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단양의 향토사학자 윤수경 이야기 글쓴이 localhi 날짜 2015.09.25 02:29

                         단양의 향토사학자 윤수경 이야기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신상구(辛相龜)

  전국문화원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8월 말 현재 전국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는 향토사학자는 229명에 달한다. 이들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수도권이 29명,충청권이 54명,강원권이 21명,경상권이 101명,전라·제주권이 24명으로 경상권에 향토사학자들이 제일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충청권의 충남지역에서 향토의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기록보존하는 대표적인 향토사학자로는 대전의 강성복·김영한?신상구, 공주의 이해준·이걸재, 세종특별자치시의 박종관?이주열, 보령의 황의호·황의천, 당진의 이인화·박상건·신양웅·김남석, 서천의 유승광, 홍성의조원찬·김정현, 서산의 이은우, 태안의 박춘석·정우영, 예산의 윤규상·성부제, 천안의 민병달·황서규·김성렬·임명순·장성균·백승명·조창렬, 금산의 안용산 등을 들 수 있다.

  충청권의 충북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향토사학자로는 괴산의 이상주·김근수, 증평의 유병택, 청주의 박상일·김양식·정삼철, 음성의 정기범, 충주의 길정택, 제천의 이창식·구완회, 단양의 윤수경, 보은의 김건식, 옥천의 전순표, 영동의 안병찬 등이다.

  향토사학자들의 직업 분포를 보면, 현직 교사와 교수, 일반직 공무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성별 분포를 보면, 여자는 단 1명도 없어 활동성이 강한 남자들이 향토사 연구를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령별 분포를 보면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고령자들이어서 향토사의 맥이 서서히 끊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향토사학자들은 대부분 정부나 기업들로부터 경제적·학술적 지원을 받지 못해 항상 자금난·시간난·공간난·사료난에 시달리고 있는데다가,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향토사학자들이 조사연구를 열심히 해서 좋은 논문을 발표해도 석·박사 학위가 없으면 알아주지 않는 경향이 있어, 요즈음은 향토사학자들도 앞 다투어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입학해 주경야독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있다.

  윤수경(65)은 충북 단양의 향토사학자로 온달산성 아래 온달관광지에서 관광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단양 온달산성과 온달의 전사지를 발굴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온달산성 성주(城主)로 통한다.

  윤수경의 고향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 남한강 최북단의 용진(龍津) 나루이다. 고집불통 농사꾼 아버지 강압에 공부를 포기했던 윤수경은 단식 농성 끝에 충주농고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특전사에 자원해 군대를 마치고서 1974년에 꿈에 그리던 고향 영춘면 면서기로 금의환향했다. 나이 마흔한 살에 이 고졸 면서기는 온달산성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철들 때부터 보고 자란 고향 앞산 하늘 아래 산성이다. 쉰 살에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러곤 절에 가서 2년 동안 도를 닦다가 군 의회에 당선돼 의장까지 지냈다.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이 사내 별명은 '온달(溫達) 성주(城主)'다.

  충북 단양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최전선이었다. 산성 아래 마을에는 바보 온달에 얽힌 지명이 산재해 있다.

  강 건너 하늘 꼭대기에 늘 산성이 떠 있었다. 바보 온달이 만든 성이라고 했다. 아득한 옛날부터 단양 사람들은 강 건너 마을 사람이 오면 "저기 신라 놈 온다"고 했고, 별 볼일 없고 쓸모없는 사람은 "(온달 장군이) 성 쌓고 남은 돌"이라고 불렀다. 성(城)과 삶은 뗄 수가 없었다.

  갓 부임한 신참 면서기 윤수경이 맡은 일은 국민투표 투표함 운반과 화전(火田) 정리였다. 유신 시절 공무원들은 투표함을 짊어지고 60리 길을 걸어 군내를 훑었다. 마을 이장 집에 도착하면 막걸리판을 벌였다. 밤새 대통령부터 군수, 면장까지 문제점과 비리를 취중 작파하고는 다음 날 "그래도 찍어줘야 우리 마을이 발전하지" 하며 다음 마을로 떠나곤 했다.

