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경림의 시가 가르쳐주는 것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4.05.28 16:05

 

                              신경림의 시가 가르쳐주는 것


신준봉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지난 5월 22일 세상을 뜬 신경림 시인의 장례는 대규모 문인장으로 치러졌다. 선생이 일군 한국작가회의는 물론 보수 문인단체인 한국문인협회·국제펜클럽한국본부 등 무려 9개 단체가 장례를 공동주관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같은 곳도 동참했다. 생전 동시집을 낸 선생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문인장이 드물지는 않지만, 진영 구분 없이 문인단체들이 대거 장례를 공동주관한 것은 소설가 이문구(2003년 별세)·박경리(2008년 별세) 이후 처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선생의 처신이 두루두루 원만했다는 얘기다.

  페이스북에는 추모글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인사동에서 주점 ‘소설’을 운영했던 염기정씨는 “가끔 신경림 선생님이 오셨다. 조용하게 말하시고 웃으셨다. 어느날, 선생님이 부르시는 ‘부용산’을 들었는데 내가 들은 여러 부용산 노래 중 제일로 좋았다”는 글을 올렸다. 선생의 실제가 느껴진다.

진보·보수 망라 대규모 문인장
한때 과격했으나 차츰 균형 잡아
어리석은 위정자 꼬집는 시 남겨

  시 공부가 되는 글도 있다. 이영광 시인은 선생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가난과 사랑의 대립’으로만 읽는 기존 해석들이 못마땅해 ‘운동과 사랑의 대립’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독법 대신, 운동을 위해 포기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가난한 사랑노래’는 선생이 길음동 단골 술집 여주인의 딸과 노동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청년 노동자의 결혼을 주례까지 서며 축시로 써준 작품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운동과 사랑의 대립’으로 읽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정답은 없는 문제다.

  1956년에 등단했으니 올해까지 친다면 선생은 근 70년을 시 쓰며 살았다. 나이나 등단 시점이 비슷한 고은 시인에 비해 과작(寡作)이라고 하지만 그 긴 세월 선생의 작업 내용과 생각의 변화, 행적을 얄팍하게 요약하기는 어렵다. 선생은 시집만 열한 권을 냈고 시론(詩論)을 밝힌 글도 심심찮게 발표했다. 민요시·서사시에도 손댔다.

  시간대가 다른 한계도 있다. 가령 86세대만 해도 대표 시집 『농무』의 73년 출간 당시 폭발력을 상상만 할 뿐이다. 2004년 출간된 『신경림 시전집』 1권의 문학평론가 염무웅씨 해설에 따르면, 이제는 전설이라고 할 만큼 『농무』의 시 몇 편이 처음 발표됐을 때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충격과 감명을 줬고, 마침내 시집으로 출간돼 전후 한국시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선생의 평생지기인 유종호 평론가는 “시가 우선 쉽고 서정성이 강해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데다, 유신 체제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의 위력이 커짐에 따라 시인 신경림의 위상도 올라간 점이 복합 작용했다”고 밝혔다. 평론가 유성호씨는 “농촌의 무기력한 현실을 그려내는 체험에 관한 한 당대에 유력한 경쟁자가 없었다”고 했다. 시인이 됐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자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홍천·영월 등지를 전전하며 양귀비 장사치들하고까지 어울렸던 10년 세월이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농무』 자체도 좋았지만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져 수십만 부가 팔린 민중적 서정시의 전범이 됐다는 얘기다.

  시대가 바뀌는데 변하지 않는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시가 어때야 하는지에 관한 선생의 시론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젊은 시절엔 과격했다. 70년대 말 강연에서, 시는 민족의 중심세력인 민중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80년 문예중앙 좌담에서는 청록파의 박목월을 실명 거론하며 체제순응적이라고 비판했다. 만년 소년 같은 선생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장면 같다.

  하지만 80년대 말에 이르면, 과거 자신이 과격했음을 인정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감동적인 시를 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막역했던 화가 후배 여운과의 2008년 좌담에서는 현실정치에 관한 발언도 한다. 자신을 중도우파라고 생각한다며, 과격한 사람보다 중도적인 사람들이 그 시대의 중심이 돼야 나라가 편해진다고 했다. 과거사 부정도 잘못이고, 통일론자를 빨갱이라고 매도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선생의 90년 시집 『길』에 실린 ‘소장수 신정섭씨’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래서 소장수 신정섭 씨는 세 마디만 가지고/ 세상을 몰겠다는 사람들이 밉다/ 백성의 어데가 아프고/ 어데가 가려운 줄도 모르면서/ 이랴이랴로 끌고 어뎌여뎌로만 다스리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밉다 못해 가엾다”

  정쟁에만 골몰하는 지금 여·야 정치인들은 소장수의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신경림 선생의 저런 문장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1. 신진봉, "신경림의 시가 가르쳐주는 것", 중앙일보, 2024.5.28일자. 28면.


시청자 게시판

2,338개(9/117페이지)
시청자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시청자 게시판> 운영원칙을 알려드립니다. 박한 63565 2018.04.12
2177 한글 우수성 외국에 알린 호머 헐버트 선교사 사진 신상구 359 2024.06.14
2176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禪명상 보급 진두지휘 사진 신상구 226 2024.06.13
2175 도산 안창호선생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의 사진 신상구 264 2024.06.13
2174 한 최초 칸 취화선 속 달항아리, 세계에 우리의 것 위상 높였다. 신상구 334 2024.06.12
2173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한국 작가들 사진 신상구 265 2024.06.11
2172 보문산 동굴 일제 군사용 목적과 민간신앙 활용 독특한 사례 사진 신상구 154 2024.06.11
2171 6.10 정신으로 민주주의 되살려야 신상구 198 2024.06.11
2170 세계 양자 물리학계 스타였던 한국계 과학자 남세우 박사 별세 신상구 169 2024.06.11
2169 삶의 추억 원로시인 김광림 별세 신상구 210 2024.06.10
2168 단오절의 유래와 풍습 신상구 111 2024.06.10
2167 호암미술관 고미술 기획전'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6월16일 폐막 사진 신상구 145 2024.06.09
2166 불교 조계종 대종사 옹산 스님, 불교의 '참된 진리' 사람들에 전하며 올 사진 신상구 119 2024.06.09
2165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 사진 신상구 123 2024.06.08
2164 <특별기고> 제69회 현충일을 맞이하여 사진 신상구 127 2024.06.06
2163 &lt;특집기고&gt; 2024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이 사진 신상구 312 2024.06.05
2162 익산 왕궁리유적 사진 신상구 231 2024.06.01
2161 독일엔 괴테, 한국엔 정약용 사진 신상구 292 2024.06.01
2160 이성자 화백의 佛 아틀리에, 프랑스 문화유산 됐다 신상구 283 2024.05.31
2159 30년 뒤 생산인구 1295만 명...전국서 세종시만 늘어 사진 신상구 224 2024.05.30
2158 1980년 5월 27일 광주민주화운동 최후의 날을 잊지 말자 신상구 349 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