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7.29 03:34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우리 인류가 발명한 가장 놀라운 세 가지 제도로서 가족, 시장, 민주주의를 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매일매일 먹고 살아야 하며, 공동의 결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존재다. 가족, 시장, 민주주의가 발명되고 유지된 까닭이다. 이 가운데 하나인 민주주의의 과거, 현재, 미래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의 발명품이었다. 그리스어로 민주주의(democracy)는 ‘인민(demos)’의 ‘지배(kratia)’를 뜻했다. 인민이 공동체의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 서구사회는 물론 비서구사회에서도 가장 소망스러운 정치체제로 자리 잡아 왔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그렇다고 절로 성취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세기에도 두 가지 ‘결정적 모멘트’가 존재했다. 민주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파시즘과 싸워 이겼고,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에서 볼 수 있듯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도도한 물결을 지켜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인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표준적 설명을 내놓은 이는 평생 민주주의를 연구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었다. 달은 ‘민주주의’(1998)에서 민주주의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제도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는 전제정치의 방지, 본질적 권리들, 일반적 자유, 자기 결정, 도덕적 자율성, 인간 개발, 개인적 이익의 보호, 정치적 평등과 같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더하여, 민주주의는 평화의 추구 및 번영이라는 결과까지도 보장한다. 달이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때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앞세운 정치제도가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을 정말 선사해온 걸까.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2011)에서 21세기 우리 시대의 정치가 행복이 아니라 비통을 안겨준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다. 그런데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정치가 더 이상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은 마음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파머는 우리 시대 정치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편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민주주의와 공공선에 기여해야 할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비통한 자들의 정치’는 2000년대가 열린 이후 10년 동안 민주주의의 자화상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표준적 설명을 내놓은 이는 평생 민주주의를 연구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었다. 달은 ‘민주주의’(1998)에서 민주주의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제도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는 전제정치의 방지, 본질적 권리들, 일반적 자유, 자기 결정, 도덕적 자율성, 인간 개발, 개인적 이익의 보호, 정치적 평등과 같은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 더하여, 민주주의는 평화의 추구 및 번영이라는 결과까지도 보장한다. 달이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때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앞세운 정치제도가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을 정말 선사해온 걸까.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2011)에서 21세기 우리 시대의 정치가 행복이 아니라 비통을 안겨준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존재다. 그런데 공동체의 규범과 질서를 제공해야 할 정치가 더 이상 희망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은 마음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파머는 우리 시대 정치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절박한 인간적 요구를 무시한 채 편리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민주주의와 공공선에 기여해야 할 본래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비통한 자들의 정치’는 2000년대가 열린 이후 10년 동안 민주주의의 자화상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2020년대를 맞이하면서 지구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두드러진다. 이 비관적 전망의 한가운데 극우 정당들의 약진으로 대표되는 포퓰리즘의 발흥이 놓여 있다.
    21세기 포퓰리즘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에서 기득권에 맞서 국민을 앞세우는 인민주권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사회의 무능과 엘리트주의를 질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정치적 다원주의를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오늘날 포퓰리즘은 반엘리트주의와 반다원주의라는 두 무기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다.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2018)에서 민주주의가 새로운 ‘포퓰리즘의 모멘트’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파시즘,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던 것에 이은 세 번째 모멘트다.
    정치학자 야스차 뭉크는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가 새로운 ‘포퓰리즘의 모멘트’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뭉크가 주목한 것은 1990년대 이후 지배적 정치 패러다임으로 군림해온 자유민주주의의 일대 위기다. 이 위기는 두 가지 형태를 띤다.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스트롱맨’이 독재로 나가는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가 하나라면, 테크노크라트의 과두제가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민주주의 없는 권리 보장’이 다른 하나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넘어선 혐오, 소셜 미디어에서 강화되는 극단적 진영 논리,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가짜 뉴스 등은 ‘위험한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징표들이다.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역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에서 오늘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분석한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1990년대 탈냉전 시대가 열린 이후 민주주의가 군사 쿠데타가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 붕괴된다는 점을 주목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위시해 조지아,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가 바로 그 사례들이다. 민주주의의 전복이 이제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이 나라들에서 나타난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리는 일련의 신호들을 열거한다. 구체적으로,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이 포퓰리스트와 결탁한다. 집권 세력은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음모론을 제기하고 결과에 불복한다. 대통령은 의회를 우회해 행정명령을 남발한다. 의회가 예산권을 빌미로 행정부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탄핵을 추진한다. 정부는 명예훼손 소송 등으로 비판 여론의 입을 막는다. 이러한 신호들은 포퓰리즘이 집권한 정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상들이다.
    2020년대에 민주주의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오늘날 민주주의는 포퓰리즘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먼저 주목할 것은 포퓰리즘이 발흥한 배경이다. 어느 나라든 포퓰리즘을 부상시킨 일차적 요인은 불평등의 강화와 정치사회의 무능에 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성 정치사회가 계속 무능하다면, 포퓰리즘이 번성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위축될 것이다.
    집권 세력은 경쟁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고,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은 민주주의 위기를 알리는 일련의 신호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누워서 길을 막고 있는 모습. 뉴스1
    상황이 이렇다고 비관적 전망만을 할 필요는 없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한 해법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그 하나의 해법은 포퓰리즘을 불러들인 구조화된 불평등에 대해 적극적인 고용·조세·복지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사회적 형평을 강화하는 경제민주주의는 비서구사회는 물론 서구사회에서도 일차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해법은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주문한 정치세력 간의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레비츠키와 지브랫이 강조하듯, 정치적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특권을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다원주의라는 민주주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절차적 기반이다. 이 절차적 기반이 허약해지면 민주주의는 결국 쇠퇴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인류에게 민주주의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점이다.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대체할 정치제도는 이 세상에 부재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공동체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우리 인류는 도달해 있다.
    돌아보면,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우리 정치와 사회를 이끌어온 마스터 프레임이었다. 정치학자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분석했듯, 절차적 정치민주화는 공고화된 반면 실질적 경제민주화는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앞서 살펴본 뭉크의 ‘위험한 민주주의’가 한국을 직접 다룬다는 점이다. 뭉크는 한국이 2016~17년 촛불집회를 통해 권위주의로의 후퇴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고 평가한다. 국민 위에 군림한 지도자를 거부하고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사수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우리 정치와 사회를 이끌어온 마스터 프레임이었다. 지난 4월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0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우리 민주주의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뭉크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현재 위험하지 않은가의 질문이다. 극단적 이념 대결의 고착, 법에 의한 정치의 대체, 선동을 야기하는 가짜 뉴스의 범람 등이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나는 우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레비츠키와 지블랫이 강조하듯,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약화되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더하여,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강화되면 포퓰리즘이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언제나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주의는 쇠퇴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2020년대를 맞이해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지, 민주주의를 통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다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문헌>
    1. 김호기, "불평등 해소, 정치세력 간 상호작용이 포퓰리즘에 맞서 민주주의 지키는 일", 한국일보, 2020.7.28일자.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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