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남한의 국화는 무궁화이고,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가 아니라 목련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10.04 01:53
          남한의 국화는 무궁화이고, 북한의 국화는 진달래가 아니라 목련

                              원광대학교 정치학과 이재봉 교수
   진달래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꽃이다. 소월을 비롯한 많은 서정시인들이 진달래를 노래했고, 시골에서는 진달래꽃이 아이들의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어른들은 하얀 떡에 진달래꽃을 붙여 모양새를 내기도 했으니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기던 먹을거리인 셈이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남쪽에서는 이 진달래를 맘껏 즐길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우리 민족의 정서가 배어 있는 진달래지만 북녘 사람들이 매우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남쪽에서 이를 즐기면 친북 빨갱이로 매도당하거나 용공이적 행위로 처벌을 받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본의 국화인 벚꽃은 서울의 심장부에서부터 전라도의 전주-군산을 거쳐 경상도의 진해에 이르기까지 전국 여러 곳에서 축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순수하고 정겨운 '동무'라는 우리말을 북녘에서 즐겨 쓴다고 남쪽에서는 '친구'라는 얼치기 한자어로 바꿔 써왔고, 사람들을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인 '인민'이라는 말은 같은 이유로 '국민'이라는 왜색 짙은 단어로 대체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실제로 진달래 때문에 친북 빨갱이로 몰렸던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1974년 어느 날 서울 이화여고에서 한 미술교사가 지리산에 핀 진달래꽃을 슬라이드로 담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가 나중에 그 때문에 어디론가 끌려가 곤욕을 치렀단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대표적인 국립공원이기도 하지만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들이 치열하게 투쟁했던 곳이요, 진달래는 빨갱이들의 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1986년 10월 전국 각지의 대학생 2000여명이 서울 건국대학교에 모여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 투쟁연합 (애학투)]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는데, 경찰은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검찰은 주동자급 120여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학투]의 발족선언문 끝에 "진달래꽃 머리에 꽂고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한라에서 백두까지 해방춤을 흐드러지게 추게 될 그 날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한 구절이 북한의 혁명가극 '피바다'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데다 진달래는 "북괴의 상징 꽃"이라는 이유였다.
   물론 북녘에서는 진달래가 역사적 의미가 깊고 귀중한 꽃이다. 특히 일제 식민통치시대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조국을 상징하는 꽃'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기에 1982년 세워진 거대한 개선문에는 김일성 주석 탄생 70돌을 기념하여 진달래꽃 70송이가 새겨져 있다. 1998년 이곳에 들렀을 때 해설강사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았더니, 김일성이 해방 뒤 귀국하여 너무 바빠 고향집도 찾아보지 못하다가 이듬해인 1946년 봄 그가 태어났다는 만경대를 방문했을 때 그의 할머니가 진달래를 한 아름 가슴에 안고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의 만경대 고향집 주위에는 진달래가 많이 있는데, '만경대는 혁명의 요람'이라는 노래도 "화창한 봄날에 진달래 붉게 피는 만경대 찾아서"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남쪽의 통일부 자료는 북녘에서 진달래가 소중하게 받들어지는 사연을 다르게 설명한다. 1939년 5월 어느 날 조선인민혁명군 (김일성 빨치산부대)이 만주에서 조국으로 진공하던 때 진달래가 이들 일행을 맞았기 때문에, 그 때의 감격을 강조하면서 북녘 사람들이 진달래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녘에서 유명한 미술작품 가운데는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지 겸 아내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수예작품으로 알려진 '조국의 진달래'가 193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와 있으니 진달래가 정확하게 언제부터 떠받들어졌는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진달래가 북녘 사람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꽃인 것은 분명하지만 국화는 아니다. 진달래가 북녘의 국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만나본 평양의 당국자들에 따르면, '조국을 상징하는 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국화였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남쪽에서처럼 무궁화를 국화로 삼았다가 목란꽃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나는 1998년 10월 황해북도 사리원 근교의 정방산에 올랐다가 성불사 입구에서 눈에 번쩍 띄는 커다란 비석과 마주쳤다.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그윽한 풍경 소리를) 듣는구나"는 노래로 남쪽에도 널리 알려진 성불사 입구에서 말이다. 거기 세워진 큼지막한 비석에 '정방산 목란꽃'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긴 글이 새겨져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1964년 5월 20일 정방산을 찾으시여 창덕학교 시절 이곳에서 보신 아름다운 흰 꽃에 대하여 감회 깊게 회고하시면서 항일의 나날 그 꽃을 생각하며 조국을 그리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해 8월 19일 이곳을 다시 찾으신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찾아놓으신 이 꽃나무를 보시고 못내 기뻐하시며 이 꽃은 우리 인민의 슬기로운 기상을 담고 있다고 하시면서 친히 이름을 '목란'이라고 지어주시고 국화로 할 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1997년 5월 1일 정방산을 또 다시 찾으시여 이곳에서 어버이 수령님께서 국화로 이름지어 주신 목란꽃에 대하여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받들어 온 나라에 목란꽃 나무를 많이 심고 잘 관리할 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었다.
