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의 진정한 광복을 위한 과제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08.25 20:33

                                       한국의 진정한 광복을 위한 과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

   한국은 2015815일에 광복 70주년을 맞이했지만, 일본은 아직까지도 한국에 대한 불법 침략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세계 제2차대전 패전을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해 지금도 남한과 북한이 군사적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지식인들은 한국이 진정한 광복을 이룩하기 위해 갈길이 멀고 험악하다는 엄현한 현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晉三)2015814일 전후’ 7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담화에서 침략과 식민 지배를 얼버무리고 우리의 해방을 인정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한국인은 분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과거형 사죄를 통한 물타기와 유체이탈화법, 궤변으로 얼룩진 아베 담화를 계기로 우리는 역사 수정주의로 돌아선 일본의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런 일본에 대해 미국은 노골적으로 칭찬했고, 당초 단호한 듯했던 한국 정부는 미국의 눈치라도 살피는 듯 끝내 어정쩡하게 물러섰다. 이번 아베 담화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인 태도야말로 한일관계가 여전히 일본이 그려온 전후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본은 불법 침략과 식민지배를 부인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영토인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억지 주장하고,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마저 왜곡하여 한국인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선언을 받아들이고 강화조약에 서명했으면서도 패전을 부인하고 종전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일본의 이런 후안무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에 따르면 패전을 종전으로 바꿔치기 하는 자기 기만극이 벌어진 것은 뻔히 질 줄 알고도 전쟁으로 몰아간 군국주의 세력이 패전의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전후에도 군림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패전 직후 일시적으로 대두됐던 천황의 전쟁 책임을 군부의 책임으로 떠넘기더니 이것이 천황폐하에 정말 죄송하다일억총참회론’(一億總懺悔論)으로 발전하면서,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기만극이 완성됐다. 여기에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원폭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가미되면서 일본은 어느덧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거듭 났고, 평화주의라는 허상이 이를 정당화했다.

   미일 합작에 의해 일본의 전쟁 책임자들은 전후에도 일본의 정재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냉전이 고개를 들자 미국은 소련, 중국에 대항할 하위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했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 면죄부를 줬다. 한국과 대만이라는 전초기지가 공산주의에 맞서 일본을 지켜주는 가운데 일본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했다. 어느새 연합국=전승국인 소련과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선 전후일본은 전전(戰前) 체제를 답습하고 있는 스스로의 일그러진 모습조차 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으로선 종주국미국에만 확실히 패전을 인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 대가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대해선 냉전의 논리에 기생하면서 축적한 자본으로 과거사를 봉인하고 패전을 부인할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일 국교정상화로 성립된 이른바 ‘1965년 체제였다.

   일본이 전후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미국에 대해서도 패전을 부인하는 뻔뻔함을 보이면서 대미 종속에서 독립해야 한다. 하지만 아베가 선택한 것은 미국과 선을 긋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을 등에 업고 아시아와 맞서는 것이다. 이는 전후체제의 탈각은커녕 노골적으로 전후체제를 강화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아시아에 대한 패전을 부인하기 위해선 대미 종속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대미종속이 지속되는 한 패전의 늪에 점점 빠질 수밖에 없는 전후일본을 시라이는 영속 패전(永續敗戰)’이라고 비꼬았다.

   해방 후 한일관계는 미국과 일본이 설정한 전후체계의 하부체제로서 기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은 해방의 전제조건인 식민사관 극복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이 전후에 그랬던 것처럼 식민지배에 부역한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부와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1948년 탄생 이래 단 한차례도 일본에 식민지배에 대한 피해보상을 요구하지도, 그 불법성을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해방은 어디까지나 국내용 구호에 불과했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해방의 논리를 부인함으로써 미일이 주도하는 전후체제에 편승해왔다.

   한국과 일본의 전전 세력, 즉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과 한국의 친일파 세력은 반공(反共)이라는 슬로건 하에 손을 맞잡았다. 불편했던 과거사는 북한과 중국, 소련이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한다는 냉전(cold war)의 논리와 산업화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것을 삼켜버린 경제의 논리에 의해 철저하게 파묻혔다. 과거사에 관한 한 한일 정권은 공범관계였고, 이를 전후체제의 막후 설계자 미국이 안전보장과 미래지향이라는 명분으로 적극적으로 조장해왔다.

   하지만 일본이 주도해온 전후체제는 1980년대 후반 냉전의 붕괴와 한국의 민주화 이후 타격을 받고 있다. ‘전후체제는 국제적 냉전구조와 아시아에서의 일본 경제력의 돌출성에 의해 가능했는데, 냉전은 무너졌고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을 거치면서 쇠퇴했다. 이와 더불어 민주화한 한국의 민중들이 한일 양국 정부가 봉쇄해온 기억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고 과거사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전후체제 하에서는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전후체제의 하청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안보우산마저 흔들리면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해방을 짓눌러온 일본의 전후체제와 이에 기초한 한일관계의 앞날은 아슬아슬하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전후에 남고 싶어 하는 일본의 인식이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특히 한국에 대해선 거의 안하무인일 정도로 오만해졌기 때문이다. 아베 담화에서도 드러났듯이 일본의 전후세력은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해 기존의 합법부당론보다도 후퇴한 합법정당론을 노골적으로 표방했다. 아베가 한국인 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을 뿐 아니라 정당했다는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낸 것이다. 이 같은 일본 전후세력의 인식은 어쨌든 끊임없이 해방을 지향해온 한국의 민족주의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해방은 왜곡된 일본의 전후사관마저 각성시키고 치유해 안고 가야 하는 힘든 싸움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 실마리는 물론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냉전사관을 걷어내어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일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고 일본보다 더 강력한 국력(경제력+군사력+외교력)을 배양하여 대한민국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솟아 인류 공영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신상구, “단재 신채호 선생을 '정신병자', '또라이' 취급하는 식민사학자들의 만행”, 아산톱뉴스, 2015.3.22.

2. 이동준, “전후 프레임에 갇힌 한국...식민, 냉전사관부터 걷어내야”, 한국일보, 20154.8.25일자. 10.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4.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62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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