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꽃의 시인 김춘수의 생애와 문학세계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2.02.02 10:55

                                                           꽃의 시인 김춘수의 생애와 문학세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김춘수의 `꽃' 전문)
  한국시단의 원로 대여(大餘) 김춘수(金春洙) 시인이 `꽃'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표시로 꼽히는 `꽃'은 시전문지 `시인세계'가 최근 실시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 설문조사에서 1위에 오른 바 있다.
  1946년 광복 1주년 기념시화집 `날개'에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춘수 시인은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에 이어 `꽃의 소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처용단장' `쉰한 편의 비가' 등 시선집을 포함해 모두 2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릴케와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는 `꽃'을 소재로 한 초기시부터, 관념을 배제하고 사물의 이면에 감춰진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 '무의미시'에 이르기까지 60년 가까이 한국시단에서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 위상을 지켜왔다. 
  그의 문학세계 를 총정리한 `김춘수 전집'(현대문학ㆍ전5권)이 지난 2월 출간됐다. 전집 출간 직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만난 김춘수 시인은 대표시 `꽃'에 대해 " 언젠가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시의 1위로 뽑힌 걸 보면 일반인들은 이 시를 연애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면서 "사실 이 시는 언어문제와 실존문제에 대해 쓴 철학적인 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세계를 `꽃의 소묘'로 대표되는 초기 관념시에서 `무의미시' 로 일컬어지는 `처용단장' 등 중기시, 관념시와 무의미시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형성된 `쉰한 편의 비가' 등 후기시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시인이 평생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무의미시'를 썼던 것은 일제시대 겪은 개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전집 출간을 계기로 만났던 그는 "일제에 저항하거나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니혼(日本)대학 유학시절인 일제말기에 옥살이를 했고 이로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고 숨은 사연을 공개했다. 
  경남 통영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난 김춘수 시인은 일본 유학시절, 이웃에 살던 한국인 고학생들을 따라 도쿄 인근의 가와사키 항구에 하역작업을 하러 몇 차례 간 적 이 있었다. 돈이 궁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휴식시간에 한국인 7-8명이 모여 일본 천황이나 총독정치 등에 대해 한국말로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됐다. 요코하마 헌병대에서 헌병보로 일하던 한국인 유학생이 그 자리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7개월간 옥살이를 했고, 퇴학을 맞았으며,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불령선인의 딱지가 붙은 채 살았다. 그는 연작시 `처용단장' 을 통해 당시 수감 경험 등을 일부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일제말기 냉수탕 고문이 두려워 모든 것을 털어놓았던 자신을 보며 기질적으로 항일운동 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많이 좌절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함께 수감돼 있던 일본의 유명한 좌파 교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혼자 먹는 것을 보고 이데올로기를 믿지 않게 됐다고 했다. 
   그는 "사상가(관념가)와 실천가는 다르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관념을 배제한 `무의미시'들은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면서 "내 또래의 윤동주 시인도 독립운 동을 맹렬히 했다기보다 나처럼 우연히 고역을 치르다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 것"이 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제말의 수감 경험이나 5공 때 전국구 의원이 된 것은 모두 내 의지가 아니었던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덧붙였다.
   김춘수 시인은 5년전 부인과 사별한 뒤 경기도 분당에 사는 큰딸 영희(59) 씨의 아파트 근처에 살았다. 직장에 다니는 외손녀 두 명과 함께 살았던 그는 지난 8월 4일 기도폐색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시작(詩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전집 발간 이후 써온 시를 엮은 신작시집 `달맞이꽃'이 12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대표적 산문으로 엮은 단행본도 함께 출간된다. 
   그는 투병중이던 지난 11일 제19회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상금 300만원을 불우이 웃돕기 성금으로 전액 내놓아 각박한 세상에 훈훈한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큰딸 영희 씨는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무런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서 "평소 입버릇처럼 광주 공원묘지의 친정어머니(부인) 곁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눈시울에 젖어 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나는 한밤내 운다.//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밤 돌개바람이 되어/탑을 흔들다가/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꽃을 위한 서시' 전문)라는 영혼의 울림을 지상에 남기고 그는 `하늘의 꽃밭'으로 떠났다. 
                                                                     <참고문헌>     
   1. 정천기, "['꽃'의 시인 김춘수 씨의 삶과 예술]", 연합뉴스, 2004.11.29일자. 


시청자 게시판

2,119개(15/106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46570 2018.04.12
1838 송익필과 파주 심학산 사진 신상구 610 2022.03.19
1837 3.8민주의거 62주년을 기념하며 사진 신상구 445 2022.03.18
1836 시조 속의 역사 신상구 525 2022.03.18
1835 자연에서 찾아낸 첨단기술 신상구 347 2022.03.16
1834 소산 박대성의 몽유신라도원도 감상 사진 신상구 597 2022.03.11
1833 우크라이나 사태, 우리 안보문제 재정립 기회 사진 신상구 293 2022.03.11
1832 책 바보 이덕무의 죽음과 깨뜨리지 못한 서얼 차별 사진 신상구 419 2022.03.03
1831 모든 것은 우리 탓이다 사진 신상구 518 2022.03.01
1830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타계를 애도하며 신상구 323 2022.02.27
1829 [특별기고] 2022년 임인년의 민속과 국운 신상구 584 2022.02.26
1828 <특별기고> 항일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 사진 신상구 637 2022.02.26
1827 |중국 내 조선족 사진 신상구 418 2022.02.23
1826 ‘고조선 강역’ 한중 고대사 전쟁 사진 신상구 325 2022.02.23
1825 윤행임의 8도 사람 4자 평과 재치 사진 신상구 489 2022.02.23
1824 초혼 단재 애곡(招魂 丹齋 哀哭) 신상구 316 2022.02.22
>> 꽃의 시인 김춘수의 생애와 문학세계 신상구 642 2022.02.02
1822 임강빈 시비(詩碑) 제막식을 다녀와 쓰는 편지 사진 신상구 370 2022.02.01
1821 금정 최원규의 생애와 업적 신상구 428 2022.02.01
1820 옥의 비밀 사진 신상구 393 2022.01.30
1819 핀란드 만하임과 한국 윤보선의 공통점과 상이점 사진 신상구 391 2022.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