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충남 기념물 103호 수덕여관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4.25 03:23

                                                                 충남 기념물 103호 수덕여관

    김일엽이 1933년 수덕사 만공스님에게서 계를 받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찾아 왔다. 그 젊은이는 삭발을 하고 승복을 입은 김일엽을 보자 마자 감격에 복받쳐 "어머니"하고 불렀다.
    그러자 김일엽은 "어머니라 부르지 마라. 나는 스님이다."하고 냉정하게 돌아앉았다. 젊은이는 꿈에도 못 잊던 어머니를 찾아 수덕사까지 왔는데 너무도 허탈하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젊은이의 이름은 김태신. 어머니 김일엽과 일본인 오다 세이조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부모의 결별로 외롭게 자라났으나 그림에 소질이 있어 유럽에 까지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아들 김태신 역시 그 후 불교에 귀의하여 '일당'이라는 법명으로 승려가 되었으며 승려가 되어서도 그림을 그리다 2014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 김일엽은 어떤 여인인가. 원래 이름은 김원주. '일엽'이라는 이름은 당시 최고의 문학가 춘원 이광수가 지어 준 필명이다. 이것만 봐도 그가 일찍부터 조선 문단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1896년 평안남도 용강 출신인 그는 이화여전(지금의 이화여대)를 나와 일본에 유학했는데 조선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었다. 그는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 주의를 그의 작품 뿐 아니라 그의 삶 속에서도 행동으로 나타냈다. 몇 번의 결혼 또는 동거, 그리고 이별을 되풀이 하면서도 그것을 자기 주체적으로 소화해 나갔다.
    그래서 김일엽은 당시 최초의 조선 여류 서양화가로 이름을 날리던 나혜석과 윤심덕 등 세 사람과 함께 '3대 신여성'으로 꼽힐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1933년 불현듯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수덕사에 들어가 만공스님에게서 계를 받고 비구니가 된다. 만공스님은 마곡사 주지를 역임하는 등 우리 불교계의 큰 기둥이었으며 조선총독부가 한국 불교를 일본에 예속 시키려 할 때 앞장 서 반대한 인물이기도 하다. 만공스님은 김일엽에게 승복을 입은 이상 이제 붓을 던지라는 말을 듣고 왕성하게 해오던 집필 활동도 멈추고 말았다.
    그는 1971년 1월28일 수덕사 견성암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수덕사와 함께 바로 옆에 있는 수덕여관도 예술가들의 숨결이 어려 있는 곳이다. 원래 이 건물은 수덕사의 비구니들이 머물던 곳인데 앞에 언급한 조선 3대 신여성운동의 한 사람인 나혜석이 만공스님으로부터 김일엽을 따라 비구니 계를 받기 위해 5년을 버티며 기다린 곳이기도 하다. 만공스님이 그에게는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수덕여관은 세계적 화가로 명성을 떨친 이응노 화백과 인연이 깊다. 그는 이곳이 고향이기도 하지만 수덕여관에 있던 나혜석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었고 그 후 일본 등 외국에 나가 본격적인 화가 수업을 했다. 그리고 귀국하여 1944년 이 여관을 매입하여 화실도 꾸미고 주변 자연 풍치를 화폭에 담았다. 6.25전란 때는 이곳에서 피란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1967년 소위 '동백림사건'으로 구속돼 수감생활을 하다 1969년 사면을 받고 풀려나서는 이곳 수덕여관에서 몸을 풀고 휴양을 했는데 이때 부인 박귀희 여사가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이응노는 이 부인을 남기고 유럽으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89년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수덕여관 뜰에는 큰 바위 조각이 놓여 있는데 이응노 화백이 살아 온 인생을 뒤돌아보며 문자를 형상화 한 것이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여관이면서도 1996년 이런 문화사적 가치가 많아 수덕여관을 문화재로 지정 (충남 기념물 103호)했고 따라서 2003년부터는 여관업은 중지된 상태다. 사랑과 예술의 폭풍이 스쳐간 곳이다.
                                                                     <참고문헌>
    1. 변평섭, "수덕여관 나혜석 머물고 이응노 손길 닿은 예술인 숨결 어린 곳", 충청투데이, 2020.4. 24일자.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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