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첫 월드 스타 강수연 별세         

장례식장에 놓인 강수연의 영정사진. 2004년 사진작가 구본창이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은 것이다. /뉴스1
장례식장에 놓인 강수연의 영정사진. 2004년 사진작가 구본창이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은 것이다. /뉴스1

 


  배우 강수연(56)이 지난 7일 오후 3시 별세했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198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한국 영화계의 첫 ‘월드 스타’였다. 지난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강수연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8일 오전 11시 40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씨받이’와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이 아내 채령씨의 부축을 받으며 분향했다. 2004년 사진작가 구본창이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었다는 영정 사진 속 배우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두 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배우는 떠나도 그리움은 남는다. 박중훈·강수연 주연의 1987년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포스터를 위해 촬영한 사진. 아역 배우 출신의 강수연은 이 영화를 통해서 1980년대의 대표적 하이틴 스타로 거듭났고, 그 뒤 우리가 아는 ‘월드 스타’가 됐다. “일흔이 되었을 때에도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연기도 잘하는 ‘할머니 배우’가 되는 것”이 고인의 생전 마지막 꿈이었다. /사진작가 구본창
배우는 떠나도 그리움은 남는다. 박중훈·강수연 주연의 1987년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포스터를 위해 촬영한 사진. 아역 배우 출신의 강수연은 이 영화를 통해서 1980년대의 대표적 하이틴 스타로 거듭났고, 그 뒤 우리가 아는 ‘월드 스타’가 됐다. “일흔이 되었을 때에도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연기도 잘하는 ‘할머니 배우’가 되는 것”이 고인의 생전 마지막 꿈이었다. /사진작가 구본창



   “좋은 연기자를 만난 행운 덕에 내 영화가 좀 더 빛날 수 있었다. (강)수연이는 내 딸 같은 배우였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가면 어떡하냐.” 임권택 감독은 충격을 받아 말이 잘 안 나온다고 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은 “몇 달 전에 뵈었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영정도 영화 소품 같다”고 했다.

   아역 배우로 출발해 1980년대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최고의 하이틴 스타가 된 강수연은 한국 영화의 필모그래피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싱그러운 청춘(’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거친 풍파 속 창녀(‘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희대의 요부(‘연산군’)로 변신했다. 1990년대에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비롯해 숱한 흥행작을 냈고 대종상·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 등을 받았다. ‘그대 안의 블루’ 기획에 참여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강수연은 헌신하는 전통적 모습과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 여성상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고 했다.

영화배우 강수연 연표
영화배우 강수연 연표

   강수연은 생기 넘치던 산골 소녀가 양반집 대를 잇는 ‘씨받이’ 연기로 스물한 살에 월드 스타가 됐다. 전도연(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윤여정(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보다 20~30년 앞선 쾌거였다.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는 삭발을 하며 비구니의 삶을 연기했다.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냉전 시절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날아온 강수연의 수상 소식은 국가적 경사와 같았다”고 회고했다. 치열한 연기 근성 때문에 ‘독종’으로도 불렸다.

이날 빈소에는 배우 김지미와 윤여정이 보낸 것을 포함해 조화(弔花)가 즐비했다. 배창호·윤제균·임순례·연상호 감독, 배우 문소리·예지원·엄지원도 보였다. 배우 박정자는 LA 폭동을 다룬 장길수 감독의 영화 ‘웨스턴 애비뉴’(1993)를 미국에서 촬영할 때 엄마를 맡아 딸 강수연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강수연은 영어도 유창하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배려할 정도로, 체구는 작아도 굉장히 큰 여자였다”며 “영화밖에 모르고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후배였는데 너무 빨리 떠났다. 하늘에선 덜 외롭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장례식장에 놓인 강수연의 영정사진. 2004년 사진작가 구본창이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은 것이다. /故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장례식장에 놓인 강수연의 영정사진. 2004년 사진작가 구본창이 바자 ‘Timeless Beauty’ 화보용으로 찍은 것이다. /故강수연배우장례위원회

 






  강수연은 배우로만 머물지 않았다. 2000년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으며 집회와 행사마다 최전선에 나섰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강수연의 말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돈에 휘둘리지 말고 자긍심을 지키자는 뜻이었다. 류승완 감독이 영화인 모임에서 이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영화 ‘베테랑’에 사용하면서 국민적 유행어가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에는 1996년부터 사회자·집행위원으로 해마다 참석해 ‘영화제 안방마님(페스티벌 레이디)’으로 불렸다. 2015~2017년엔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빈틈없는 완벽주의자였다. 빈소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강수연은 영화를 너무 사랑했다”며 “부산영화제가 어려울 땐 정의감에 불타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리더십과 추진력이 강한 여걸(女傑)이었다”고 회고했다. 9년가량 출연작이 없던 강수연은 최근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주연을 맡아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일흔이 돼서도 관객에게 사랑받고 연기도 잘하는 ‘할머니 배우’가 되는 것”이 그의 마지막 꿈이었다.



   장례는 영화인장(위원장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으로 치른다.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이우석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황기성(가나다순)씨가 고문을 맡는다. 장례위원으로는 강우석, 강제규, 류승완, 명계남, 문성근, 문소리, 배창호, 변영주, 봉준호, 설경구, 심재명, 원동연, 유인택, 윤제균, 이용관, 이창동, 전도연, 장선우, 차승재, 채윤희, 최동훈 등 40여 명이 참여한다.

   일반인도 월드 스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다. 10일까지 오전 10시~밤 10시 조문이 가능하다. 영결식은 11일 오전 10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