    김일성 당시 수상이 1964년 8월 목란을 국화로 정하도록 교시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목란이 어떤 꽃인지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1984년 평양에서 출판된 <문화어 학습>의 '조선의 꽃 목란' 항목에 실린 김일성 주석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목란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붙이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꽃을 '란'이라고 하는데 목란의 '란'자는 란초 '란'자로서 나무에 피는 '란'이라는 뜻에서 '목란'이라고 붙였습니다. 많이 번식시켜서 릉라도와 모란봉 골짜기에도 심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무에 함박꽃 같은 것이 피는데 위대한 맛이 있고 나무가 건장한 맛이 있어서 마치 조선 인민의 슬기로운 기상과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말 대사전>은 목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목란과에 속하는 잎 지는 떨기나무의 한 가지. 나무는 굳세고 참신한 맛이 있어 보인다. 봄에는 새로 자란 가지 끝에서 크고 향기 있는 아름다운 흰색의 꽃이 한 개씩 피어난다. 산골짜기나 중턱에서 넓은 잎나무들과 섞여 자란다. 우리 인민들이 제일 사랑하는 꽃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심어 기른다.
    이 목란꽃은 흰색뿐만 아니라 노란색도 있다. 황목란이다. 2003년 묘향산을 방문했을 때 보현사 주위를 안내하던 해설강사가 대웅전 앞뜰의 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며 황목란이라기에 주저 없이 황목란도 국화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앞에서 소개한대로, '아름다운 흰꽃'이 우리 인민의 슬기로운 기상을 담고 있다고 해서 김일성이 목란을 국화로 정하자고 했다는데, 이제는 '흰꽃' 뿐만 아니라 아닌 '노란꽃'도 국화라는 것이다. 좀 미심쩍은 부분이다.
     북녘의 국화에 대하여 불확실한 대목이 한 가지 더 있다. 앞에 소개한 정방산 성불사 입구의 비석에 따르면 김일성 수상이 목란을 국화로 지정하라고 교시하였던 때가 1964년 8월 19일인데, 남쪽의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1991년 4월 10일 목란 (木蘭)이라는 꽃을 국화로 지정했다고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두 자료가 다 틀림없다면, 북녘에서는 헌법구절보다 더 귀중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교시가 실현되는데 무려 27년이 걸린 셈 아닌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목란이 공식적으로 북녘의 국화로 지정된 때가 1964년 8월이 아니라 1991년 4월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늦어도 1970년대 초부터 국화 대접을 받아온 것 같다. 1972년 제정된 김일성훈장에 목란이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나 정권과 관련된 상징으로 이미 사용된 것이다. 나아가 1978년 세워진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 같은 박물관에도 새겨져있으며, 1982년 준공된 주체사상탑 등의 혁명기념물에도 부각되어있다. 완공된 시기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땅밑 100m 지점에 건설된 평양지하철 영광역에는 목란꽃이 거대한 벽화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1987년 출판된 신종봉의 중편소설 <여름 바다>를 보면, 한국전쟁 중에 꽃섬이란 곳에서 "미국놈의 함포탄에 맞아 죽은" 아이를 기리며 친구들이 바위에 "세멘으로 목란꽃잎을 새기는 것을" 다짐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한편,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그토록 높게 평가하고 좋아했던 목란은 원래 '함박꽃나무' 또는 '산목련'으로 불려온 꽃으로 영문으로는 magnolia라고 표기하고 있다. 북녘의 높은 산악지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는데 특히 강원도와 평안남북도 그리고 함경남도 일대의 산기슭에서 많이 자란다고 한다. 남쪽에서 목련으로 불리는 꽃의 일종인 것이다. 남쪽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 국어대사전>을 보면 목란을 백목련으로 정의해놓고 있다. 하얀 목련이란 말이다. 그러나 남쪽에서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른바 '4월의 꽃' 백목련이나 자목련은 우리 고유의 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지난날 정원에 조경수로 많이 심었던 목련 역시 조선 고유의 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란다. 우리 고유의 목련으로는 주로 깊은 산에서 볼 수 있는 함박꽃나무가 대표적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목련이 북녘의 국화 목란이다. 김일성이 "나무에 함박꽃 같은 것이" 핀다고 목란이라고 이름붙인 꽃, 순수토종 목련 말이다.
    따라서 남쪽에서 3-4월에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목련이 북녘의 국화 목란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둘 다 목련의 일종이니 좀 넓게 보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쪽에서 널리 사랑받는 목련이 화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진달래꽃이라도 북녘을 상징하는 꽃이었기에 함부로 좋아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 받았듯이, 아무리 아름다운 목련이라도 북녘의 국화이기에 너무 사랑하고 즐기면 친북이적 행위로 고초를 겪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특히 하얀 목련을 교화 (校花)로 정한 원광대학교 관계자, 시화 (市花)로 정한 목포시 관계자, 그리고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으로 시작하는 노래 '하얀 목련'을 청아하게 부른 가수 양희은에게 이 얘기를 전하고 싶다.(이재봉, [두 눈으로 보는 북한], 6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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