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북한 MZ세대, 北 체제 흔든다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6.12 11:45

                                                                            북한 MZ세대, 北 체제 흔든다

      

                               “청년들을 무방비상태로 내버려두면 상상밖의 무서운 일이 벌어질수 있다.”

2019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한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모여 장사를 하는 모습. 북한 주민들의 밥줄인 장마당은 북한 전역에 500여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2030들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장마당을 통해 성장해 ‘장마당 세대'로 불린다./강동완 교수 제공

    미·북 ‘하노이 노딜’ 직후인 2019년 4월 백학룡 평안북도 청년동맹 위원장(현 비서)이 노동당 대내 기관지 ‘근로자’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2030세대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백학룡은 “중동에서 ‘아랍의 봄’을 통한 정권교체의 비극이 연발한 것은 20대 청년들이 손전화기(휴대전화)를 통해 서방의 인터넷에 접속해 모략선전물을 보고 동조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백학룡의 경고장은 현재 북한을 휩쓸고 있는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광풍의 전주곡이었다. 이후 북한은 작년 12월 한류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청년세대의 사상정신 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다”며 ‘인간개조론’까지 거론했다. 북한도 이른바 ‘MZ세대’에 대한 공포가 크다는 것이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30대의 김정은이 또래의 MZ세대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 세대가 노동당과 수령의 통제를 당연시했던 이전 세대들과는 성장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성장한 이들 세대의 밥줄은 당의 배급이 아니라 장마당이었고, 500여개의 장마당을 통해 북한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남조선 문화’는 이들의 일상을 지배했다. 장마당이 기르고 한류가 삼킨 북한 MZ세대는 외부세계를 동경하고 개인주의에 익숙하다. 김정은 체제를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나를 먹여살린 건 장마당”

   북한 젊은 세대들에게 노동당은 ‘밥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충성만 강요하는 꼰대’의 이미지로 박제돼 있다. 2017년 입국한 평양 출신 이민영(가명·30대)씨는 “평양에 살아도 배급만으론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님이 장마당에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과외도 받았다”며 “노동당에 충성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양강도 혜산 출신의 박인국(가명·20대)씨도 “중학교 때부터 장마당과 역전 등지에서 구루마와 자전거로 짐을 날라주고 돈을 벌었다”며 “노동당은 잘 모르고 장마당을 집처럼 알고 살았다”고 말했다. 2019년 입국한 평남 북창 출신의 탈북민 최성국(가명 30대)씨는 “대학에 다니면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았다”며 “입당까지 한 제대군인 동창들 중에도 장사에 나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13년 입국한 평양 출신 김일국(30대)씨는 “요즘 20대 애들은 당 간부말도 잘 안 듣는다”며 “행사에 나오라거나 돈을 내라고 하며 ‘내가 왜’라는 식으로 나와 당 간부들이 눈치를 볼 정도”라고 했다. 2019년 탈북한 양강도 출신의 30대 당 간부 출신 탈북민 A씨는 “요즘은 북한의 청년 간부 후보들이 당 간부보다 돈이 되는 법 일꾼이나 무역 일꾼을 선호해 당국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너구리눈' 되도록 한류 중독

    고강도 단속에도 한류는 북중 국경지대는 물론 ‘혁명의 수도’ 평양에까지 확산돼 이제 북한엔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 됐다. 한국 젊은이들이 명절이나 휴가·방학 때 ‘미드’(미국 드라마)를 정주행하듯이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보며 밤을 지새우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한국 드라마로 잠을 설쳐 눈가가 쾡 해진 것을 두고 ‘너구리 눈’이란 은어도 통용된다.

     탈북민 B씨는 “몰래 구한 한국 드라마를 다음날 새벽까지 보고 ‘너구리 눈’이 돼 출근하곤 했다”며 “다음날 조회 때 여기저기서 조는 사람들을 보면 동질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류에 심취한 북한 2030세대는 한국 배우·가수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모방하고, 팬클럽을 만들기도 한다. 이민영씨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F4(꽃미남 주인공 4명)를 모방한 ‘평양판 F4’가 등장하기도 했다”고 했다.

