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이름 유래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0.08.19 09:10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이름 유래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D.C.(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이다. 미국 동·중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경계를 흐르는 포토맥 강변에 위치했다. 미국 건국 후에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이름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에서 따왔다. 명칭부터 특이하다. 우리 수도는 서울이다. 중국은 베이징이며, 일본은 도쿄다. 영국은 런던, 프랑스는 파리, 독일은 베를린, 러시아는 모스크바다. 미국처럼 수도에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계획도시 워싱턴은 거대한 기념공원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중심으로 건설됐다. 내셔널 몰의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건 높이 솟은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이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닮은 기념탑의 규모는 170미터로 압도적이다. 이집트의 상징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20미터 이상 높다. 더 인상적인 건 기념탑을 둘러싸고 펄럭이는 50개의 성조기다. 하나하나가 미국을 구성하는 50개의 주(州)를 뜻한다. 역시 특이하다. 미국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50개의 주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뭉친다는 것을 얘기하는 듯하다.

워싱턴 기념비를 중심으로 50개의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하얀 돔 건물이 국회의사당. 계획도시인 워싱턴 DC는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땄고, 그 가운데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이집트 태양신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50개의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뒤로 보이는 하얀 돔 건물이 국회의사당. 계획도시인 워싱턴 DC는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땄고, 그 가운데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이집트 태양신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 민주공화국의 신(神) 조지 워싱턴
    특이한 건 또 있다. 내셔널 몰의 한 면에는 캐피톨(Capitol)이 서있다. 국회의사당이다. 눈부시게 하얗고 웅장한 이 건물의 중앙에 돔(Dome)이 있다. 그 아래 위치한 거대한 원형 홀이 로툰다(Rotunda)이다. 로툰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초기 미국 역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표현한 그림 8장과 위대한 리더들의 동상 그리고 천장화다. 그림에도, 동상에도 워싱턴은 빠지지 않는다. 압권은 천장화다. 50미터가 넘는 높이의 천장화 한가운데 조지 워싱턴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프랑스 절대왕정의 루이 14세처럼 당당하게 앉아있다. 자유와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들이 그의 좌우를 지키고, 주변으로는 독립과 건국의 기초가 됐던 13주를 상징하는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워싱턴의 신격화(The Apotheosis of Washington)'란 천장화 이름에 딱 어울린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이는 국회, 민의(民意)의 전당인 국회에서 워싱턴은 신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특이하다. 왜 수도에 워싱턴의 이름을 붙였을까? 왜 수도 중앙에 이집트 태양신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 형태의 워싱턴 기념탑을 지었을까? 왜 국회 정중앙에 워싱턴을 신처럼 묘사한 천장화를 그려 넣었을까? 이러고도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그 주인공이 워싱턴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 로툰다홀을 장식하고 있는 조지 워싱턴 동상. 그 위로 보이는 천장화는 ‘조지 워싱턴의 신격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로툰다홀을 장식하고 있는 조지 워싱턴 동상. 그 위로 보이는 천장화는 ‘조지 워싱턴의 신격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은 버지니아의 중소 농장주 가문에서 태어났다. 십대 초반에 아버지를 여의고 형 로런스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는 수줍음 많고 신중했으며 용감했다.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수학에 뛰어났다. 수학 실력을 바탕으로 토지 측량을 하게 되었고 유능한 토지 측량사로 인정받았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주 민병대의 장교로 영국과 프랑스가 북미 대륙의 패권을 두고 다툰 프렌치·인디언 전쟁(French-Indian War 1754~1763년)에서도 맹활약했다. 1758년 사직한 워싱턴은 부유한 마사 커티스와 결혼했고, 농장주로서의 삶에 전념했다. 영국과 식민지 사이의 분쟁이 불가피해진 1774년까지. 그동안의 세월은 평온했지만 워싱턴에게는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그는 성장했다. 부분보다는 전체를 볼 줄 알게 됐고, 외양보다는 본질을 파악할 줄 알게 됐다. 판단을 내릴 때는 균형을 우선시했고, 무엇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무겁게 여겼다. 젊은 시절의 치기(稚氣)에서 벗어나 성숙해졌고, 돈·권력과 같은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초연해졌다. 자연스럽게 워싱턴의 명성은 높아졌고, 그에 대한 주변의 신망은 두터워졌다.

