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덕일 중심 ‘상고사 열풍’에 드리운 정치적 위험성 글쓴이 localhi 날짜 2016.03.28 02:53

               이덕일 중심 ‘상고사 열풍’에 드리운 정치적 위험성

                   김희철, 한겨레신문, 2016.3.25일자. 23면.

   유사역사학자들은 사서라고 할 수 없는 <환단고기>, 전거와 출처가 불분명한 <만주원류고> 등의 책자들을 근거 삼아 단군 신화를 역사로 포장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북한이 1994년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조성한 단군왕릉. <한겨레> 자료사진

   유사역사학자들은 사서라고 할 수 없는 <환단고기>, 전거와 출처가 불분명한 <만주원류고> 등의 책자들을 근거 삼아 단군 신화를 역사로 포장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북한이 1994년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조성한 단군왕릉. <한겨레> 자료사진

   환상 심어 국수주의 온상 될 가능성

“역사학계 적극 발언 통해 바로잡아야”

송호정 교수 ‘상고사 논쟁 본질’ 논문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인생의 책’으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년~기원전 19년)가 쓴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꼽은 적이 있다. 멸망한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생존한 일족과 함께 갖은 고초를 이겨내고 마침내 티베르 강 언저리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다는 얘기다. ‘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의 이 말년 대작은 새로 지어낸 건국신화다. 베르길리우스는 위대한 제국 로마가 로물루스라는 ‘근본’ 불명의 목동이 아니라 고대 문명국가 트로이의 후예가 세운 ‘뼈대’ 있는 나라라고 주장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화려한 건국신화를 꿈꾸는 욕망은 고대 로마 시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유라시아 호령한 고조선 기마군단…8000㎞ 초원길에 한민족 디엔에이(DNA)/세계 4대문명보다 1000년 앞선 고대 ‘훙산문화’ 존재”라는 한 신문의 칼럼 제목은 최근 역사학자인 듯 역사학자가 아닌 일부 인사들이 앞장서고 정부가 적극 후원하고 있는 ‘상고사 열풍’의 진면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군과 고조선의 재포장은, 저커버그처럼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신화를 사실로 확정하려 든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주최로 지난 19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이라는 소논문을 발표한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는 고조선 강역, 낙랑군의 위치 등을 논쟁의 영역으로 집요하게 끌어들여 한국 고대사를 다시 쓰려고 하는 일부 인사들을 재야사학자와는 다른 ‘유사역사학자’로 규정하고 그들의 움직임과 인식, 의도를 찬찬히 분석·비판했다. 송 교수는 고조선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단군, 만들어진 신화> 등의 연구서를 낸 한국 고대사 분야의 중견 학자다.

   송 교수에 따르면, 유사역사학자들은 고대사에 포괄돼야 할 고조선 시대를 굳이 상고사라고 따로 떼어 부른다. 배경에는 “단군조선 시기만을 부각시켜 우리 역사가 출발부터 만주지역을 지배한 웅대한 역사였음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고조선의 강역과 낙랑군의 위치를 자꾸 들고나와 쟁점화하는 것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유사역사학자들은 고조선의 중심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랴오닝(요령)성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고조선 중심지 재요령성설’은 조선 시대 이익·안정복에서 발원해 신채호를 거쳐 북한의 리지린이 종합 정리한 것이다. 리지린은 <고조선 연구>에서 <산해경>을 비롯한 중국 문헌들에 나오는 요수, 패수 등 강 이름을 언어학적으로 추적해 그런 결론을 냈다. “리지린의 주장은 남한 학계의 윤내현에 의해 그대로 확대 해석” 됐다. 윤내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조선이 조-중 국경인 허베이성 난하 이동 지역에서 한반도 서북에 걸쳐 있었으며, 이미 고대 제국의 단계까지 발전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내현의 계승자가 이덕일이다. 90년대에 윤내현, 2000년대 초반 최재인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덕일의 전성시대다. 그는 중국 문헌 <위략>에 나오는 ‘서방 2천리 상실’ 기사를 절대적 사실로 전제하고서 고조선의 강역을 요하 서쪽 일대라고 확언한다.

   그러나 동호를 밀어내고 요동(요하 동쪽)까지 장성을 설치했다는 <사기> ‘흉노열전’의 기록을 보면 요서(요하 서쪽) 지역을 고조선의 중심으로 설정하긴 어렵다. ‘비파형동검문화’ 분포지역을 곧바로 고조선의 강역으로 보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이 문화의 객관적 분포 범위를 볼 때 고조선이라는 구체적인 국가나 주민 집단과 일치시키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청동기 시대 이후 중국 문헌들엔 요서 지역이 동호·산적 등 융적의 거주지라는 기록도 나온다. 2000년대 들어 유사역사학자들이 부쩍 내세우고 있는 4천년전 신석기 시대 요하문명론, 즉 ‘훙산문화’는 고조선보다 2천년이나 앞선 신석기 문화로 아직 이를 뒷받침할 문헌 기록이 전무하다.

   유사역사학자들은 낙랑군의 위치도 만주라고 한다.(‘낙랑군 재만주설’) 그들은 “낙랑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1차 사료가 단 한 건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서> 지리지, <후한서> ‘최인열전’ 등을 보면 낙랑군은 중국 본토에서 가장 동쪽~한반도 서북지방에 설치돼 “요동군의 관할 범위”에 있었다. 더욱이 대동강 유역에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이 설치됐다는 것은 “논의가 필요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이는 각종 문헌 기록과 대동강 유역에서 출토되는 고고학 자료들이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과 함께 이덕일 등이 역사 교과서에 상고사 부분을 대거 보완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한반도를 시원부터 ‘순결한 땅’으로 포장하려 드는 것일까. 송 교수는 “이민족 식민통치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한반도 밖으로 밀어내려는” 국수주의적 열등감, 일제 식민 경험에 따른 피해의식의 산물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이덕일 등은 자신들의 환상을 반박하고 한반도의 식민 경험을 인정하는 강단 역사학계를 “(친일사학자) 이병도와 신석호 제자들의 식민사학 카르텔, 사피아(사학 마피아)”라고 싸잡아 매도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시대착오적 애국주의와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현 정부의 논리와 연결되는 부분이 크다.”

   송 교수는 유사역사학의 배후로 정부를 지목한다. 실제로 정부는 2013년 말 ‘식민사학 극복, 상고사 연구’를 위한 예산 수십억원을 편성하고, 교육부에 ‘역사교육지원팀’을 만드는가 하면 ‘한국사 연구 종합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국회도 ‘동북아역사왜곡대책 특별위원회’라는 특별 기구까지 만들어 유사역사학자들에게 활동 무대를 제공했다. 과장된 영토관과 중심지 논쟁은 국수주의의 온상이 되거나 이웃 나라들과 외교적 마찰 등 과도한 정치화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송 교수는 “전문 역사학자들이 용감하게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유사역사학이 설 자리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 베르길리우스는 죽기 전 완성하지 못한 <아이네이스>의 원고를 폐기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의 이름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도록 ‘명령’한다. 위대한 건국신화와 현실 정치의 함수관계는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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