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봉 이매방의 생애와 업적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08.09 01:21
                                     우봉 이매방의 생애와 업적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한국춤의 거목’ 우봉(宇峰) 이매방(李梅芳)은 1927년 전남 목포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목포 북교국민학교와 목포공고를 졸업했다. 그는 80년 전통춤 외길을 걸어온 '한국 춤의 거목으로 생존 무용인 중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년)와 제97호 살풀이춤(1990년) 두 분야 예능보유자이다.
   이매방은 7세 때 목포 권번(기생들의 조합)장의 함국향의 권유로 권번학교에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해 80년 넘게 전통춤을 췄다. 고인의 할아버지 이대조는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鼓法)을 가르치던 명무ㆍ명고수로 이 명인은 그에게 검무, 승무, 법무를 차례로 배웠다. 이후 광주 권번의 박영구 선생에게 승무와 북을, 이창조 선생에게 검무를 사사하고 1948년 명창 임방울의 명인명창대회에 승무로 데뷔했다.
   소학교 시절에는 중국 베이징 누이 집에 놀러 갔다가 중국의 전설적인 무용가인 매란방(梅蘭芳)의 춤에 빠져 매란방 조교에게 칼춤과 등불춤을 배웠다. 매란방의 이름을 따 23세에 예명을 이매방으로 지었으며, 20여년 전에는 호적 이름도 이매방으로 고쳤다. 승무와 살풀이춤을 비롯해 입춤, 검무, 장검무, 장고춤, 사풍정감, 초립동, 승천무, 대감놀이, 기원무, 보렴무, 고무, 소고춤, 사랑가, 화랑도, 한량무, 신선무, 춘향전 등 19종의 춤을 췄다.
    그의 승무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호남형 승무’로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忍辱)의 세계를 그린다고 평가받는다. 살풀이춤은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춤으로 멈춤과 고요의 단아한 멋, 정과 한이 서린 비장미를 갖췄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이 명인은 교방춤을 무대로 승화시켜 전통무용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며 “광복 이후 전통무용은 이매방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라고 높이 평가했다.
   광복 이전 광대, 서당패, 권번 등으로 분류된 한국 전통춤은 광복 이후인 1962년 무형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지고, 80년대 각 대학에 한국 무용과가 개설되며 전문 교육체계로 들어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 명인의 춤은 1969년 승무로 개인 무형문화재로 첫 지정된 한영숙의 춤과 함께 한국 전통춤을 고급화, 전문화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서울 경기 충청 등 중부권에 근간을 둔 한영숙류가 정갈하고 단아한 멋을 추구한다면 광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이매방류는 섬세한 교태미가 두드러진다.
   고인은 1950년대부터 군산 부산 광주 등에 무용연구소를 차려 한국춤을 전파했고, 60년대 삼고무, 오고무, 칠고무 등 북춤을 비롯해 검무, 기원, 초립동 등을 직접 창안해 독자적인 춤 세계를 구축했다.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이 시대 전무후무한 춤꾼”이라며 “인간문화재 제정 이후 많은 전수자를 배출해 그들이 학계ㆍ공연계에 폭넓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그의 춤을 감히 ‘한국춤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평소 손수 재봉질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춤사위와 음악은 물론 의상도 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소품까지 직접 챙겼고, 제자들 의상까지 직접 만들어줄 만큼 열의가 넘쳤다.
   2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는데, 제자 중 상당수는 각 대학 무용과에 포진해있다. 제자인 양종승 우방 전통춤보존회 부회장(동국대 불교문화원 객원교수)은 “오른쪽으로 돌면 왼쪽 몸이 어떤 자세가 되기 때문에 이후에 어떤 동작이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셨다”며 “춤은 장단에 노는 것이라는 이유로 가무악을 총체적으로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 축하공연, 1998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초청 공연 등으로 우리 춤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 2012년 6월 김백봉 명인과 함께 한 공연 후 건강이 나빠졌으나 회복해, 지난해 8월 제자들이 연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호남 기방예술의 전통계보를 잇는 ‘입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우봉 이매방은 생전 다시 태어나도 남자로 태어나 춤추는 인생을 살겠다고 말하면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무대에 서는 등 마지막까지 예혼과 열정을 놓지 않았다. 지난해 8월에는 87세의 나이로 제자들이 연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호남 기방예술의 정통계보를 잇는 '입춤'을 추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1984년 옥관문화훈장,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2004년 임방울 국악상, 2011년 제12회 대한민국 국회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이매방 명인은 교방춤을 무대로 승화시켜 전통무용의 패러다임을 바꾼 춤의 천재로 평가했다. 특히 그는 호남 춤을 통합해 무대양식화한 '호남춤의 명인'으로도 불린다.  
   그는 평소 제자들에게 "예술은 길고 척도는 없고 한도 끝도 없어요. 가락 하나하나에 전부 혼을 넣은 춤을 춰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우봉 이매방은 2015년 8월 7일 노환으로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전통춤의 원형을 간직한 이 명인의 타계는 한국춤의 한 시대가 진 것을 의미한다. 유족으로는 이 명인 춤을 잇고 있는 김명자(본명 김정수)와 딸 현주, 사위 이석열씨가 있다. 
                                              <참고문헌>
   1. 송은아, “80년 외길 '한국 춤의 거목'…하늘 무대로”, 세계일보, 2015.8.8.일자.
   2. 신준봉, "승무, 살풀이춤의 거목, 하늘무대로 가다", 중앙일보, 2015.8.8일자. 10면.
   3. 이재유, "호남춤의 명인 우봉 이매방 선생 작고", 서울경제신문, 2015.8.8일자. 22면.
   4. 이윤주, "돌아설듯 날아가는 정중동 춤사위...한국 전통춤의 뿌리가 됐다", 한국일보, 2015.8.8일자. 22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등 61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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