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글학자 ‘주시경’의 생애와 업적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12.31 18:15

                                                                              한글학자 ‘주시경’의 생애와 업적

   

    주시경 선생은 확고한 언어 의식과 독창적인 이론을 토대로 국어 문법을 기술한 학자로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선생은 지금도 국어학사에서 상징적인 존재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제시한 문법 체계는 현대 국어 문법의 이론적 틀을 마련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주시경 선생은 그 자체가 국어 문법 연구의 시작점이며 그의 문법 이론에 대한 계승, 발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조선의 국운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상황으로 치달아 국권이 흔들리고 민족의 자존심이 훼손되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에 주시경 선생은 1876년 12월 2일 황해도 봉산에서 1녀 4남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선생의 본관은 상주(尙州)로서 백운동서원을 세운 유학자 주세붕의 후손이며, 어릴 때 이름은 상호(相鎬)였다.
   주시경 선생은 갑오경장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893년에 배재학당 교사였던 박세양, 정인덕 등에게 신학문을 배우면서 또 다른 세계와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뜨게 됐다. 이어 1894년인 19세에 큰 뜻을 품고 배재학당에 입학해 학문에 매진하고 1900년 6월 25세의 나이에 배재학당을 졸업했다. 주시경은 21세인 1897년에 당시 나이 16세인 김명훈과 결혼해 가정을 이뤘으며, 슬하에 2녀 3남(솔메, 세매, 힌메, 봄메, 임메)을 두었고, 평생을 국어를 연구하고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계몽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조국의 독립을 위한 더 큰 계획을 눈앞에 두고 1914년 불과 39세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했다.
    주시경 선생의 학문은 크게 보아 문자론과 맞춤법, 음성학과 문법론, 사전 편찬의 노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세 분야에서 선생의 업적은 우리말의 틀을 잡아 올바른 어문 생활을 교육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대한국어문법'(1906), '國語文典音學'(1908), '國語文法'(1910), '말의소리'(1914) 등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국어 문법의 규범적 기틀을 세우고 실용의 방편을 마련하는 데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주시경 선생은 배재학당을 졸업한 1900년부터 한글을 가르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했는데, 당시 배재학당 인근에는 휘문, 명신, 보성, 중앙, 진명, 경신, 숙명, 이화 등의 신학문 학교들이 모여 있었으며, 이곳을 동분서주하면서 주야로 국어를 가르치면서 백성의 계몽을 일깨웠다. 이때 얻은 별명이 '주보퉁이'인데,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책을 보자기에 싸서 매고는 어디든 달려가 가르쳤던 주시경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광스러운 별칭이다.
    1910년을 전후로 평안도·황해도 등 북서지역에서는 신민회(新民會)와 기독교계가 중심이 돼 신문화 운동을 통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급기야 1911년 일제는 무단통치의 일환으로 민족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확대하고 조작해 105명의 애국지사를 투옥한 이른바 '105인 사건'(일명 신민회 사건)을 일으켰다.
   '105인 사건'이 일어나자 일제는 주시경 선생이 교육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던 상동교회를 조선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거점 조직으로 간주하게 됐으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당시 민족주의자들은 만주나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주시경 선생도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해 결국 고심 끝에 만주로 떠날 준비를 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주시경 선생은 갑자기 끊어질 듯한 복통을 호소하고 며칠을 앓아눕다가 끝내 눈을 감고 말았으니 이때가 1914년 선생의 나이 39살 때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던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혹독했던 시대 12월에 태어나 짧은 삶을 살았지만, 민족의 언어와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평생을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쓴 주시경 선생을 떠올려 본다.
                                                                                        <참고문헌>
    1. 백낙천,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을 그리며", 중도일보, 2020.12.31일자. 18면.

시청자 게시판

1,664개(10/84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2] 박한 19851 2018.04.12
1483 윤동주 시인까지 독북공정의 대상으로 삼는 중국 사진 신상구 207 2021.02.19
1482 한국선도의 으뜸 경전, 천부경(天符經) 신상구 126 2021.02.19
1481 미술과 문학의 만남 사진 신상구 170 2021.02.17
1480 2020 대전의 사회지표 조사 현황 신상구 209 2021.02.16
1479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 타계를 애도하며 사진 신상구 200 2021.02.16
1478 여성 항일독립운동가 남자현 열사의 생애와 업적 사진 신상구 352 2021.02.13
1477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의『群島의文明과大陸의文明』을 읽고서 사진 신상구 309 2021.02.12
1476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의 생사관과 노인관 신상구 197 2021.02.12
1475 나다운 나이듦이란 신상구 156 2021.02.12
1474 판소리 명창 조통달 신상구 174 2021.02.12
1473 기본소득, 복지효과 낮아 사진 신상구 156 2021.02.11
1472 대일 굴욕외교는 독립운동 선열들의 뜻을 거스르는 것 신상구 162 2021.02.10
1471 영혼 있는 공무원의 필요성 신상구 210 2021.02.10
1470 민족종교인 증산도와 STB상생방송의 천부경 홍보 대중화 신상구 240 2021.02.09
1469 대구 인혁당사건의 전말 사진 신상구 149 2021.02.08
1468 인간과 자연과의 조우 사진 신상구 217 2021.02.08
1467 소의 말 신상구 185 2021.02.08
1466 독립운동사는 위대한 학문 사진 신상구 212 2021.02.08
1465 무당과 유생의 대결 신상구 200 2021.02.08
1464 세종시의 상징인 전월산과 임난수 장군 사진 신상구 211 2021.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