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김소월 '진달래꽃'이 한국 근대 시의 시작이었다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5.23 04:10

                                                                      김소월 '진달래꽃'이 한국 근대 시의 시작이었다

   “한국 문학 교육에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심각한 오독(誤讀) 속에 방치되어 왔다.”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김소월 새롭게 읽기’를 제안했다. 그는 최근 새 평론집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김소월은 전통을 계승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전통과 단절하는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근대적인 시를 한반도의 언어문화의 장(場) 안에서 개발하려고 했다”라며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이 출간된 1925년에 한국적 근대시가 첫 출현했다”라고 주장했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년)를 근대시의 기점으로 본 통설을 뒤집으면서, 한때 ‘민요 시인’으로 불린 김소월을 ‘한국 최초의 근대 시인’으로 인정하자는 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고 시작한 시 ‘진달래꽃’의 화자 ‘나’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헤어지려는 연인에게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애원했다. 동시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다짐했다. ‘나’는 순종과 인내에 충실한 전통적 한국 여인의 초상으로 풀이되어왔다.
   정과리 교수는 “대부분의 해석들이 저 지독한 참음 속에 ‘미련과 원망’ 있다고 단순하게 봤다”라고 비판하면서 새 독법을 내놓았다. 시의 화자 ‘나’는 이별을 인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연인에게 어디 한번 ‘즈려밟고 가시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내기를 건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태도의 표명도 근대적 개인 ‘나’의 입장에서 연인과 밀고 당기는 심리전을 전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교수는 “이 시는 ‘나’와 연인 사이의 교묘한 전쟁으로서의 대화이자 동시에 그 전쟁에 독자를 참여케 하는 호소의 울림통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독자는 20세기 벽두에 한 조선의 시인이 개발한 놀라운 근대적 광경에 빨려든다”고 평가했다.
   그는 시 ‘진달래꽃’의 근대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떠나는 임에 대한 정한(情恨)’을 다룬 전통 시가(詩歌)와 비교했다. 고려 속요 ‘가시리’는 ‘가시는 듯 도셔오소셔(돌아오소서)’라고 끝난다. 연인이 결국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근거한 표현이기에, ‘나’와 연인 사이에 ‘단절’이 없다. 하지만 김소월의 시엔 ‘단절’ 있다는 것. 정 교수는 “근대성은 ‘단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며 “그 ‘단절’이 있어야만 근대적 개인 ‘나’가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한 아리랑에도 ‘단절’이 없다. 연인과의 단절을 통해 독립하려는 ‘나’의 역할이 빠진 채 ‘즉각적이고 말초적 저주’만 있다. 정 교수는 “이 두 작품과 비교해보면 ‘진달래꽃’의 화자는 단절을 자신의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자 동시에 그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개입시키는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김소월 재발견을 주장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기존의 문학 연구와 교육에서 김소월 ‘오독’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오늘날 우리가 김소월의 시에서 근대인의 초상을 찾아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내 주장의 동기는 이렇다. 시 가르치는 국문과 교수가 되고 나서 한국 문학, 특히 한국시에 대한 이해와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도처에서 때마다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오독은 근본적이다. 첫째, 초창기의 근대시(즉, 김소월, 한용운)에서부터 해석의 단추가 잘못 꿰었다고 판단했다. 이 최초의 어긋남이 엉뚱한 한국시 해석틀을 만들어 냈고, 그것은 점차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문학의 존재 이유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추구에 있다는 근대 문학의 정신을 몰각하고 여전히 음풍농월하는 안식의 경향과 사람들을 꾸짖고 인도하는 계몽적인 방향으로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를 몰고가는 편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평론집의 세 번째 글, 「‘서정’을 규정하는 이 땅의 희극에 대해서: ‘한국적 문학 장르’ 규정 재고一‘세계의 자아화’라는 허구 혹은 ‘보편적 자아’의 끈질김」을 참조해 달라.)
둘째, 이런 현상은 학문적 고찰에서도 문제지만 실제로는 문학 교육의 장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 한국의 문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통상적인 지적은 주입식 교육에 있었다. 즉 문학이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거꾸로 돌려 문학 입법자들이 임의로 만든 단답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은 언제가 TV에 출연해서, 당신의 시를 지문으로 출제된 문제들을 풀어보았더니 40점대였다고 말하신 적이 있다. 시인도 답을 모르는 그런 답을 한국의 중고등학교는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문학작품의 선택에서부터 교육 지도 방침 등 교육의 실질적인 내용들에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의 장에서 시의 경우에 선택되는 대상은 낡은 서정시거나 위압적인 민중시이다. 정작 오늘날 사람들이 시적 가치를 발견하는 시들은 아예 취급조차 되지 않는다. 또한 내가 이번 평론집에 실린 글 「교과서에 갇힌 김수영」에서 지적했듯이 엉뚱한 교육 지침이 학생들의 감수성을 망가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 스스로 시를 거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가리킨다.
