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조건, 풍부한 물산
백제부터 구한말까지 찬란한 역사
충남 중심에서 환황해권 중심으로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내포 지역.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조선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내포 지역.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금강일보 최신웅 기자]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 한다.”
- 이중환 ‘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 中

#. 새 문화의 관문 ‘내포’

1970년대 홍성군 광천읍 옹구포구의 모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1970년대 홍성군 광천읍 옹구포구의 모습.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제공

   내포는 가야산 주변, 조선시대 홍주(洪州) 관활 고을 등을 일컫는 옛 지명으로 충남의 내륙과는 다른 역사적 흐름과 독특한 문화상을 가진 지역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닌 내포는 일찍부터 포구가 발달하고 주변에 평야가 형성돼 물산이 풍부했다. 또 포구를 중심으로 불교와 천주교 등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유입돼 선진적인 문화권을 형성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펴낸 내포문화총서1 ‘내포의 역사와 문화’에 따르면 ‘내포’의 지리적 개념은 행정구역으로서의 법제적 단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기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가 확대돼 간 경향이 있다. 이런 가운데 18세기 ‘영조실록’에는 홍주목사의 통제를 받는 ‘내포 18읍’을 명시했는데 18읍은 서천, 면천, 태안, 온양, 평택, 홍산, 덕산, 청양, 남포, 비인, 결성, 보령, 아산, 신창, 예산, 해미, 당진, 등을 지칭한다.

   일찍이 고대 시대부터 바닷길이 발달한 내포는 내포만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다. 특히 선진문물의 수용되는 창구 역할을 하면서 불교와 천주교 등 새로운 사상이 내포에서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로 꽃피웠다.

서산 마애삼존불상. 충남도 제공
서산 마애삼존불상. 충남도 제공

   가야산 주변의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태안 마애삼존불입상,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등 백제 석불 3기가 이를 증명한다. 당시 이러한 규모의 불상 제작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나 부여를 비롯한 한반도 어느 곳에서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 있어서도 내포를 빼놓을 수 없다. 내포는 천주교 초기 전파의 상징적인 지역이었다.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 한국천주교의 최초 성직자들의 고향이 당진과 청양 등 내포 일대라는 점, 그리고 내포 지역 교회가 서울교회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의 배후지 구실을 했다는 점은 이곳 내포가 당시 한국천주교 전파에 얼마나 중요한 곳이었는가를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 백제부터 구한말까지

   내포 지역은 과거 삼국시대부터 백제 시대의 영토로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포 지역의 고대사를 논할 때 백제부흥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임존성을 빼놓을 수 없다. 임존성은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 정상에 구축된 산성으로 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한 부여 도성 함락 직후, 복신, 도침, 흑치상지에 의하여 부흥운동의 봉화가 올려진 곳이다. 흑치상지가 봉기해 임존성에 의거하자 10일 만에 3만여 명이 몰려들었다고 기록돼있다. 백제부흥군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치열하게 성을 지켰지만 부흥군 내부의 분열과 왜의 지원을 받아 치러진 백강전투의 패배 등 결국에는 성을 내주고 백제 부흥운동의 막을 내리게 된다.

가야사지에 자리잡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충남도 제공
가야사지에 자리잡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 충남도 제공

   천년고찰 가야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가야사지는 덕산에서 옥병계를 지나 서북쪽으로 약 2.5㎞를 가면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남연군묘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가야사는 고려사에 처음으로 언급되고 이후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가야사는 조선후기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묘 이장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 이외에 이렇다 할 역사를 알지 못했지만 지난 2004년부터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가야사지 주변에 대한 시굴조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이 중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사가 고려시대 ‘대가람(규모가 큰 절)’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고려사에 가야사가 망이·망소이의 난 당시 점거 약탈당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반란군들이 가야사를 인식할만큼 당시 사찰의 세력이 컸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충남의 한말 의병활동을 대표하는 동시에 한국 의병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홍주의병이 바로 내포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홍주의병 봉기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을 계기로 1차 봉기가 일어났고, 이후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민종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안병찬 등과 함께 의병을 조직해 홍주성을 공격하면서 2차 봉기가 일어났다. 홍주의병은 홍주성을 점령하는 등 위세를 떨쳤지만 결국 일본군의 공격으로 수백 명이 사망하며 패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홍주의병은 생존자들은 후에도 항일비밀단체를 결성하는 등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이어가며 한국독립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밖에 한용운, 김좌진, 윤봉길, 이상재 등 한국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을 두루 배출한 곳이 바로 내포 지역이었다.

                                        #. 환황해권시대 중심을 꿈꾼다

내포신도시에 조성될 충남미술관과 예술의전당 등 조감도. 충남도 제공
내포신도시에 조성될 충남미술관과 예술의전당 등 조감도. 충남도 제공

   내포는 지난 2012년 충남도청을 비롯한 주요 행정기관 이전으로 새로운 미래 100년의 변화를 시작했다. 도청 이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환황해권시대 거점지역으로서 서해안지역의 역할이 증대된 것. 또 경부축을 중심으로 기능이 집적된 불균형적 지역구조에서 벗어나 충남 내륙, 북부, 서해안 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형성하게 됐다.

   충남은 최근 10여 년 동안 북부권, 서해안권, 내륙권, 금강권 등 권역별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지난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2020년 내포신도시가 충남혁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또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충남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유치가 진행되면 도내 대학생 등 지역 인재 공공기관 취업률 향상 정주인구 증가, 민간 기업 유치, 주택·교육·의료·문화·체육시설 등 정주 여건 개선, 지방세수 증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도는 지난해 지역과 지역, 중앙과 지역이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는 미래 20년 비전&전략이 담긴 로드맵 '제4차 충청남도 종합계획’(2021∼2040)이 완성됐다. 계획에 따라 서해안권, 북부권, 금강권 3대 균형발전 권역과 북부스마트산업권, 충남혁신도시권, 해양신산업권, K-바이오산업권, 국방·웰빙산업권 5대 산업발전 권역 등 계획권역을 유연하게 구상함으로써 연대와 협력을 촉진하고, 상생 발전을 활성화한다.
   이 중 내포가 포함된 서해안권은 충남혁신도시를 환황해권 중심도시권으로 설정해 동서균형발전의 축으로 삼고, 국제해양관광 및 국가기간산업지대로 육성할 계획이다.

   도는 종합계획의 실행력을 확보하기 위해 계획기간(2021~2040년) 동안 141조 9980억 원을 투입한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2040년 충남 인구가 2020년 212만 명에서 236만 명으로, 지역 내 총생산(GRDP)은 115조 5000억 원에서 143조 7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제4차 종합계획은 충남의 미래상과 발전계획을 담은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도와 시군에는 지역발전에 관한 정책방향의 기본이 된다”며 “앞으로 내포지역을 비롯해 삶의 질이 높은 더 행복한 충남 구현을 위해 실행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1.  최신웅, "충청 으뜸고장 내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금강일보, 2022.5.3일자.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