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월오봉도의 유형 연구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04.11 02:06
                                                      일월오봉도의 유형 연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일월오봉도(Sun and Moon and Five Peaks, 日月五峯圖)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御座) 뒤, 또는 야외 행사 때에는 천막 안의 옥좌 뒤에, 사후에는 빈전(殯殿)에, 진전(眞殿)에는 국왕의 초상화 뒤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병풍을 말한다. 현재도 4첩, 8첩, 혹은 좁은 한 폭 짜리 협폭(挾幅), 또는 삽병(揷屛) 형식 등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조선시대 여러 가지 의궤(儀軌) 기록에 의하면, 이 병풍은 ‘오봉산병(五峰山屛)’, 또는 제일 많은 경우 단순히 ‘오봉병(五峯屛)’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조선시대 문헌기록의 명칭을 따라 오봉병(五峯屛)이라고 불러야 한다.
  일월오봉도를 보면  다음과 같은 형식상, 구도상의 특징을 보인다.  1) 화면의  중앙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큰 산봉우리가 위치하고 그 양 쪽으로 각각 두개의 작은 봉우리가 협시(挾侍)하는 양 배치되어 있다. 2) 해는 중앙 봉우리의 오른편에 위치한 두 작은 봉우리 사이의 하늘에, 달은 왼편의 두 작은 봉우리 사이의 하늘에 떠 있다. 3) 폭포 줄기는 양쪽의 작은 봉우리 사이에서 시작하여 한두 차례 꺾이며 아래쪽의 파도치는 물을 향해 떨어진다. 4) 네 그루의 적갈색 수간(樹幹)을 한 키 큰 소나무가 병풍의 양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바위 위에 대칭으로 서 있다.  5) 병풍의 하단을 완전히 가로질러
채워진 물은 비늘모양으로 형식화되어 반복되는 물결무늬로  문양화(文樣化) 되어있다. 산과 물의  경계선 또는 작은 봉우리 같은 형식화된 물결들의 사이사이, 혹은 그 두 군데 모두에 위로 향한 손가락을 연상케 하는 역시 형식화된 하얀 물거품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다.
  하늘에 해와 달이 동시에 걸려있다는 것은 낮과 밤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연의 원리인 음(陰)과 양(陽)의 기운을 의미한다. 해와 달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을 뜻한다. 자강불식이란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가치를 갈고 닦아 만 백성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해와 달은 피곤 하다고 해서 하루를 쉬지 않는다.
  다섯 개의 오봉은 음양을 뜻하는데, 모양으론 목(木) · 화(火) · 토(土) · 금(金) .수(水)에 해당하고, 의미로는 인(仁) · 예(禮) · 신(信) · 의(義) · 지(智)를 뜻한다. 맛으로는 시고 , 쓰고, 달고, 맵고. 짠 맛을 뜻한다. 방향으로는 동, 서, 남, 북, 중앙을 표현하니 우리나라 5 대 명산을 뜻하기도 한다. 양쪽으로 놓여진 소나무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어주는 존재를 뜻한다.
  일월 오봉도에는 삼재가 숨어 있다. 삼재(三才)란 천(天), 지(地), 인(人) 삼원을 뜻하는데, 우주를 뜻하는 삼원 중에 가장 중심이 사람이란 뜻이다.
  일월 오봉도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림 자체가 미완성이란 점이다. 이 그림에 왕(王)이 앞에 있으면 (三 +ㅣ= 王) 삼재를 하나로 관통되어 그림이 완성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위상을 드러내면서 또한 조선이 표방하는 국가적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 일월오봉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우주와 사회의 소통자로서 임금의 덕치를 표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시대에 왕(王)의 뒤에는 항상 "일월 오봉도" 라는 그림이 있었다. 왕이 행차 할때나 왕이 죽어 혼백이 모시는 곳에도 늘 일월 오봉도가 있었다. 심지어는 초상화 뒤에도 일월오봉도가 자리하고 있다.
  일월오봉도는 임금과 관련된 여러 장소와 다양한 의식에 사용되었으며, 그 장소와 의식에 따라 일월오봉도의 모양도 다양했다.