     한류 중독이 탈북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고위층 가운데는 한국 등 외부 문화에 눈을 뜬 10~20대 자녀들을 위해 탈북을 결심한 경우가 많다. 함북 출신의 탈북민 정은주(가명 20대)씨는 “대학에 다니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 먼저 탈북했다”며 “고위층인 부모님까지 설득했다”고 말했다.

     공산정권 시절 루마니아의 공산당 청년동맹(파이오니어스) 출신인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최근 미국의소리 방송(VOA)에 “북한 청년들의 현 상황은 지도자와 사회주의를 겉으로 찬양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믿지 않았던 1980년대 초반 공산 동유럽을 연상하게 한다”고 했다.

                                                          ◇BTS 춤추는 북한 군인들 “전쟁나도 싸움 못할 것”

     많은 탈북민들은 “과연 지금 전쟁을 하면 북한 인민군이 제대로 싸움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입대 전 장마당을 통해 돈 맛을 깨닫고 한류에 중독된 10~20대 젊은이들이 100만 북한군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어 사상 무장 상태가 말그대로 엉망이란 것이다.

     실제 이들은 입대 후에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끊지 못한다고 한다. 2017년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출신 오청성씨는 “군복무 기간에도 USB에 한국 노래를 500곡 정도 넣어서 들었다”고 말했다. 작년엔 백두산 답사에 나섰던 20대 북한 군인들이 오락회(장기자랑)에서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춤을 선보였다가 문제가 됐다는 북한 전문매체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북한이 지난 3월 개정한 행정처벌법에는 “군 입대를 피하려는 사람, 이를 위해 건강진단서를 위조한 사람, 탈영자를 숨겨준 사람에 대해 3개월 이상의 노동교양형을 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다. 2019년 탈북한 함북 청진 출신의 장혁(30대)씨는 “과거 세대와 달리 요즘 20대는 입대나 입당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며 “군대에서 구타당하면 바로 도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류에 푹 빠진 2030 잡으려 한국식 말투까지 단속]

                                   한류 통제부서 권한 대폭 확대… 단속된 인원 즉시 처형도 가능

    작년부터 본격화한 북한 당국의 대대적 한류 소탕 캠페인은 2030세대에 널리 퍼진 ‘괴뢰말 찌꺼기 제거’로 개시됐다.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 아시아프레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는 지난해 6월 ‘괴뢰 말투를 몽땅 불살라 버리기 위한 저격전·추격전·소탕전’ 전개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준(승인)을 받았다. 이 문건은 한국 말투를 쓰는 2030세대를 ‘괴뢰들의 문화에 오염된 쓰레기들’이라고 지칭하며 ‘강한 법적 제재’와 ‘가족에 대한 추방 조치’를 적시했다.

     당시 북한은 ‘김여정 대남 담화’를 통해 일부 탈북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대대적인 대남 비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같은 대남 비난 캠페인은 연말 반동문화사상배격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괴뢰 말투’뿐 아니라 한국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도 최대 징역 15년형에 처하는 ‘한류 금지법’이었다. 올해 들어 노동신문은 주민들의 말투, 옷차림, 화장법을 지적하는 기사를 잇따라 게재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한류 통제 부서인 ’109상무'를 ’727상무'로 변경하고 권한을 대폭 확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109상무의 경우 검열·단속한 사건을 사법기관에 넘겼지만 727상무는 별도의 구류장을 갖춰 검열·단속된 인원을 최대 60일간 조사할 수 있고 기소권도 부여받았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단속에 걸리면 불량배 딱지를 붙여 추방하거나 교화소에 보내고, 부모들은 해임·출당·철직·추방, 심할 경우 처형하는 등 처벌의 강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간부들을 대상으로 ‘혁명적인 사상 문화로 비사회주의와 퇴폐적인 사상 문화를 깨끗이 쓸어버리자’는 제목의 내부 교양 동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상은 한류에 중독돼 한국식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따라한 젊은이들의 실명·거주지·얼굴을 공개하며 “괴뢰 옷차림을 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 벗겨버리고 신성한 우리 거리에 활개치지 못하도록 강하게 투쟁하고 단속할 것”을 강조했다.

                                                                                     <참고문헌>

   1. 김명성, "날 키운 건 당 아닌 장마당" BTS 춤추는 MZ세대, 北 체제 흔든다", 조선일보, 2021.6.11일자.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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