오독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근대문학이 한반도에 들어올 때 시가(글월)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가 거기에 끼어들어 일종의 혼합이 일어나서 한국적 서정시가 형성되었다. (이 혼합을 통상 습합[習合]이라고 하는데 국어사전에는 없는 용어다. 일본에서 들어온 것 같은데, 달리 용어가 없어서 나도 그냥 썼다.) 그런데 그런 섞임 현상이 거의 인지되지 못했다. 김소월은 전통적인 감정을 가져와 그것을 근대적인 감정으로 변용시킴으로써, 한국인의 재래적 정서를 혁신했다. 뛰어난 시인들은 다 그렇게 했다. 한용운은 ‘일체유심’이라는 불교적 말씀을 가져와서 근대인의 태도로 만들었는데, 원래 이 말씀은 불교에서는 ‘마음을 비우는 것’, 즉 평정의 권유에 연연결되어 있었다. 반면 만해는 그것을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로 재해석했다. 윤동주 역시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노래했는데, 잘 아시다시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은 맹자의 ‘진심 상’편에 나오는 것인데, 이 유교적 도덕관의 말을 윤동주는 가져와 철저한 개인윤리로 치환시켰다. 다음은 내가 이번 평론집에는 포함되지 않은 어느 글에서 쓴 내용이다:
   이 시의 첫 두 행은 “맹자의 ‘앙불괴어천(仰不塊於天)’을 변용해 한글로 풀어쓴 것 대시원, 「유교 윤리론의 시각으로 바라 본 윤동주의 ‘슬픈 천명’」,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6, 22쪽.
   ”임을 논구한 논문이 이미 있다. 이 사실은 윤동주가 동양적 덕목을 삶의 원리로 삼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는 증거로 쓰일 만하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동양적인 것을 온전히 끌어 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두 행은 다음 두 행,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맹자에게 있어서 저 덕목은 보편적 질서(‘하늘’)에 대한 복종으로 연결된다. 그가 저 말을 언급한 것은 「盡心章句‧상」편에서인데, 그 장의 첫 번째 말씀에서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함양하는 것이 하늘을 섬기는 근거가 된다 김길환 역, 『세계의 대사상 26 - 공자(孔子), 맹자(孟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휘문출판사, 1976, 303쪽.
   ”고 적고 있다. 즉 ‘하늘을 섬기는 문제(事天)’가 맹자의 기본 주제인 것이다. 하지만 윤동주는 그러한 덕목에 ‘나의 괴로움’을 등치시킴으로써 하늘을 섬기는 문제를 나의 부끄럼의 문제로 중심을 이동시킨다. 이 이동 덕분에 보편적 덕목은 철저한 개인적 윤리로 변환된다. 따라서 이어지는 행에서 밝혀진 개인 윤리의 내용은 이른바 유교적 내용과는 아주 다른 것이 되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는 것, 그것이 개인 윤리의 내용이며, 이는 유교적 덕목들과는 사뭇 다르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른 정통 원칙이라고 할 ‘오륜’은 물론이고 공맹이 자주 강조한 ‘천명(天命)’과도 다르다. 특히 공맹에게 있어서 ‘천명’은 구체적인 내용이 없이 오직 ‘하늘의 뜻’ 으로서의 의미로 나타난다 김학주의 주석에 의하면 “‘천명’은 사물에 드러나는 자연의 원리(『集註』),또는 하늘이 부여한 사명(『正義』)”(김학주 역주, 『논어(論語)』,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5, 117쪽)이다.