국회의사당 로툰다홀 천장화.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왼쪽)과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오른쪽)이 조지 워싱턴(가운데)을 보좌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로툰다홀 천장화.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왼쪽)과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오른쪽)이 조지 워싱턴(가운데)을 보좌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775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차 대륙회의에 워싱턴은 버지니아 주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군복을 입고 회의장에 나타남으로써 참석자들에게 식민지가 직면한 사태의 심각성을, 군사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대륙회의는 대륙군을 창설했고, 총사령관에 조지 워싱턴을 임명했다. 워싱턴은 독립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애국파인 동시에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민병을 중심으로 꾸려진 식민지 군대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영제국의 정규군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낙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총사령관직을 수락했다. 임명을 거부하는 것이 책임을 피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고, 아메리카인의 자유 수호라는 명예로운 대의에 헌신해야 한다는 열정에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전쟁이 끝나는 1783년까지 워싱턴은 강인함, 신중함, 현명함, 용맹함에 기대어 대륙군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대륙군도 그런 워싱턴을 믿고 불가능해 보였던 전쟁을 지속했고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냈다.
                                                               3. 권력을 내려놓고 낙향하다
    전쟁 기간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대륙회의와 대륙군 총사령관 워싱턴의 관계는 미묘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강력한 군대가 필요했고, 그러려면 군대에 충분한 보급이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대륙회의는 강력한 군대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했다. 13개 분열된 식민지에서 대륙군은 유일한 전국 조직으로 무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영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수록 총사령관 워싱턴의 명성과 권위는 높아져갔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전무(全無)한 나라에서 인기 있는 군인과 강력한 군대의 존재는 양면의 칼과도 같았다. 아주 오래전 로마제국의 카이사르가 그랬고, 최근 영국의 크롬웰이 그랬듯이 영웅과 그를 따르는 군대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대륙회의는 그런 우려 때문에 종종 워싱턴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데 주저했다.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전쟁 내내 워싱턴은 '군대는 민간의 권위에 복종한다'는 공화국의 이상을 솔선수범했다. 그 결과 의심은 잦아들었지만, 미묘한 긴장은 여전히 남았다.
조지 워싱턴이 독립전쟁이 끝난 후 1783년 12월 23일 메릴랜드 아나폴리스에서 대륙회의 의원들에게 총사령관 권한을 반납하는 장면.
조지 워싱턴이 독립전쟁이 끝난 후 1783년 12월 23일 메릴랜드 아나폴리스에서 대륙회의 의원들에게 총사령관 권한을 반납하는 장면. /위키피디아
    1783년 파리평화조약으로 전쟁이 끝나자 세상의 이목이 다시 워싱턴에게 집중됐다. '그는 사심 없이 대륙군 총사령관직에서 내려올 것인가?' 감히 누구도 워싱턴에게 사임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부는 그가 카이사르가 되기를 바랐고, 일부는 그가 카이사르가 될까 두려워했다. 역시 기우였다. 워싱턴은 독립의 대의와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잊지 않았다. 그해 12월 23일 워싱턴은 메릴랜드 주의 아나폴리스에 입성했다. 대륙회의 의원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에 앞서 워싱턴은 뉴욕에서 대륙군 주요 장교들에게 사령관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11월 25일). 그러나 이 문제는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이벤트가 필요했다. 아나폴리스 회합이 열린 이유였다. 이 자리에서 워싱턴은 일어나 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였고, 사령장을 반납했다. 의원들은 일어나지 않은 채 워싱턴의 인사와 사령장을 받았다.
    "제게 부여된 일을 끝마친 지금, 저는 거대한 행동의 무대에서 내려오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저에게 명령을 내려온 이 장엄한 기관(대륙회의)에 애정을 담아 작별을 고합니다. 여기서 저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모든 공직에서 떠나고자 합니다."
    워싱턴은 자신의 고향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으로 은퇴했다. 국민이 선출한 문민정부가 군대 위에 존재한다는 공화국의 이상을,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모든 것을 바쳐 싸우고 위기를 해결하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고대 로마 귀족들의 이상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3. 초대 대통령이 되다
워싱턴 기념탑 위치 지도
                                        

    워싱턴의 봉사는 계속됐다. 제헌의회 의장으로 미국 헌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초대 대통령으로 나라 만들기에 헌신했다. 그는 언제나 기대에 어긋남이 없었다. 관용과 균형, 인내와 절제라는 미덕을 잃지 않았다. 사익을 누르고 공익을 우선시했다. 많은 사람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임기를 마치자 다시 낙향했다.
    권력은 인간을 취하게 하고 타락시키는 마력(魔力)을 가졌다. 아무리 작은 권력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본성과 정치가의 초심은 권력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다. 워싱턴이 특별한 이유다. 그는 권력에 초연했다. 언제나 '업(業)'이 끝나면 '직(職)'을 내려놨다. 왕이 될 수 있었지만 시민의 길을 택했다. 워싱턴의 그런 행동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미국의 리더들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제공했다. 미국인들은 워싱턴의 위대함을 알았기에 사후에 그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참고문헌>

    1. 송동훈, "권력의 정점에서 권력을 내려놓자, 대통령은 神이 됐다", 조선일보,   2020.8.18일자. A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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