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암당 이유립 선생 추모 사업 두 가지 약속 글쓴이 localhi 날짜 2014.07.29 02:23

                  한암당 이유립 선생 추모 사업 두 가지 약속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辛相龜)

   단석(檀石) 양종현(梁宗鉉, 65세)은 대전 목동에 위치해 있던 홍윤공민고등학교 1학년 재학 때인 18세 때에 친구인 송인수의 소개로 한암당 이유립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이유립 선생이 1986년에 79세를 일기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무려 20여 년간 무료로 민족사학과 한문을 수학했다.

   이유립 선생은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 107번지에 위치한 춥고 어둡고 비좁은 5평 남짓한 적산가옥 224호 사글세방인 한암당(寒闇堂)에서 1963년부터 1976년까지 13년간 거주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민족사 연구와 강연에만 몰두하다 보니 수입이 거의 없어 사모님인 신유경 여사가 4남매의 부양과 가정 살림을 책임질 수 밖에 없었다. 신유경 여사는 온갖 잡화와 아이들의 먹거리, 낱개비 담배 등을 손수레(리어커)에 가득 싣고 이곳 저곳 단속반에 쫒겨 다니며 팔다가 회상사 앞 도로변이나 삼성초등학교 뒷골목의 담벽에 자리를 잡고 앉아 팔았다. 신유경 여사가 피치못해 자리를 비울 경우에는 이유립 선생이 대신 팔았다. 아이들이 와락 손수레를 둘러싸면 이유립 선생은 어쩔줄을 몰라 쩔쩔맷다. 그러나 양종현은 물건 값을 잘 몰라 대신 팔아줄 수가 없어 옆에 서서 불량학생들이  물건을 슬쩍 훔쳐가는 것을 막는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다. 행상으로 가정살림을 꾸리기 어려울 때에는 신유경 여사가 가정부 살이를 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어떤 때는 때 거리가 없어 라면 가닥을 지붕의 처마 끝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에 불려서 먹고, 라면도 구하지 못할 때에는 2주일 동안이나 굶으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민족사를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자들이 찾아오면 무릎을 서로 맞대고 앉아 운초 계연수 선생이 항일독립운동가인 백암(白岩) 홍범도(洪範圖) 장군과 송암(松岩) 오동진(吳東振) 장군의 자금 지원을 받고 스승인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받아 1911년 3월에 만주 관전현에서 발간한 30권의『환단고기』 중 한 권을 교재로 활용하여 민족사를 열강 했다고 한다. 이유립 선생은 교육열이 남달라 한 번 강의를 시작하면 보통 5-7시간을 연속 강의 했고, 길게는 12시간까지도 강의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암당에 단단학회 간판을 내걸고 1963년부터 기관지인 <커발한>을 53호까지 발간하고, 박창암 장군의 도움을 받아 전국적으로 국사광복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대전 은행동에서 양종현을 비롯해 11-15명의 제자를 양성했지만, 일평생 이유립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민족사학을 연구하는 제자는 아무도 없다. 다만 양종현 만이 이유립 선생의 전기인『백년의 여정』(상생출판사, 2009.11.19)을 발간해 이유립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이유립 선생 제자가 5,000여 명이나 생존하고 있다고 하는데, 양종현처럼 이유립 선생과 거의 일평생을 서로 교류하며 사제지간의 정을 나눈 제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이유립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계승해 민족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는 한배달 이사장 겸 단단학회 회장인 박정학 역사학 박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인 신상구 국학박사, 이유립 선생 수제자인 전영배 선생 등 10여 명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유립 선생이 재야 민족사학로 일평생 살다보니 강단사학자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해 아직까지 이유립 선생을 전문적으로 조사 연구한 석·박사학위논문이 단 한 편도 발표되지 않아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런데 양종현이 2년 전인 2012년 11월 3일에 대전광역시 동구 원동 고서점가에 위치하고 있는 육일서점에서 고서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대흥동에 위치한 대전대 한방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을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다음, 2012년 11월 28일에 세종노인전문병원 606호에 입원하여 치료를 계속 받는 바람에 그 동안 이유립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는 사업을 전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야 민족사학자인  신상구 박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실로 40여 차례나 찾아가 양종현과 면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유립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칼럼을 작성해서 지방과 중앙의 신문에 5번이나 게재하고, 이유립 선생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논문인「이유립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 107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한암당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이유립 기념비나 기념관을 건립해 체험교육장으로 활용함으로써 대전 구도심을 활성화 하자는 내용의 칼럼은 사회적 파장이 커서 앞으로 중구청이나 대전광역시에서 정책 자료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유립 선생을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고 남양주시 송추공원에 안장된 이유립 선생 시신을 국립묘지로 모셔야 된다는 내용의 칼럼도 사회적 반응이 좋아 앞으로 이유립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행히도 이유립 선생 수제자인 양종현이 증산도 안경전(安耕田) 종도사님의 배려로 2014년 7월 25일 퇴원하여 이제는 마음 놓고 이유립 선생의 추모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인 신상구 박사가 2014년 7월 27일 오후 늦게 증산도 선화도장으로 양종현을 찾아가 만나 면담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추모사업을 함께 하기로 굳게 약속했다.

  첫째는 이유립 선생의 민족사학 연구 업적을 집대성한『대배달민족사』(고려가, 1987)를 머지않아 새로 발간한다.

  둘째는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인 신상구 박사가 작성한 이유립 선생 독립유공자 지정의 필요성에 대한 칼럼을 근거로 이유립 선생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한다.

   아무튼 양종현이 7월 25일 퇴원하여 함께 이유립 선생의 추모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반갑고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양종현의 퇴원을 축하하고, 하루라도 빨리 건강을 되찾아 이유립 선생의 추모사업을 차질 없이 전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 57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태그 638

시청자 게시판

2,118개(73/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6222 2018.04.12
677 568주년 한글날을 경축하며 localhi 2374 2014.10.10
676 4347주년 개천절을 경축하며 localhi 2798 2014.10.04
675 괴테와 아인슈타인을 능가한 천재 김웅용 교수 [1] localhi 2530 2014.10.02
674 서산 읍내동 녹녀봉 단군성전 localhi 2664 2014.09.24
673 홍익인간의 출전과 참뜻 [1] localhi 3070 2014.09.23
672 [조용헌 살롱] [852] 후천개벽과 陰의 시대 [1] clcjstk111 3527 2014.09.21
671 한국의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 방법과 현황 localhi 3706 2014.09.21
670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하며 localhi 3119 2014.10.01
669 환단고기 북콘서트 독일편 다시보기 문의 [2] gfujp3c 2281 2014.09.28
668 단재 신채호 선생을 정신병자 또는 또라이라고 폄하하는 식민사학자들 localhi 2401 2014.09.17
667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채 살아가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람들 localhi 2640 2014.09.12
666 어천절의 기원과 제물의 유래 localhi 2757 2014.09.10
665 유관순 열사가 항일독립만세운동의 영웅으로떠오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 localhi 2725 2014.09.09
664 독일과 러시아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 민속 관련 자료의 중요성 localhi 2359 2014.09.07
663 이유립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localhi 2247 2014.09.06
662 강씨 다음은 안씨인가? clcjstk111 2087 2014.08.30
661 상수 1200년 중수 900년 하수 700년 산다더니... clcjstk111 2826 2014.08.30
660 왜 상제님은 세월호같은 사건은 예견못하셨는지 궁금합니다. [4] clcjstk111 2433 2014.08.30
659 한국은 언제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을까 [1] localhi 3006 2014.08.29
658 계룡산 중악단 산신제 localhi 2734 201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