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왕의 다른 이름 무당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07.01 02:57

                                   왕의 다른 이름 무당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글(문장)은 글자(문자)를 모은 것이다. 글자는 내뱉는 순간 흩어지는 말을 고정하기 위해 고안한 인류의 발명품이다.

   남자 무당을 법사 또는 박수, 여자 무당을 보살이라고 한다. 법사와 보살은 불교 용어인데, 무속과 불교가 습합되어 남자 무당을 법사, 여자 무당을 보살이라고 부른 것 같다.

   신라 초기 왕의 호칭이라는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斯今), 마립간(麻立干) 등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소리도 그렇지만, 한자의 뜻은 무엇일까? 또 그 말들은 왜 ‘임금’의 뜻이 될까 등이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 시조 단군(檀君) 또한 그렇다.

    제정일치 즉 제사와 정치가 하나였을 고대에는 신(神)의 뜻을 받드는 지도자의 모습을 일컫는 이름이 지역마다 있었으리라. 기록을 위해 말로 전해오던 그 이름의 소리에 글자를 붙여야 했다. 상당수의 땅 이름도 이와 비슷하다. 마침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가 그 역할을 했다.

    되도록 무격(巫覡) 즉 신과 통하는 무당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글자를 붙였을 것이다. 역사, 고고학, 인류학 등에서 동서양 첫 문명의 정치적 파워는 거의 이런 제사장들이다.  

    진시황릉 병마용갱의 호사스러운 마차. 중국을 통일하고 스스로 황제(皇帝)란 이름을 붙인 군주 진시황은 저 세상에서 이 마차를 타고 있을까.

     BC 14세기경 황하(黃河) 유역에서 생긴 갑골문은 은(殷)나라라고도 하는 고대 상(商)왕조 때 신의 뜻을 묻는 신탁(神託)의 절차로 거북의 배껍질(甲·갑)이나 소의 어깨뼈(骨·골)에 왕이 점을 치고 기록한 것이다. 이 기록은 사물의 모양을 그린 상형문자로 시간이 가면서 오늘날의 한자로 변해왔다. 신의 뜻을 살피고 주술(呪術)을 펴는 것이 왕의 기능이었던 것이다.

    왕(王)과 군(君)은 3500년 전의 갑골문에서부터 등장한다. 유서 깊은 단어들이다. 王은 무기인 도끼 그림으로 ‘권력’의 뜻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설명과 ‘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모자 그림이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갑골문을 읽은 결과다. 허신의 ‘설문해자’(100년경 저술)는 석 삼(三)과 뚫을 곤의 합체로, 하늘 땅 사람의 3재(才)를 꿰뚫은 존재라는 그럴싸한 ‘썰’을 풀었다. 1899년 처음 발견된 갑골문의 존재를 대학자 허신은 몰랐다. 君은 다스릴 윤(尹)과 입 구(口)의 합체다. 홀(笏)과도 같은, 권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쥔 손과 명령하는 입을 함께 그린 것이다. 입 구(口)는 신에 대한 기도 또는 그 내용을 담은 상자로도 본다. 무당으로서의 임금의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인 것이다. 상대를 존경하는 뜻에서, 또 어진 이를 공경하는 호칭으로 군자(君子)라는 이름을 쓰면서 이 君자는 무게감을 더 갖는다. 군자는 선비나 젠틀맨과 짝할 수 있는 말이다. 시간이 흐르며 친구나 손아랫사람을 친근하게 “김군!” “이군!”으로 부르게도 됐다. 말의 쓰임새가 넓어진 것이다. ‘임금=王=君’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육당 최남선은 불함(不咸)문화론에서 ‘단군’이 무당의 다른 이름 ‘당굴’을 사음(寫音)한 것인데 이는 몽골의 텡그리(tengri 하늘 또는 신)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 무속학자 남강 김태곤(1937∼1996)도 현지답사를 통해 몽골 등의 무격신앙이 우리 전통과 많은 친연성(親緣性)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차차웅’도 당굴처럼 무당의 기능을 표현한 이름이었다고 설명된다.

     왕(王)은, 신라에서는 마립간 이후부터 쓰였다. 왕 칭호는 고조선 때부터 중국을 따라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제사장(무당)으로서의 이미지는 옅어지고 권력의 화신(化身)으로서의 존재감이 확대됐으리라.

     임금 또는 왕은 군주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다. 중국이나 우리 역사에서는 군상(君上), 군왕(君王), 군장(君長), 인군(人君), 인주(人主), 주공(主公), 주군(主君) 등도 함께 쓰였다. 지존(至尊), 존엄(尊嚴) 또는 성스러운 거동(擧動)이라는 뜻의 성의(聖儀) 등은 귀하다는 뜻의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호칭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미라를 담고 있었던 황금관(棺). ‘소년왕’으로 알려진 그는 가장 유명한 파라오 중 하나다.