    공맹이 강조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천명에 대한 자세이다 공자에게 천명의 내용이 인간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은 다음 구절에 명확히 나타난다: “子曰道之將行也與,命也,道之將廢也與,命也.公伯寮其如命 何!” 번역하면 이렇다 한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도(道)가 장차 이뤄지는 것도 운명(命)이요, 도가 장차 없어지는 것도 운명이다. 공백료 따위가 그 운명을 어찌한단 말이냐!” - 배병삼 역주, 『한글 세대가 본 논어 2』, 문학동네, 2002, 242쪽. 역주자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공자에게 도(道)가 행해지고 아니고는 애초부터 자신의 몫이 아니었던 터다. 도가 행해지고 아니고는 운명, 즉 천도(天 道)의 몫이다.” 천명을 따라야 바르다는 것, 천명을 두려워하라는 것(공자, 『논어』, 「季氏」),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맹자』, 「盡心章句‧上」) 등등이 그런 자세이다. 한데 윤동주는 천명의 내용을 명확히 규정하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매순간 실행할 의무’로 삼았다(“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괴로워했”으니 ‘매순간’이라는 수식어가 차라리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모든 기미를 자신의 행동의 지표로 설정하였으니, 소명의 무게 전체를 개인이 감당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보통 시인들, 더 나아가 한국 강단을 지배하고 있는 평범한 문학연구자들은 이런 전통적 감정의 혁신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은 한국인들을 장악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정서’이다. 민족주의적 정서가 학문에 개입해 공정한 관찰을 방해한다. 대표적인 것은 한국시의 리듬을 오로지 ‘음보론’으로 고착시켜 놓은 60여년 전의 한국시 연구자들의 입법이다. 그 기본 발상은 음수율로 대표적으로 쓰이는 7.5조가 일본 거라는 주장인데(하이쿠가 7.5조인가? 아니다. 착안부터가 잘못 되었다.) 그 이후 한국시의 리듬을 이해하는데, 음수는 물론, 의미의 반복 같은 음보 외의 일체의 것들이 부정당했다. 그 결과는 한국시에서 리듬이 실종되어 지금까지도 한국시는 읽는 시라기보다 보는 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 이상한 민족주의는 자기들 마음대로 ‘조작’해서 만든 전통적인 것이 위대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이런 환상이 우리의 집단 무의식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봐라. 끔찍한 일인데, 실은 그게 한국의 지도적 지식인들이 해 온 일이다. 정작 대중은 그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있는데(물론 무의식적으로) 김수영의 다음과 같은 시구:

                                                   산 너머 민중이라고
                                                   산 너머 민중이라고
                                                   하여 둡시다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
                                                   웃음이 나오더라도
    교과서에 갇힌 김수영 295
    눈 내리는 날에는 손을 묶고 가만히 앉아 계시오
     (「눈」)(평론집, pp.295-296)

    를 한국 지식인들은 “손을 묶고” 곰곰이 새길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김소월의 시에서 근대인의 초상을 찾아야하는 까닭은, 김소월, 한용운이 오늘날 한국인의 ‘이상적 원형’(즉 바람직한 근대인 형상의 기본 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3.1운동의 좌절(근대문물을 통해서 독립국, 자주민의 필연성을 깨달았고, 그것을 점령자에게 요구했으나 무참히 좌절됨)이 조선인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근대성을 만들어 세워야 한다는 자각을 일깨웠으니, 그로부터 한국 근대문학의 기본 원형이 만들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 근대인 되는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에 달려들었는데(최남선의 ‘조선심’, 김억•주요한의 민요 운동), 근대의 중요한 정신(자유와 주체성)에 가장 근접한 문화, 문학형태를 만든 사람들은 소수였다. 그 소수에 해당하는 시인이 김소월, 한용운이다.”
    -시 ‘진달래꽃’에 대한 당신의 해석은 시적 화자 ‘나’가 말하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는 요구를 기존의 순종적 태도가 아닌 ‘이별의 상황을 스스로 주도할 주체적 개인의 자세’로 풀이했다. 이 시는 그래서 ‘나’와 ‘연인’ 사이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으로 요약된다. 그것을 당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인 탄생’으로 풀이했다. 그렇다면 김소월의 시에서 ‘나’를 버리려고 한 ‘연인’은 무엇을 뜻하는가. 흔히 식민지 시대 시를 읽을 때 제기하는 ‘님’이냐 ‘조국’이냐 라는 질문과 연관시킨다면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은가. 그 시를 그냥 연애시로 읽으면 안 되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3.1운동의 좌절을 통한 자각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대상이 ‘조국’이냐 아니냐와는 별 상관이 없다. 미셸 푸코가 말했듯이 근대인이 된다는 것은 ‘태도’의 문제이다. 즉 나 스스로 나의 삶을 이끌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태도 말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당연히 우리는 「진달래꽃」을 연애시로 읽을 수 있고 그렇게 읽어야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냥 연애시가 아니다. 「진달래꽃」의 화자는 떠나는 연인에게 매달리는 사람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견디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의연하게 품위를 지키면서 상대방의 회심을 유도하는 자주민이고 전략가이다. 세상의 분위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김수영 시인을 다룬 글 ‘교과서에 갇힌 김수영’을 통해 문학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시 독법의 단순성과 피상성, 상투성이 문학 교육의 차원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어떤 특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가.

