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백화문으로 위안스카이 독재 비판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3.07 03:50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백화문으로 위안스카이 독재 비판


  최근 한 중국인이 쓴 소셜미디어 글이 화제를 몰고 왔어요. “루전 전체가 낙관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는 문구였죠. 알쏭달쏭한 이 말, 무슨 뜻일까요? ‘루전(魯鎮)’은 중국 근현대 작가 루쉰(魯迅·1881~1936)이 1919년 발표한 단편소설 ‘쿵이지’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가상 마을이에요. 이 작품은 당시 몰락해 가던 청나라 말기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천안문) 광장. '산둥반도를 중국이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군중으로 발 디딜 데가 없는 모습이에요. 이른바 '5·4 운동'의 한 장면인데요, 이때 베이징 내 대학교 13곳에서만 대학생 총 3000명이 참여했다고 해요.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원래 중국 땅이었던 산둥반도의 이권을 강대국 멋대로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기자 이에 항의하며 모인 것이에요. 결국 같은 해 6월 28일 프랑스 파리에 파견됐던 중국 대표단은 파리강화회의 결정에 조인(동의한다고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어요. 이런 5·4운동은 1915년부터 중국의 제도와 사상 등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 '신문화운동'이 젊은층을 각성시킨 결과로 평가받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제공: 조선일보

  뜬금없이 루전을 언급한 소셜미디어 글은, 중국의 한 관영 매체가 중국의 경제발전을 자화자찬하며 ‘온 나라가 낙관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고 보도한 기사를 비꼰 것이었어요. 루쉰의 소설 ‘쿵이지’는 현재 중국 온라인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해요. 중국 당국이 검열에 나선 거죠.

  루쉰은 이 작품 외에도 ‘광인일기’ ‘아Q정전’ 등 중국의 암울한 현실과 낡은 전통을 고발하는 글을 많이 썼어요. 특히 루쉰은 천두슈, 후스 등과 함께 유교적·봉건적 제도와 전통에 반대한 계몽 운동인 ‘신문화운동’을 주도했죠. 오늘은 신문화운동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신문화운동을 이끈 중국의 사상가 루쉰. 1918년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소설 '광인일기'를 내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필명으로, 본명은 저우수런이에요. /위키피디아© 제공: 조선일보

                                             황제 쫓아내도 또 독재… “근본 개혁하자”

  2000년간 지속된 중국의 황제 체제가 무너졌어요. 1911년 중국 청나라 황실이 민간 철도를 국유화해 해외에서 돈을 빌려오려는 데 반발해 신해혁명이 일어나더니, 1912년 황제를 두지 않는 새 나라로 중화민국이 수립된 것이죠. 이로써 중화민국 초기에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무총리급인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위안스카이가 독재적 권력을 구축하기 시작하죠. 위안스카이는 자신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공교(유교)를 국교로 주장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겠다는 운동을 펼쳐 1915년 황제의 자리에 올라요. 4년 만에 중국은 다시 암울한 독재 통치와 봉건 체제로 회귀한 겁니다.

   이에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선 중국 개혁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신문화운동’이 일어납니다. 1915년 천두슈가 발간한 ‘청년잡지’가 시작점이에요. 천두슈는 일본에 유학해 서양 사상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던 혁명가입니다. 위안스카이를 타도하자는 혁명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귀국해 잡지를 발행한 것이죠. 이 잡지는 봉건 제도를 비판하면서 서구의 새로운 사상을 수용하자는 글들을 실었어요. 잡지 편집인으로 루쉰, 후스 등과 같은 사상가들이 참여했습니다.

                                         과학 지식 중시하고 글 쉽게 쓰는 ‘백화문’도

  사상 개혁은 신문화운동의 중요한 축이었어요. 민주주의와 과학을 중시하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하자고 했죠. ‘청년잡지’에서 이름을 바꾼 잡지 ‘신청년’은 의학, 물리학, 생리학 등 과학적 지식을 보급하고자 했어요. ‘신청년’은 또 사회도 생물처럼 ‘적자생존(適者生存)’한다는 사회진화론을 내세웠어요. 중국 전통문화를 현대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구시대적인 유물로 취급해 반대하면서, 유교 사상과 봉건적 관습으로 억압당한 개인과 여성을 해방시킬 것을 주장했죠.