   윤수경은 정감록파 화전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언젠가부터 단양 의풍계곡에는 정감록을 믿는 평안도와 황해도 사람들이 화전을 하며 살았다. 1975년 화전 정리 사업이 시작되자 주민들은 낫을 들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머리에는 한학(漢學)이, 몸에는 특전사에서 배운 생존기술과 살인 기술이 꿈틀대던 윤수경이었다. 낫 든 청년들에게는 "당신이 주먹을 지르면 나는 주먹과 발이 같이 나가니 죽어도 책임 못 진다"고 배짱을 부렸고, 노인에게는 한시(漢詩)와 보학(譜學)을 읊었다. 유식한 면서기와 밤새 대작한 노인은 다음 날 "나라 정책이 그러하다니…" 하며 퇴거통지서에 도장을 찍어줬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마을 어르신들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군간나루 속세목이에 살던 한춘봉은 "여기가 온달 부대가 부상병 고치던 '군간(軍看)'"이라고 했다. 방터에 사는 노인 최용수는 "저기는 온달 부대 최전선인 꼭두방터고, 여기 중간방터는 보급부대 군량미 창고"라고 했다. 면위실(免衛谷)에 살던 할머니 김부덕은 "온달이 신라 포위망('衛·위')을 뚫고('免·면') 살아난 골짝"이라고 했다. 천지사방에 온달이었다.

  하늘 꼭대기 온달산성은 400번도 넘게 올랐다. 출장 갈 때마다 면서기는 노인들 구술(口述)을 채록했다. 군관, 깃대봉, 대진목, 장군목이, 은포동, 장방터, 망굴여울 기타 등등 온달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마을이 120군데가 넘었다. 사지원리 적석총에는 온달이 묻혔고, 온달 도우러 날아오던 마고 할멈이 굳어서 선돌(立石)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고구려 장수 바보 온달은 서울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접경 아차산에서 죽은 줄 알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진단학회를 만든 사학자 이병도가 그렇게 추리한 이래 모두 그리 알고 있었다. 1990년 '고졸' 윤수경은 전국 문화원연합회가 주최한 논문 공모전에 논문을 출품했다. 제목은 '단양·영춘 지역의 지명 유래와 전설에 관한 연구'. 투표함과 화전민 퇴거통지서, 각종 민원서류를 들고서 군내를 훑으며 축적한 자료들을 근거로 '지역민들의 생활사에 온달이 녹아 있으니, 온달산성 위치는 아차산이 아니라 단양'이라는 논지였다.

  온달산성에 관한 한 유례없이 풍부한 자료와 사실 관계를 담은 문화인류학적 논문이었다. 주최 측은 특별상을 만들어 윤수경에게 안겼다. 온달산성 위치는 이후 논쟁 끝에 단양으로 기울었다. 윤수경이 묻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달은 계립현(문경새재 동북쪽 고개다)과 죽령(단양과 경북 영주 사이에 있다) 서쪽 땅을 회복하겠다고 출정했다가 전사했다. 두 고개가 서울에 있으면 온달산성도 가져가라."

  온달 이야기는 허황된 게 아니다. 전래동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로 더 익숙한 온달(?-590)은『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다. 고구려 평원왕과 영양왕 때 장수로, 중국 북주(北周)가 침략했을 때 큰 공을 세웠다.『삼국사기』‘열전 온달편’에 따르면 온달은 계림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왕에게 맹세한 뒤 출정해 아단성(阿旦城) 아래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계림현이 충북 충주의 하늘재이고, 죽령은 소백산 자락길 3자락에 있는 고개이니 온달이 이 근방 어디에서 신라군과 전투를 하다가 전사한 것으로 사료된다.

  논문이 발표되고서 단양에서 존경받는 원로 향토사학자 장충호가 윤수경을 찾아왔다. "윤형, 학위를 받으시게. 고졸 면서기 말은 씨알이 먹히지 않아." 1999년 윤수경은 군청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쉰 살이었다. 죽령 너머 영주 동양대학교 문화재발굴보존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산성(山城)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말발이 먹히는 사학자가 된 것이다.

  학교를 다니며 윤수경은 천태종 구인사에 입산해 2년 동안 도를 닦기도 했다. 주위 권유에 2002년 군의원 선거에 출마해 의장도 해봤다. 중졸 농부에 고졸 면서기, 사학자에 의장 나리까지 지낸 윤수경은 지금 온달 관광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온달 관광지는 온달산성 아래에 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정도전'을 이곳 드라마 세트장에서 찍었다. 온달 전시관에는 윤수경의 논문을 인용한 대형 지도와 모형도가 사료와 함께 전시돼 있다. 온달산성은 지금 세 번째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윤수경에겐 붙일 호칭이 따로 없는지라 사람들은 우스개로 '성주(城主)'라고 부른다.

                                     <참고문헌>

1. 신상구, “충청권 향토사학자들도 석?박사 시대”, 충청일보, 2011.9.14일자.

2. 손민호, “그 길 속 그 이야기 <49> 충북 단양 소백산자락길 6자락 '온달평강 로맨스길'”, 중앙일보, 2014.12.31일자. 주말판 4면.

3. 박종인, “가을 내린 저 山城에 바보 온달 살았다더라 - 단양 온달산성과 '성주(城主)' 윤수경”, 조선일보, 2015.9.23일자. A22면.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2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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