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한암당(寒闇堂)은 재야민족사학자였던 이유립 선생의 호이자 이유립(李裕?) 선생이 1963년부터 1976년까지 13년간 거주했던 춥고 어둡고 비좁았던 사글세집의 당호(堂號)를 의미한다.
제목 | 이미 흉물로 전락한 한암당, 재개발 서둘여야 | 글쓴이 | localhi | 날짜 | 2014.07.15 01:36 |
한암당(寒闇堂)은 재야민족사학자였던 이유립 선생의 호이자 이유립(李裕?) 선생이 1963년부터 1976년까지 13년간 거주했던 춥고 어둡고 비좁았던 사글세집의 당호(堂號)를 의미한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1907년 평북 삭주의 고성이씨(固城李氏) 가문에서 독립운동가인 단해(檀海) 이관집(李觀楫)의 아들로 태어나 일평생 항일독립운동가, 재야민족사학자, 한문학자, 교육자, 정통국사광복운동가로 살다가 79세를 일기로 1986년에 타계해 남양주 송추공원묘지에 안장되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한국사 연구와 강의에만 전념하다 보니 일평생 가난을 면하지 못했다. 부인 신유경(신매녀) 여사가 잡화 행상을 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한암당 이유립 선생은 선비 정신이 강해 아무리 가난에 시달려도 외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 단석(檀石) 양종현(梁宗鉉, 65세)의 증언에 의하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서울 광화문 앞에 거금을 투자해 이유립 선생을 도우려고 하다가 이유립 선생의 거절로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한국 3대 명리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청주와 서울에서 돈을 많이 모았던 자강(自彊) 이석영(李錫暎, 1920-1983) 선생의 경제적 지원은 동향의 가까운 친척이라서 그랬는지 뿌리치지 않고 부담 없이 받아 단단학회(檀檀學會) 기관지인 <커발한>을 발행하고, 저서 7권을 발간하는가 하면, 1969년에 강화도 마니산에 커발한 개천각(開天閣)을 세우고, 제천행사를 했다고 한다.
전국에 이유립 선생 제자가 5,000여 명이나 산재해 있지만, 수제자인 양종현(梁宗鉉, 65세)이 유일하게 이유립 선생 평전인『백년의 여정』(상생출판사, 2009.11)을 발간했다. 그런데 양종현이 2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도 세종노인전문병원 606호에 입원 치료 중에 있어 외부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립 선생이 재야민족사학자이라서 그런지 아직까지 그를 조사 연구한 석사와 박사 학위논문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유립 선생이 대전에 13년 간 거주하며 제자를 11-15명이나 양성하고, 단단학회 기관지인 <커발한>을 53호까지 발간하며, 전국적으로 정통국사광복운동을 전개했지만, 지금 대전에는 아직까지 그를 기리는 추모사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대전의 향토지에는 이유립에 대한 기록이 전무해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한배달 박정학 회장이 단단학회 회장을 맡고, 박정학 회장 부인인 전유선 여사가 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세미나 개최,『대배달민족사』 발간 등 여러 가지 추모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천만 다행이다.
지난 2014년 7월 7일 오후와 7월 8일 오후에 한암당을 다시 찾아가 보니, 한암당은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이미 흉물로 변해 붕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암당은 2층 목조 건물로 1층과 2층이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무 계단과 1층과 2층 사이에 뻥 뚫린 구멍이 너무 좁아 몸을 최대로 움츠려야만 1층에서 2층으로 무사히 올라갈 수 있다. 1층은 부엌과 2평 정도의 문간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은 3평 정도의 방 하나로 꾸며져 있다. 이유립 선생은 2층 방에서 홀로 한국사를 연구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제자들이 찾아오면 운초(雲樵) 계연수(桂延壽, 1864-1920) 선생이 1911년 3월에 백암(白岩) 홍범도(洪範圖) 장군과 송암(松岩) 오동진(吳東振) 장군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스승 인 해학(海鶴)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아 발간한『환단고기(桓檀古記)』30권 중 1권을 가지고 양 무릎을 맞대며 한국사와 한문을 무료로 가르쳤다. 만약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제자들의 가정을 직접 방문해 한국사와 한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롯데건설이 최근 은행동 일대를 재개발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는 바람에 중단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한암당은 이제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지난 7월 8일 오후에는 국학신문 윤한주(35세) 기자를 한암당으로 안내해 인터뷰를 하며 취재를 하였는데, 1층 부엌과 문간방에는 각종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있어 차마 보기가 민망했다. 나무 계단을 올라 2층 방을 둘러보아도 역시 방치되어 억망진창이었다. 문화콘텐츠로 당장 개발할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유물과 유적이 이렇게 아무런 소용없이 버려지다니 정말로 한심한 생각이 들어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나왔다. 그리하여 국학신문 윤한주 기자와 신상구 박사는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날씨로 인해 땀이 온몸에 주룩주룩 흘러내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한암당을 역사적인 유적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로 한암당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촬영했다. 그런데 누군가 최근에 한암당을 방문하여 부엌의 벽에 한민족 최고의 조화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을 붙여놓고 간 사실을 발견하고, 아직도 일부 국민에게 나마 민족혼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대전광역시와 중구청이 롯데건설로 하여금 재개발 사업을 다시 추진하도록 촉구하여 한암당을 체험교육장소나 관광지로 개발해 침체된 구도심을 활성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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