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강한 자는 역사를 고쳐쓴다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5.29 05:01

                                                                                강한 자는 역사를 고쳐쓴다.

   이제는 부르주아 속물이 됐지만 우리도 한때는 순수했었다. 그 시절 우리는 술자리에서 종종 브레히트의 시를 낭송했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가/ 체르노비치에서 예심판사 앞에 섰을 때 / 그녀는 요구 받았다 / 왜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는지 / 이유를 대라고 / 이에 답한 후 그녀는 일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 인터내셔널을 / 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하자 / 그녀는 매섭게 외쳤다 / 기립하시오! 당신도 /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이 시의 낭송은 늘 인터내셔널가 합창으로 이어지곤 했다. 속물의 심장도 여전히 왼쪽에서 뛰는지, 아직도 이 노래는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본 어린이들이 극장 밖으로 나와서도 벽에 달라붙듯이, 한때 사회주의 이상에 취했던 ‘어른이’는 냉정한 현실에 살면서도 그 시절의 혁명적 순수성을 잊지 못한다. 하긴 자크 데리다와 같은 철학의 대가도 인터내셔널을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이 시를 쓴 브레히트는 나치시절 박해를 피해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고국에 남아 투쟁하다가 처형당하는 동지들을 두고 혼자 빠져 나온 게 죄스러웠던 모양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1942)에 그 심경을 담았다. “물론 나도 안다. 그저 행운이었다는 것을. 내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은 것이. 근데 지난밤 꿈속에 그 친구들이 내 얘기를 하더군. ‘강한 자가 살아남는 법’이라고.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아직 순수했던 시절 우리에게도 그런 죄책감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학우들, 광주에서 도청을 지키다 스러진 동지들, 노동현장에서 분신한 수많은 노동형제들. 그 죽음 앞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죄스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죄스러움 따위는 잊은 지 오래.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팔아 어느새 이 사회의 ‘강한 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지금도 하루에 두 명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 나간다. 하지만 이들을 지켜주는 일은 어느 보수 문인에게 맡겨놓고, 이 진보의 노멘클라투라들은 사회 곳곳에 기득권의 망을 구축해 놓고 서로 부패할 권리를 지켜주느라 여념이 없다. 한때 노동해방을 외치던 노동자들이 지금은 자본가와 나란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와 땀을 빤다. 우리가 ‘열사’로 시성(諡聖)해 모란공원에 모신 무덤 중 일부는 관리비마저 밀려 있다.

   소련의 예가 보여주듯이 혁명은 성공하는 순간 반혁명이 된다. 권력을 잡은 혁명은 그 권력으로 먼저 혁명가들부터 제거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의심을 찬양함’(1939)에서 그는 이렇게 경고한다. “이제 지도자가 된 당신은 잊지 말아라,/ 당신이 옛날에 지도자들에게 의심을 품었기에, 당신이 지금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고로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의심하는 것을 허용하라!”

   촛불혁명도 혁명의 이 일반적 운명을 따라 가려는가. 벌써 지도자에 의심을 품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선동가의 말 한마디에 방송사의 취재팀이 날아가고, 비판적 기자들은 ‘기레기’로 몰려 대중에게 조리돌림을 당한다. 터부가 된 재단에 관련된 정권실세의 비리를 다룬 기사는 완성됐다는데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K’자 붙은 국뽕과 노골적인 지도자 찬양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용언론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느라 여념이 없다.

   1953년 동베를린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브레히트는 이렇게 썼다. “6월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연맹 서기장은 스탈린가(街)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권의 신뢰를 잃어버렸으니/ 이는 오직 두 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갚을 수 있다고 씌어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권이 인민을 해산해 버리고/ 인민을 새로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이용수 할머니가 폭로를 하자, 정권의 지지자들이 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그 해 여름 동베를린 거리의 작가연맹처럼 여성단체와 운동권 글쟁이들이 여기저기에 글질을 해댄다. 그들의 글에는 할머니들이 어리석게도 토착왜구의 꾀임에 빠져 운동권의 신뢰를 잃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정의연이여, 민주당이여, 차라리 할머니들을 해산하고 할머니들을 새로 뽑는 게 더 간단하지 않겠는가.

