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대종교 충남본사 단군 신앙 글쓴이 localhi 날짜 2014.01.02 00:12
                    대종교 충남본사 단군 신앙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辛相龜)

  일제강점기에 항알독운동을 주도한 대종교는 1909년 항일 애국지사 나철(羅喆, 1863~1916)이 동지 오기호(吳基鎬) 등 10명과 함께 창시한 민족종교이다. 대종교는 민족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색채가 매우 강한 토착 종교이다.

  나철(羅喆)은 1863년 12월 2일 전라남도 보성 출신이다. 그는 조선조 승정원 관료로 일하다가 조국이 일제의 침략을 받아 위기에 처하자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민족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은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있다고 보고 단군교를 창시한 것이다. 그런데 단군교라는 이름을 빙자한 친일분자의 행각이 들어나자 1년 후인 1910년 8월에 단군교를 대종교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이어 오고 있다.

   대종교는 단군 51년인 4286년에 강화도 마니산에서 제천단을 마련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낸 데서 그 종교의 기원을 삼는다. 그 후 고조선 시대에는 천신교, 부여에서는 대천교라고 불렀고, 고구려에서는 경천교, 신라에서는 숭천교, 발해에서는 진종교, 고려에서는 왕검교, 만주에서는 주신교라고 불렀던 것이 비록 그 명칭은 달리하면서도 그 교맥은 하나로 계승되어 오다가 근세에 나철에 의해 부활한 것이 대종교이다.

  대종교에서 대종이란 우리말로 ‘한검, 한얼’이란 뜻으로 ‘大’는 ‘天’에 속하며 우리말로는 '한'이다. '倧'은 신인(神人)을 나타내는 한자로 우리말로는 '검'(神) 또는 '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대종교를 순 우리말로 한얼교로 표기할 수 있다.

  대종교의 신앙의 대상은 한얼님(하느님)이며, 단군은 대종교의 1대 교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근본 교리는 성(性)·명(命)·정(精)의 삼진귀일(三眞歸一)과 지(止)·조(調)·금(禁)의 3법이다.

  대종교는 1975년에 천부경(天符經) 81자를 기본경전으로 채택했다. 그래서 대종교인들은 의식을 올릴 때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봉독하고 있다.

  대종교는 무오독립선언 초안 마련, 북로군정서 광복군 등 무장 독립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참여, 민족학교 설립, 민족사학의 정립, 한글 지키기 운동, 해방 후 건국운동에 이르기까지 현실참여에 매우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사회정치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대종교는 일제 침략에 항거하여 자주 독립을 쟁취한다는 명분 아래 1년여 만에 교도의 수가 2만여 명으로 늘어나는 놀라운 성장을 기록하였다. 이 때 만주 북간도에 지사를 설치하였다가 1914년에는 대종교 본사를 만주로 옮겨 포교 영역을 국내와 만주 일대로 확대시켜나갔다. 현재 대종교의 총본사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1동에 있으며, 서울을 비롯하여 광역시와 각 도마다 도본사가 있다.

  최근 대종교는 내분이 발생하는 바람에 종단 운영에 난맥상을 보이고 있어 교세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실제로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종교 유형별 인구추이에 의하면, 대종교 신도수는 1985년 11,030명, 1995년 7,603명, 2005년 3,766명(남 1,817명, 여 1,949명)으로 해가 지날수록 대폭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교당수와 교역자수 역시 2002년 109개 358명에서 2008년에는 22개 22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충청도의 경우 2005년 현제 대종교 신도수가 대전 100명, 충북 101명, 충남 193명으로 총 394명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이제 대종교는 사회적 기능이 거의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대종교 충남본사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30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실내외에 단군상이 모셔져 있어 누구나 가서 참배할 수 있다.

  대종교 충남본사에서 봄에는 음력 3월 15일에 어천제를, 가을에는 음력 10월 3일에 개천대제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2009년 음력 9월 16일 아침 9시에 윤순구(尹淳? : 일명 和昌) 선도사가 폐암으로 타계한 이후 대종교 충남 본사는 서울 대종교 본사와 연락이 끊기고 방치되다시피 하여 이미 도맥이 거의 끊어진 상태이다.

  2013년 말 현재 신도가 한 명도 없어 윤순구 선도사 부인 황의순(黃義順)씨가 대종교 충남본사 건물을 홀로 관리하고 있는데, 81세로 노쇠하여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다. 2013년 12월 31일 오전에 대종교 충남본사를 방문해 교당 내부로 들어가 보니 눈뜨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교당 내부가 불결했다. 온갖 살림살이 도구와 제기가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고 쥐가 여기저기 다닌 흔적이 있어 마치 폐가와 같았다.

  황의순씨는 이제 노쇠햐여 관리하기 힘드니 “단군영정을 누군가 모셔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윤순구는 1922년 1월 25일 서울의 해남윤씨(海南尹氏) 가문에서 부 석천(石泉) 김강현(金康鉉)과 모 풍양 조씨(趙氏) 사이의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배재중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1952년에 대종교에 입문했다. 공무원 퇴직 후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대종교 대전?충남 도본사 도전(현 총무), 정교(교질), 선도사를 역임하고 민족정신연구원을 창립했다. 부인 황의순(黃義順)와의 사이에 2남 10여를 두었다.  

  윤순구 선도사 묘소는 공주시 봉황로 1에 위치하고 있는 공주시청 뒤의 선산에 자리잡고 있다.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 54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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