1915년 창간해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된 잡지 '신청년' 표지. 창간 당시 제목은 '청년잡지'였으나 이듬해 이름을 바꿨어요. /위키피디아© 제공: 조선일보

  신문화운동은 특히 글쓰기 분야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어요. 그래서 글쓰기 분야만 따로 떼어 ‘신문학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당시 중국의 글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쓰던 고전적인 한문 문법으로 쓰였어요. 고전에 익숙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은 읽기도 쓰기도 어려웠죠. 신문화운동에서는 구어체를 받아쓰는 글쓰기 방법인 ‘백화문’을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했어요. 사상가 후스는 ‘문학개량주의’라는 글에서 백화문을 통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국민 문학과 대중적인 사회 문학을 만들어나가자고 했죠. 백화문으로 쓴 문학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읽고 변화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스는 직접 최초의 백화문 시집 ‘상시집’을 내기도 했어요. 천두슈도 문학의 형식과 내용을 모두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런 움직임은 많은 지지를 받았고 이후 ‘신청년’은 백화문으로 발간됐습니다.




  루쉰은 중국의 글쓰기를 바꾼 신문학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는 몰락한 사대부 집안의 장자로 태어났어요. 국비 유학 자격을 얻어 일본으로 건너가지만, 그곳에서 차별받으며 조국이 처한 현실을 통감하고 중국 사회의 변혁을 촉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귀국한 이후 ‘신청년’에 편집인으로 참여하면서 1918년에는 최초의 백화문 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해요.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 소설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본명인 ‘저우수런(周樹人)’ 대신 ‘루쉰’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죠.

                                                 소설 ‘광인일기’로 유교 위선 고발

  루쉰은 중국의 글쓰기를 바꾼 신문학운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에요. 그는 몰락한 사대부 집안의 장자로 태어났어요. 국비 유학 자격을 얻어 일본으로 건너가지만, 그곳에서 차별받으며 조국이 처한 현실을 통감하고 중국 사회의 변혁을 촉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귀국한 이후 ‘신청년’에 편집인으로 참여하면서 1918년에는 최초의 백화문 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해요.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 소설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본명인 ‘저우수런(周樹人)’ 대신 ‘루쉰’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죠.

  이처럼 루쉰이 소설 집필을 통해 현실을 꼬집은 것은 많은 사람이 함께 소설을 읽고 각성해야 중국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루쉰의 ‘광인일기’는 피해망상증에 걸린 광인이 주인공으로, 그의 일기를 통해 봉건 사회의 가족 제도와 그 토대가 되는 유교 사상의 위선과 비인간성을 고발한 작품이에요. 그리고 1921년에는 ‘아Q’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신해혁명 직후 변한 것이 없는 중국의 상황을 신랄하게 풍자한 ‘아Q정전’이라는 소설도 연재했습니다.

  신문화운동은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이후 그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공산주의가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자 ‘신청년’도 편집 방향을 바꾸어 공산주의를 연구하고 선전하는 데 앞장섰어요. 그리고 천두슈가 1921년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되어 활동하면서 ‘신청년’은 공산당 기관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문화운동에 같이 참여했던 후스와 같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은 이에 반발하였고, 그는 1922년 자유주의적 성격의 잡지를 따로 창간하기에 이르렀어요. 신문화운동의 주체 세력들이 사상적으로 분열하며 신문화운동은 활력을 잃어갔어요. 그렇지만 이 운동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인 학생과 청년층을 각성시켰어요. 그 결과, 중국의 반제국주의 운동인 5·4운동을 이끌어냈다는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답니다.

                                                                                              <참고문헌>

  1. 서민영,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백화문'으로 위안스카이 독제비판", 조선일보, 2024.3.6일자. A27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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