    “기본적인 태도에서부터 틀렸다. 문학은 세상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유와 그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질문을 던지는 자만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즉 다른 세계관으로, 다른 세계의 모색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의 교육은 주입식 단답형 시험으로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자유를 억압할 뿐만 아니라, 그걸 보완한다고 도입한 창의성 교육(가령, 수행평가)는 학생들을 기초도 다지지 못한 상태에 방치한다. 조금 전에도 나는 모 방송국 스크립터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상의 「거울」에 대한 문제를 외국인 대상으로 출제한다고 하면서, 각 단어들, 행들에 대한 단답형 의미를 제공해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관행이 되어 있고 아예 체질이 되어 있으며 문학을 교육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답을 만들어서 그걸 교사와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문제는 교육 내용과 평가 형식이 다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다. 우선 교육 내용에 대해서, 정말 학생들에게 세상을 탐구할 수 있는 열린 지식 자원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며, 학생들이 이를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읽기, 실험, 토의, 쓰기 등의 모든 공부 형식을 만들어서 제공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평가 방식은 당연히 실질적인 지식을 논술식으로 쓰게 해서 그에 대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능력있는 평가자 풀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평가의 정당성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일단은 나는 이러한 평가 형식을 수능에 적용하고, 수능을 순수한 자격시험으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그로부터 출발해 나머지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을 바라보는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전환이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으로 ‘교사’라는 매개자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제대로 교육시키고 감수성을 일깨워서 그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능한 방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중개자’들을 육성해서 그 중개자들이 학생들을, 혹은 더 낮은 수준의 중개자들을 육성하는 계층적 확산 구조가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내가 교육대학원 수업을 꼭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 대중 강연 요청이 있을 때, 혹은 시민 대상 교육 요청이 있을 때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마도 숨어서 이루어지는, 국문학계의 나에 대한 공격이 상당할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내가 내 책에서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책에 실린 평론 ‘한국 현대시를 통해본 우울과 의지의 현상학’은 1990년대 이후 한국시의 주된 감정이 된 ‘우울’을 통해 동시대 한국 사회의 감정 과잉도 다뤘다. 2020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봐야 하나.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설움은 되살아났다(설움이 돌아 온 이유는 죄의 근원을 바깥에서 다시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동안 이 설움은 사적 분노의 차원에 머물고 있었다(가령 ‘석궁 테러’와 같은). 그러다가 세월호 침몰 사고(2014)를 통해 그것이 공적 차원으로 올라섰다. 여기서 우울의 기이한 형질 변화가 이루어져서 우울은 자책적 자기 강박에서 ‘나는 깨어있는 시민이라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자긍적 자기 강박으로 변했고, 이것이 분노의 공적 위상에 거대한 에너지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 이후 한국사회의 반전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내가 평론 「서러움의 정치학」(2013)에서 ‘우울’ 현상을 얘기할 때, 한국사회에 대한 이런 분석은 처음이어서 화제가 되었으나, 그때 이미 설움이 돌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 온 설움이 그냥 ‘사적 분노’의 차원에 머무르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보다는 이성복 시인의 새로운 설움(자기 책임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서러움. 이는 분명히 책임부재가 미만한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이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세월호’가 내 예측과 판단을 거꾸러뜨렸다. ‘세월호’에 대해선 복잡한 분석이 더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사회가 정말 깊이있는 변화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세월호 효과’는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정치사회적 상황을 낳았다. 그리고 세월호 효과를 진실의 저울에서 재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것이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특정한 정향을 추동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사람들이 거기에서 자신의 존재이유(자긍적 자기강박)를 발견하는 한, 또한 그런 근거를 제공하는 존재들이(박근혜 전대통령과 그 추종자들) 여전히 드러나 있는 한은, 그 힘은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긍적 자기강박이 무한히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가 선진화되면 될수록 다시 자기 책임의 문제가 다시 부각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것을 한국인들은 집단적 자발주의를 통한 대의에 자신을 의탁하는 방식으로 비껴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스란히 개인의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집단적 자발주의라는 분위기는 한국인이 지금 청년기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어느날 이 청년은 성년이 된다. 합리적 사유를 하게 되는 반면 실리를 챙기는 인간이 되며 동시에 자기의 자유와 책임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성과 감정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러면 그때 다시 ‘우울’이 중요한 정서적 사안으로 부각될 것이다.”
                                                                                      <참고문헌>      
    1. 박해현, " 한국 근대詩의 시작… 최남선 아닌 김소월 '진달래꽃'이었다", 조선일보, 2020.5.22일자. A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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