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성폭행 사건 진상규명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6.28 12:27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성폭행 사건 진상규명 


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폐탄광터에서 발견된 은비녀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폐탄광터에서 발견된 은비녀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한국전쟁기 남북한 정규군과 미군, 우익 청년단 등에 의해 은밀하게 저질러진 성폭력 사건은 비일비재했다. 전쟁이 보여주는 가장 추악한 단면이자 또 하나의 학살이었지만, 다른 학살사건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유족들이 피해를 호소하기 어려운데다, 성폭행 뒤 학살이 이뤄지면서 일반 피해자로 합산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탓이다. 간헐적으로 드러날 뿐, 전체적인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성폭행 사건들은 사적 처형과 더불어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했던 치안 공백기에 주로 발생했다. 한국전쟁의 게릴라전 특성상 전선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사적 보복에 따른 학살과 성폭력이 횡행했다.

    1950년 9~10월, 충남 아산에선 좌우익 청년들에 의한 성폭행 학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북한 인민군 점령기 때인 9월 배방면 인민위원회 청년들이 마을의 22살 여성을 집단 성폭행했다. 국군이 수복한 10월에는 우익 청년단들이 인민위원회 활동을 했던 집안 여성들을 농락한 뒤 학살했다. 당시 우익 청년단원들은 “빨갱이 가족을 처단한다”며 좌익활동 뒤 달아난 배방국민학교 교감을 대신해 그의 아내를 성폭행한 뒤 우물에 빠뜨려 살해했다. 배방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목격했던 마을 주민 김희열(85)씨는 “그때는 보복이 두려워 모두가 입을 닫고 눈을 감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10월4일에는 탕정국민학교 교사 김지선(당시 21살)·안옥훈(22살)씨가 탕정면사무소 곡물 창고로 끌려갔다. 인민군 점령 때 학생들에게 공산당 노래와 인공기 그리기를 가르쳤다는 혐의였다. 김씨와 안씨는 이후 10여일 동안 수차례 성폭행당한 뒤 마을 뒷산에서 총살됐다. 당시 15살이던 채수선(85)씨는 “우익 청년단이 이들의 옷을 벗기고 마을 우물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 시킨 모습을 본 목격자도 있다. 완장을 차고 총을 든 놈들에게 마을 여성들은 노리개에 불과했다. 남아무개·원아무개·김아무개가 그들”이라고 증언했다.

    1951년 1월 충북 충주 살미면 신당리 새터말에서는 안아무개씨의 딸이 군인들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안씨의 딸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으로 일주일 뒤 숨졌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딸들을 김칫독에 숨기거나 얼굴을 까맣게 칠했다. 마을 주민 이아무개(82)씨는 “(군인들이) 동네 곳곳의 젊은 여자들을 붙잡아 성폭행을 일삼았다”고 했다.

    2010년 진실화해위가 발표한 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희생사건 조사보고서엔 한국전쟁 당시 경남 산청경찰서 의용경찰이었던 민아무개가 “빨갱이 마누라라고 잡아다가 잔인한 성고문을 했다”고 진술한 기록도 있다.

    김장호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은 “어르신들에게 딸의 치욕스러운 사건은 말하기 힘든 상처다. 아직 한마을에 피해자와 가해자 후손이 함께 사는 사례도 있어 나서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만순 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 운영위원장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등의 성폭행 사건들에 대해 언론, 정부 등을 통한 국민 공론화가 현재까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희생자 유족 등의 증언과 뒷받침 증거 등을 확보해 전쟁범죄 기록으로 분명히 남겨야 한다.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문헌>

    1. 옥기원/ 김영동, "진상규명 시작도 못한…성폭행이라는 학살", 한겨레, 2020.6-23일자.



시청자 게시판

2,149개(43/108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7823 2018.04.12
1308 김원웅 광복회장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 신상구 687 2020.08.18
1307 <특별기고> 광복 75주년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 사진 신상구 1189 2020.08.17
1306 독립유공 훈·포장 미전수자 전국 5949명, 충청권에만 359명 달해 사진 신상구 1023 2020.08.16
1305 보령 출신 추강 백낙관란 사진 신상구 835 2020.08.16
1304 미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신상구 727 2020.08.16
1303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이틀 간 ‘좌우합작’의 실패로 분단 사진 신상구 1118 2020.08.16
1302 조달청, 일본인 명의 귀속·은닉 재산 900억원 환수 신상구 581 2020.08.16
1301 문재인 대통령 광복 75주년 경축사 전문 사진 신상구 978 2020.08.16
1300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생애와 사상 사진 신상구 840 2020.08.15
1299 신협 충남대 명예교수 문학적 자서전을 겸한 시집 <기해년의 기도&g 사진 신상구 1482 2020.08.15
1298 호중동학군 별동대장 이종만 선생의 승전보 사진 신상구 917 2020.08.14
1297 인두의 고문에도 의연했던 의인 박태보 신상구 1287 2020.08.14
1296 대한민국, 세계 1등 상품 7개로 일본 잡았지만, 중국은 저멀리 질주 사진 신상구 983 2020.08.14
1295 21세기 불안 시대 조명 사진 신상구 1303 2020.08.12
1294 한국의 동상 분포 사진 신상구 2248 2020.08.10
1293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면 인구감소 문제 해결될까 사진 신상구 1173 2020.08.10
1292 北한군, 남침 징후 잇단 보고 軍 수뇌부가 번번이 묵살, 왜? 신상구 1153 2020.08.09
1291 만해평화대상 수상자 포티락 스님 신상구 1269 2020.08.08
1290 논산 윤증 고택 사진 신상구 1353 2020.08.08
1289 장흥 문학 기행 사진 신상구 662 202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