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세상을 뜬 신경림 시인의 장례는 대규모 문인장으로 치러졌다. 선생이 일군 한국작가회의는 물론 보수 문인단체인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 등 무려 9개 단체가 장례를 공동주관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같은 곳도 동참했다. 생전 동시집을 낸 선생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문인장이 드물지는 않지만, 진영 구분 없이 문인단체들이 대거 장례를 공동주관한 것은 소설가 이문구(2003년 별세)·박경리(2008년 별세) 이후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선생의 처신이 두루두루 원만했다는 얘기다.
페이스북에는 추모글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인사동에서 주점 ‘소설’을 운영했던 염기정씨는 “가끔 신경림 선생님이 오셨다. 조용하게 말하시고 웃으셨다. 어느날, 선생님이 부르시는 ‘부용산’을 들었는데 내가 들은 여러 부용산 노래 중 제일로 좋았다”는 글을 올렸다. 선생의 실제가 느껴진다.
시 공부가 되는 글도 있다. 이영광 시인은 선생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가난과 사랑의 대립’으로만 읽는 기존 해석들이 못마땅해 ‘운동과 사랑의 대립’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독법 대신, 운동을 위해 포기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가난한 사랑노래’는 선생이 길음동 단골 술집 여주인의 딸과 노동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청년 노동자의 결혼을 주례까지 서며 축시로 써준 작품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운동과 사랑의 대립’으로 읽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정답은 없는 문제다.
1956년에 등단했으니 올해까지 친다면 선생은 근 70년을 시 쓰며 살았다. 나이나 등단 시점이 비슷한 고은 시인에 비해 과작(寡作)이라고 하지만 그 긴 세월 선생의 작업 내용과 생각의 변화, 행적을 얄팍하게 요약하기는 어렵다. 선생은 시집만 열한 권을 냈고 시론(詩論)을 밝힌 글도 심심찮게 발표했다. 민요시·서사시에도 손댔다.
시간대가 다른 한계도 있다. 가령 86세대만 해도 대표 시집 『농무』의 73년 출간 당시 폭발력을 상상만 할 뿐이다. 2004년 출간된 『신경림 시전집』 1권의 문학평론가 염무웅씨 해설에 따르면, 이제는 전설이라고 할 만큼 『농무』의 시 몇 편이 처음 발표됐을 때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충격과 감명을 줬고, 마침내 시집으로 출간돼 전후 한국시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선생의 평생지기인 유종호 평론가는 “시가 우선 쉽고 서정성이 강해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데다, 유신 체제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의 위력이 커짐에 따라 시인 신경림의 위상도 올라간 점이 복합 작용했다”고 밝혔다. 평론가 유성호씨는 “농촌의 무기력한 현실을 그려내는 체험에 관한 한 당대에 유력한 경쟁자가 없었다”고 했다. 시인이 됐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자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홍천·영월 등지를 전전하며 양귀비 장사치들하고까지 어울렸던 10년 세월이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농무』 자체도 좋았지만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져 수십만 부가 팔린 민중적 서정시의 전범이 됐다는 얘기다.
시대가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시가 어때야 하는지에 관한 선생의 시론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젊은 시절엔 과격했다. 70년대 말 강연에서, 시는 민족의 중심세력인 민중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80년 문예중앙 좌담에서는 청록파의 박목월을 실명 거론하며 체제순응적이라고 비판했다. 만년 소년 같은 선생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 같다.
하지만 80년대 말에 이르면, 과거 자신이 과격했음을 인정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감동적인 시를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막역했던 화가 후배 여운과의 2008년 좌담에서는 현실정치에 관한 발언도 한다. 자신을 중도우파라고 생각한다며, 과격한 사람보다 중도적인 사람들이 그 시대의 중심이 돼야 나라가 편해진다고 했다. 과거사 부정도 잘못이고, 통일론자를 빨갱이라고 매도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선생의 90년 시집 『길』에 실린 ‘소장수 신정섭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래서 소장수 신정섭 씨는 세 마디만 가지고/ 세상을 몰겠다는 사람들이 밉다/ 백성의 어데가 아프고/ 어데가 가려운 줄도 모르면서/ 이랴이랴로 끌고 어뎌여뎌로만 다스리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밉다 못해 가엾다”
정쟁에만 골몰하는 지금 여·야 정치인들은 소장수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신경림 선생의 저런 문장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신진봉, "신경림의 시가 가르쳐주는 것", 중앙일보, 2024.5.28일자.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