   한 언론사가 26일자 신문 2면에 게재한 만평. 만평 상단에는 만평 상단에는 ‘윤미향도 싫지만…’이라는 글이 있고, 아래에는 윤 당선인이 배에 탄 채 물에 빠진 이용수 할머니의 팔을 붙잡는 그림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이용수 할머니)을 구해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보챈다는 의미였다. 이 만평이 나가자 친문 네티즌들은 이 할머니를 ‘토착 왜구’라고 원색적으로 조롱하는 댓글을 달았다. 네이버 뉴스 홈페이지 캡처
  
   하긴, 그것이 혁명의 일반적 법칙이긴 하다. 원래 혁명은 인민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 후에는 인민이 혁명을 위해 존재하게 되는 법. 북한을 보라. 대체 무엇을 위한 혁명인가. 운동은 원래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어느새 할머니들이 운동을 위해 존재하게 되었다. 대체 무엇을 위한 운동인가. 윤미향에게 공천장을 줌으로써 그들은 위안부 운동을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민주당의 총선구호로 만들어 버렸다.

   그 구호에 사로잡힌 문팬덤이 운동의 ‘배신자’에게 늘어놓은 악담은 차마 옮겨 적을 수 없을 정도다. 음모론 교주는 할머니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고 우긴다. 어느 신문은 ‘물에 빠진 할머니를 구해줬더니 보따리(의원직) 내놓으라 한다’는 만평을 실었다. 그렇지 보따리는 원래 민중의 것이 아니라 운동가의 것이지. 그래야 혁명이지. 할머니 밥은 못 사드려도, 활동가가 쓸 집을 두 배의 가격으로 사주는 것. 그게 촛불의 혁명이다.

   승리한 혁명은 역사부터 고쳐 쓰려 한다. 촛불의 혁명가들도 압승 후에 바로 역사의 날조에 착수했다. ‘친노 대모’의 복권을 위해 이들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을 뒤집기로 했다. 친노 일족을 신성가족으로 기술하는 혁명서사의 편찬에는 어용매체들이 총대를 멨다. 그들이 대중의 눈을 가리려 아무리 먹물을 뿌려도 절대로 감출 수 없는 물음이 있다. ‘한만호의 1억짜리 수표가 왜 대모님 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됐는가?’

   출발은 대통령이다. 그는 한명숙 전총리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는 별건수사의 희생양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역시 명백한 정치적 보복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노의 대모가 돈을 받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의 가족에게 명품시계가 건네진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부와 대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중요해도,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법은 브레히트의 시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1949년의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썼다. “벌어진 일은 이미 벌어진 것. 물을 / 와인에 부어 넣은 이상 / 다시 떼어낼 수는 없는 일. 하지만 / 모든 것은 변화한다. 새로운 출발은/ 오직 마지막 숨으로만 할 수 있다.” 시간은 비가역적이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새 출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떻게?

    브레히트에 따르면 그 일은 “오직 마지막 숨으로”만 가능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설사 그것이 진보와 보수 모두가 공유했던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상황은 변해야 하는데, 새 출발은 오직 “마지막 숨”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과거를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우리가 새 출발을 하도록 자신의 “마지막 숨”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파는 자들 중 그의 뜻을 이해한 이는 아무도 없다. 그의 “마지막 숨”에서 그들은 고작 ‘우리끼리 지켜줘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래서 서로 비리를 덮어주고 변명해주고, 이를 위해 이미 벌어진 일까지 지우려 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의 후예들은 그 원망을 아예 원한으로 발전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요긴하게 써먹고 있다.

    그러니 상황은 변하지 않고, 새 출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상황은 더 나빠졌고, 새 출발은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외쳤지만, 그의 후예들은 반칙과 특권을 세습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두 번 죽었다. 한번은 그의 정적의 손에. 또 한번은 후예들의 손에. 그들은 그의 “마지막 숨”을 끊어놓고는 “포스트-노무현의 시대”를 선언했다. 과연 노무현의 시대는 왔지만, 하지만 거기에 노무현은 없다.
                                                                                         <참고문헌>
   1. 진중권, " ‘노무현의 시대’가 왔으나 노무현은 없다", 한국일보,  2020.5.28일자.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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