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관론자들은 장보고가 지나지역에서 출생했다는 논리를 펴는데, 역사열등감에 사로잡힌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장보고 아버지는 백제영역인 지나지역에서 출생한 백제의 후예가 맞지만,장보고는 완도출생이라 할 수 있다.그래서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에 자신의 고향인 청해진(완도)을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완도에서는 장보고와 청해진과 관련한 유적유물들이 무수히 출토되고 있다.
아시아해상국가 백제후예 장보고
아시아해상국가 백제후예 장보고
‘바다의 한국사’에서 발췌 - 서현우(작가, 여행가, 해양사 연구가) -
‘장보고의 부조父祖는 장백익張伯翼으로 백제영역이였던 지나국 절강성 소주부蘇州府 용흥리龍興里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라국에 여러 차례 왕래하다가 귀화하여 현재의 완도읍 장좌리에 정착하였다.’
"자字는 정집正集이요, 어릴 때 이름은 궁복弓福인데 또 다른 이름은 궁파弓巴라고도 하였다. 관官은 청해진대사淸海鎭大使, 감의군사感義軍使, 진해장군鎭海將軍이시고, 장군의 아버지는 지나국 절강성 소흥부蘇興府 용흥龍興사람이신데 당나라에서 중랑장우복야中郞將右僕射를 지냈으나 750년경(경덕왕) 신라로 귀화하였고 장군은 신라에서 태어났다. …" 〈안동장씨중앙대종회 사이트〉
백제의 성씨姓氏에서 장張씨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1960년 지나국 하남성(노산현 대왕촌)에서 발견된 백제유민 출신의 당나라 무장 난원경難元慶의 묘지석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이다. 연구의 결과로 위 난難씨를 포함한 장張씨와 왕王씨 화和씨 등이 백제의 성씨이며, 이들 성씨가 부여족 계통의 성씨임이 드러났다.
이로서 우리는 왕인王仁 박사의 왕씨가 백제의 일반적 성씨 중의 하나임과, 기존의 중국사서의 기록에 나타난 백제의 성씨에 더하여 백제엔 실로 다양한 성씨가 존재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732년 발해渤海 해군을 이끌고 당唐나라 등주登州(산동성 북단)를 공격한 발해 장군의 이름이 장문휴張文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