  일월오봉도는 정형성을 띄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강조점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되었다. 그 차이점에 따라서 일월오봉도는 (1) 동쪽 강조형, (2) 서쪽 강조형, (3) 중앙 강조형, (4) 전체 균형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자리나 지위 또는 임금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상징하고, 임금의 존재를 대신하는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일월오봉도가 담당했던 기능들이 사서 속에서는 단의(丹?)와 부의(負?)가 일월오봉도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일월오봉도의 하늘ㆍ해ㆍ달ㆍ산ㆍ물/땅ㆍ소나무는 가시적인 자연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매우 이상적인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일월오봉도와 함께 하는 임금은 만물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는 존재이다. 일월오봉도는 어좌 옆에 두었던 병풍들과 달리 유교적 이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자연을 차용하여 조선의 이념을 형상화하였다. 조선의 일월오봉도에는 유학의 이념이 담겨 있지만, 유학을 수용한 다른 나라에서는 일월오봉도와 같은 구도와 기능과 상징을 가진 동일한 것이 없다.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위치와 자연의 조화라는 유학적 이념 속에서 조선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조선시대 국왕의 일상생활이나 궁중의 각종 의례에서 오봉병이 차지하는 막중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오봉병의 도상(圖象)이나 그 유래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몇몇 학자들은 『시경(詩經)』「소아(小雅)」의 「천보(天保)」시에 묘사된 다섯 종류의  산봉우리, 즉 산(山), 부(阜: 언덕), 강(岡: 산등성이), 능(陵: 큰 언덕), 그리고 남산(南山)에서 오봉(五峯)의 도상이 유래한 것임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이전의 것으로 현재의 오봉병과 같은 주제를 그린 그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남송(南宋)의 마화지(馬和之, 12세기 초 활동)가 『시경(詩經)』의 내용을 묘사한 그림을 여러 장 그렸는데 이 가운데 「천보(天保)」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산수화의 형태를 취한 이 그림은 산의 양쪽에 해와 달을 각각 그려 넣고 제목을  ‘천보’라고 적어 넣기는 하였지만 위에서 살펴본  천보시의 모든 요소를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천보(天保)」보다 더 형식화된 형태는 1605년 초간(初刊)된『정씨묵원(程氏墨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먹[墨]의 표면에 찍는 도안을 목판화로 그린 것이다.『정씨묵원』에 적힌 제목은 「천보구여(天保九如)」이다. 이 판화 그림에서는 산봉우리들이 조선시대의 오봉병에서와 같이 완전히 형식화되지 않았고, 가운데 봉우리의 왼쪽에 있는 달은 오봉병에 보이는 보름달이 아니라 반달이다. 실제로 시에 표현된 “차오르는 달”을 보다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소나무와 잣나무 역시 우리나라 오봉병의 것들처럼 화면의 양쪽 끝으로 각각 갈라져 두 개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지 않고 보다 자연스러운 나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마화지(馬和之)의 산수화적인 표현과 매우 형식화된 조선의 오봉병의 중간쯤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오봉병들 가운데 간기(刊記)가 적혀있거나 그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오봉병은 단 한 좌(座)도 없다.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 어진 뒤에 있었던 4첩 병풍이 그 구도(構圖)로 보아 다른 병풍과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우선 4폭의 크기가 모두 같지 않다. 가운데 두 폭은 247×86cm이고, 양쪽 가의 두 폭은 247×78cm로서 전체 크기는 247×333cm이다. 물결무늬로 가득한 물과 흰 포말부분이 병풍의 전체 높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점이 다른 오봉병과 다른 점이다. 이 병풍에서 오봉과 일월이 마치 바다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두 폭포가 구도에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오봉병은『정씨묵원』의「천보구여」장면을 가장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모든 요소들이 훨씬 형식화되어 배치되어 있다. 경기전의 오봉병은 임진왜란 후 파괴되었던 경기전을 1614년 새로 복원하여 어진을 봉안하였을 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빈전(殯殿)과 혼전(魂殿)의 오봉병에 관하여는 당가(唐家) 안 북벽에 오봉을 그리고 동서 벽에는 여록(餘麓)을 그리고 일월경(日月鏡)을 주벽에 철사로 걸어놓는다는 기록이 1674년 『현종대왕 빈전도감의궤』에 보인다. 1758년의『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도설(圖說)에는 당가의 그림은 있으나 오봉병의 그림은 없고 일월경을 걸되 새로 만들어야 할 경우 금니(金泥)와 은니(銀泥)로 칠하라는 말이 있어 원래는 모종의 금속으로 만들어 쓰던 것을 영조(英祖)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비용절감 차원에서 새로운 규정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선조 23년(1590)에 문정전(文政殿)에 도둑이 들어 어좌 일월경과 문장(門帳)을 도둑맞아 피의자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있어 어좌에도 일월경을 사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봉병과 일월경의 관계는 앞으로 더 밝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1. 명세나,「조선시대 오봉병 연구 - 흉례도감의궤 기록을 중심으로-」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7.
  2. 강혜정,「일월오봉도의 자료 검토와 유형 연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학위논문, 2014.
  3.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2015.4.10.
  4. 관운장, “임금 철종과 일월 오봉도....  유명인 사주풀이”, 2011.6.13.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1994),『아우내 단오축제』(1998),『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지역 상여제작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등 6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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