준다고 해서 만든 별칭이지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는 토양과 기후조건이 에네켄 재배지로 가장 적합했어요. 미국은 에네켄을 직접 재배하는 것보다 자국과 거리상으로 가까운 멕시코에서 에네켄을 수입해오는 것이 이득이었어요. 멕시코에 에네켄 농장이 많아지면서 농장에서 일할 사람들이 부족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해외 이민자를 모집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아시아에서도 일할 사람들을 구했어요.

/재외동포재단
한인 노동자들이 에네켄 잎을 잘라내는 모습.
/재외동포재단 한인 노동자들이 에네켄 잎을 잘라내는 모습.

                                                    ◇혹독한 노예노동에 시달렸어요

   1904년 8월 멕시코 유카탄 농장주협회의 대리인인 존 마이어스가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신문에 4년 동안 멕시코 농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어요. 신문광고를 본 한국인들은 열심히 일하면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인부로 지원했어요.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1905년 인천 제물포항에 모여 화물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약 한 달 동안 항해를 마치고 멕시코에 도착한 한인들은 에네켄 농장 30여곳으로 보내졌습니다.

   농장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한인들은 에네켄 잎을 자르는 일을 했어요. 에네켄 농장의 작업 시간은 더위를 피해 새벽부터 시작되었지만, 가장 뜨거울 때는 섭씨 42~43도를 오르내릴 정도였어요. 폭염 아래서 뾰족한 가시가 붙어 있는 에네켄 잎을 잘라내기는 쉽지 않았고 가시에 찔려 손에 상처를 입기 일쑤였죠. 하루 최대 12시간까지 일하기로 했지만, 일이 서툴러 해가 넘어갈 때까지 일하고는 했습니다. 한인들은 하루에 2500여개의 에네켄 잎을 잘랐다고 해요.

   멕시코 농장에서의 일은 사실상 노예노동이었어요. 식사, 잠자리 등 일상생활도 매우 고됐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발행된 한 신문에는 ‘햇빛이 불같이 쏘아 내리는 농장으로 몰아내 여러 가지 참을 수 없는 고역을 시킬 때에야 비로소 자기네들이 노예로 팔려온 것을 짐작하였다. 자기가 노예로 팔려온 것을 비로소 안 동포들은 목을 놓고 땅을 치며 이것이 국가의 죄냐, 사회의 죄냐, 또는 나의 죄냐, 그렇지 않으면 운명이냐 하고 울고 불기를 마지아니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한인들의 멕시코 이주가 정상적인 이민이 아니라 강제 노동자로 속아서 갔다는 사실을 알고 멕시코 정부에 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전보를 보냈어요.

/독립기념관
우리 정부가 멕시코 정부에 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보낸 전보.
/독립기념관 우리 정부가 멕시코 정부에 한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보낸 전보.
/독립기념관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 노동자들의 단체 사진.
/독립기념관 에네켄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 노동자들의 단체 사진.

                                                          ◇독립운동을 지원했어요

   1909년 5월 12일 4년 계약이 끝나자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들은 농장에서 해방됐습니다. 유카탄 반도 농장에 흩어져 있던 한인들은 일제 치하에 놓인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메리다시에 정착했어요. 이들은 미국에서 조직한 한인 독립운동단체 ‘대한인국민회’와 연락해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힘썼습니다. 독립 자금을 모아 보냈고, 독립군을 키우는 학교를 세워 군사 훈련을 실시했어요.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 훈련받은 독립군들이 100명이 넘었다고 해요. 이들은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 합병하자 메리다시에서 일본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의 한(恨)과 독립의 열망이 서린 메리다시는 시 차원에서 5월 4일을 ‘한국 이민자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대한인국민회

   해외에 살던 한인들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입니다. 1910년 미국에서 조직됐는데요. 당시 난립하던 여러 한인단체를 통합해 만들었어요. 북미, 하와이, 멕시코, 시베리아, 만주 등 해외 한인들을 모두 포함했습니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도 이 단체 소속이죠.

   대한인국민회는 해외 한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면서 독립운동을 주도했어요. 미국 정부에 한인과 일본인을 구별해서 대우해 달라고 요청했고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소년병학교, 숭무학교 등을 설립했어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를 열어 독립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문헌>

    1. 최원국/서민영, "뙤약볕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독립운동 지원했어요", 조선일보, 2021.3.24일자. A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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