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근대 6대 동양화가 박승무 선생을 기리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8.26 11:42

                                                   항일독립운동가이자 근대 6대 동양화가 박승무 선생을 기리며



        
故 심향 박승무 화백 / 심양박승무선양위원회 제공
故 심향 박승무 화백 / 심양박승무선양위원회 제공

    지난 2020년 7월 25일은 서양화가인 아무(亞武) 박성섭(朴性燮), 김기숙(金基淑), 이동훈(李東勳) 등과 함께 대전 미술의 초석을 놓은 근대동양화 6대 화가로 꼽히는 심향 박승무 선생이 타계한지 4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리하여 심향선양위원회(위원장 南岡 이재호)는 이날 오전 대전 중구 목달동 심향선생 묘소에서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박헌오 한국시조협회 이사장, 황효순 미술학사학 박사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기념식을 거행했다.
    박승무(朴勝武) 선생은 1893년 8월 26일 충북 옥천군 군북면 구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소하(小霞)·심향(心香)·심향(深香)이다. 호 심향(心香)은 항일독립운동가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이 지어준 것이고, 소하(小霞)는 부친 하정(霞亭)이 지어준 것이다. 출생 직후 큰아버지 집에 입양되었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독립운동가인 범재(凡齋) 김규흥(金奎興)이 설립한 옥천 창명학교를 다녔다. 20세 때인 1912년 상경하여 큰아버지 집에서 YMCA 영어반에 들어가 미국 유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그러던 중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던 심묘(心畝) 김창환(金彰桓)의 영향으로 묵화를 시작했고 재능을 인정해 준 양부의 배려로 1913년 서화술회 강습소에 입학, 조선왕조의 마지막 화원화가인 소림과 심전(心田) 안중식(安仲植) 등에게 그림을 배웠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제1~3회 추천작가, 제4회 초대작가로 선정됐으나 국전의 문제점을 들어 한 번도 출품하지 않았고, 6·25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경에 대전 중구 대흥동에 정착해 활동한 시·서·화를 겸비한 이 시대의 대표적인 동양화가이다.
    1957년에 제1회 충청남도 미술 문화상을 받았고, 1971년에는 서울신문사에서 기획한 '동양화6대가전'에 초대되었으며, 1974년에는 '원로작가초대전'에 출품했다.
    심향 박승무 관련 단행본으로는 이경성 저 '심향 박승무 화집'(예경산업출판사, 1989.3.1), 대전시립미술관 저 '심향 박승무'(2007), 황효순 저 '逍遙, 그 깊고 그윽한 향기'(2009) 등이 있다.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등과 함께 한국화 6대 화가인 심향 박승무 선생은 낭만적인 방랑자적 기질이 있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독정권 시절 등 격랑의 시대를 살아가며 미술계와 어떤 인연도 맺지 않고 철저하게 야인화가로 초야에 묻혀 작품 활동을 하고 수상이나 어떠한 명예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아 재조명이 늦어지는 바람에 미술계와 일반인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심향 박승무는 근대 한국화의 서막을 여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고, 산수화·화조도·석란 등 다양하고 따뜻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일률적인 평가를 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전통미술의 위상을 지키면서 독창적 설경(雪景)의 세계를 그려 한국 미술사적 의미가 크지만 아직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저평가 받고 있다고 한다.
    심향 박승무는 다른 화가들과 달리 정치와 부귀영화를 멀리 하고, 애국심과 독립정신이 남달리 강해 1917년 25세로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와 용정에서 그림을 팔아 항일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였다. 그러다가 1920년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고향인 충북 옥천으로 압송되었고 2년간의 감시와 연금 하에 지내게 되었다. 경찰의 감시망이 풀리자 심향 선생은 경성으로 가서 그림 공부를 했지만, 독립운동에 마음이 쓰여 다시 만주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 후 서울과 경기도 가평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그림이 잘 팔려 중앙 화단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19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갔던 심향은 목포로 건너가 개인전을 열고 목포의 화가들과 어울려 지내기고 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직후에 옥천으로 낙향하여 잠시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55년경에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대전 중구 대흥동으로 거처를 옮겨 대전지역 1호 화가가 되었다.

심양 박승무 화백 대표작 설경산수 / 심양박승무선양위원회 제공
심양 박승무 화백 대표작 설경산수 / 심양박승무선양위원회 제공

    이후 외롭고 곤궁한 생활을 하면서 만년을 보낸 그는 대전을 중심으로 전주와 광주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했다. 선비로 순수하게 작품 활동에만 전념해 대전 미술의 초석을 놓아 대전 미술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서양화가 아무(亞武) 박성섭(朴性燮)·국악인 연정(燕亭) 임윤수(林允洙)·죽난화의 대가인 동학사 옥봉(동성) 주지스님·동양화가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서양화가 이동훈(李東勳)·동양화가 운산(雲山) 조평휘(趙平彙)·서양화가 이인영(李仁榮,) 등과 교류하면서 임화(연정 임윤수 조카 딸)·박정서(파리 거주) 등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1980년 7월 25일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5년 전인 2005년에 화가 12명이 마음을 모아 심향선양위원회를 설립했으며 현재 약 300명 정도의 화가들과 80여 명의 일반 후원회원들이 심향 선생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면서 그의 예술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심향 선생의 작품은 남종산수(南宗山水)의 전통을 이어받아 설경 산수를 수평구도로 그린 것이 대부분인데, 당시의 역사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어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생활 주변의 부드럽고 소박하고 현실감 있는 풍경을 전통양식에 따라 주로 잘 그려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해줘 비교적 잘 팔리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설경산수(雪景山水, 1967)', '춘경산수(春景山水, 1967)', '춘색유촌(春色柳邨, 1968)', '추경산수(秋景山水, 1976)', '하경산수(夏景山水, 1976)' 등이 있다.
    대전을 중심으로 목포·전주·광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바람에 심향 작품이 서울 화랑가에서 차츰 잊혀지고, 1970~1980년대에 아파트 주민들이 추상화와 비구상화를 많이 구입하여 유행하다 보니 많이 소실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코리아나미술관, 목포미술관, 심향선양위원회 회원들이 심향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심향선양위원회는 2013년에 심향미술상을 제정해 제1회 미술상은 동양화가인 운산(雲山) 조평휘(趙平彙) 선생이 받았고, 제2회는 서양화가인 가원(佳苑) 임봉재(任奉宰) 선생에게 수여했다. 그리고 해마다 기일인 7월 25일을 맞아 묘소참배를 하다가 지난 2003년부터 대전 중구 목달동 심향선생 묘소에서 정식 제례를 올리고 있다. 또한 해마다 7월에 심향선생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재조명하는 심향맥전 특별전을 대전예술가의집 전관에서 열고 있다.
    심향선양위원회(위원장 이재호)는 앞으로 황효순 박사 저서인 '逍遙, 그 깊고 그윽한 향기'(2008) 개정판을 발간하고, 전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최소 400~500점의 작품을 수집해 '심향 선생 작품 화집'을 발간을 비롯해 심향 선생의 예술정신이 담긴 교육기관이나 연구소를 설립하고, 방치되었던 묘역을 단장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선생의 40주기를 맞아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그가 인생 만년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던 대흥동 집이 방치되다시피 하여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고, 잊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심향 선생의 선비정신, 항일독립정신, 애향심, 장인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대전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대흥동 가옥을 구입하고 리모델링해 심향 박승무 교육연구소를 개설,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처 :   중부매일  2020.08.25일자.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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