    영어 킹(king) 또는 퀸(queen·여왕 또는 왕비) 말고도 지구촌에는 왕의 이름이 여럿이다. 그중에는 이미 그 기능이 소멸되어 역사 또는 이야기 속에서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늘 강대하고 특징적이다. ‘성스러운 권좌’(權座)라는 뜻의 ‘파르 오’라는 말에서 생긴 칭호다. 인간이면서 신의 자리에 선 파라오는 ‘하늘의 신인 호루스의 화신이며, 태양신 라의 아들’이라는 상징으로 포장되어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정복왕으로 유명한 람세스 2세나 무덤의 발굴과 함께 단번에 인류사의 스타덤에 오른 소년왕 투탕카멘, 야무진 여왕 핫셉수트나 비운(悲運)의 이미지의 클레오파트라 등 수많은 파라오들의 이야기가 아직 생생하게 유통된다.

    룩소 부근 나일강 서안 ‘왕가의 계곡’에서 1922년 발굴된 투탕카멘(BC 1361∼BC 1352)의 묘에서는 장사 지낸 때 모습 그대로의 미라(포르투갈어 ‘mirra’/영어 ‘mummy’)와 황금마스크와 관(棺) 등 화려한 부장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파라오의 이름은 타원 안에 ‘신성한’ 상형문자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부활의 상징인 소똥구리 디자인 목걸이의 장식 타원에 적힌 BC 1000년경 파라오 프수세네스 1세의 이름.

    ‘칭기즈칸이 세계를 흔들자 술탄들이 쓰러졌다. 칼리프들이 넘어졌고, 카이제르들은 왕좌에서 떨었다. 그는 영광이 최고에 이르러 죽었으며, 임종 때 중국 제국을 정복하라는 유언을 내렸다.’(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중에서)

    칭기즈칸의 ‘칸(Khan·汗)’은 5세기 몽골고원 유목국가 우두머리의 칭호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뒤흔든 거대한 이름으로 남았다. 그 유언에 따라 중국은 몽골족의 원나라가 됐고, 우리 역사도 큰 고초를 겪었다. 위의 이름들이 또한 종교와 밀접한 여러 겨레 왕들의 이름이다.

   술탄은 ‘통치자’ ‘권위’의 뜻으로 무슬림 우두머리의 칭호다. 그런데 이 칭호는 이슬람교(敎) 최고 종교지도자인 칼리프가 부여한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 형태인 것이다. 카이제르는 중세 슬라브 국가들의 군주 이름으로 차르(tsar)라고도 했다. 이 이름 차르는 황제를 칭하기 전까지의 러시아 군주의 이름이기도 했다.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샤’라는 이름이 전해 내려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군주의 이름으로 쓰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군주제가 붕괴된 1973년까지 이 이름이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1. 신상구,「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박사학위논문, 2011.8.

2. 강상헌, “제정일치 사회서 왕은 신과 통하는 무당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계일보, 2015.6.29일자. 27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1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태그 861

시청자 게시판

2,116개(65/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5752 2018.04.12
835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localhi 2066 2015.08.15
834 서계 이득윤의 생애와 업적 localhi 2978 2015.08.12
833 수암 권상하의 생애와 업적 localhi 2727 2015.08.10
832 발해고궁지에 단군전을 건립한 항일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localhi 2647 2015.08.09
831 우봉 이매방의 생애와 업적 localhi 2592 2015.08.09
830 어머니전을 시청한 사람입니다 sertyuiogh 1905 2015.08.08
829 김관식 시인의 생애와 업적 localhi 2117 2015.08.06
828 한국 진보경제학의 태두 김수행 박사의 생애와 업적 localhi 2873 2015.08.04
827 우암 송시열의 생애와 업적 localhi 3170 2015.08.03
826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은 3개, 중국은 48개로 대조적 localhi 1868 2015.07.31
825 일제강점기 서대문형무소 실체 localhi 3012 2015.07.30
824 가야 금관출토-전북 aaaa5589 1495 2015.07.29
823 역사의 길과 기념광장 조성으로 대전 구도심을 활성화 하자 localhi 1823 2015.07.28
822 청주대 출신 삼성그룹 부회장 박근희의 성공 비결 localhi 3225 2015.07.24
821 환단고기와 로스웰 외계인과의 인터뷰의 관련성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stbdialer 2778 2015.07.21
820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백제역사유적지구의 당면 과제 localhi 1934 2015.07.21
819 일본 왕족은 무령왕의 자손이다. localhi 2109 2015.07.14
818 조선시대 최초로 천제를 주장한 변계량 localhi 2870 2015.07.13
817 청소년들이여, 깨어나라!! (1) 사진 [2] hihyahoo 2199 2015.07.07
816 대전 단군정맥 남북통일 기원 localhi 2068 201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