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고 사진실-주형철 부부 이야기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12.14 15:01

                  고 사진실-주형철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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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진실(오른쪽) 교수와 남편 주형철(왼쪽) 대표.
고 사진실(오른쪽) 교수와 남편 주형철(왼쪽) 대표.

“아내는 말기암으로 엄청난 고통을 느끼면서도 밤새워 논문을 썼죠. 소명의식이 굉장히 투철한 학자였어요.”(주형철 서울산업진흥원 대표) “그는 광화문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면 함께 울고 웃는 그런 축제를 꿈꿨어요. 살아 계셨으면 지금쯤 광화문 축제판을 만들었을 겁니다.”(최원오 광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2년 전 여름 만 50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고 사진실 전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 얘기다. 서울대 국문학과 84학번인 고인은 같은 과 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를 딴 지 2년 만인 1999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6년 뒤인 마흔살 때 말기암 판정을 받았지만 10년을 더 투병했다.

최근 사 교수의 저작집이 <전통연희 시리즈>(태학사 펴냄)란 이름으로 출판됐다. 고인의 남편 주 대표가 발간을 제안하고, 대학 1년 후배인 최 교수가 흔쾌히 편찬의 수고로움을 떠안으면서 유고들이 빛을 보게 됐다. 전 9권 가운데 전통연희와 관련된 문화콘텐츠 개발 수업 자료집이 두 권이나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16년 투병’ 아내 사 교수 2년전 떠나
영화 ‘왕의 남자’ 원작 사료 제공 ‘유명’
고인의 대학 후배 최원오 교수와 함께
‘전통연희 시리즈’ 유고전집 9권 펴내

서울대 동문 선후배로 “첫눈에 반해”
대기업 대표 그만두고 ‘간병 사부가’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사 교수는 만만치 않은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한국의 전통연극을 전공한 그는 생전 펴낸 두 권의 저서(<한국연극사 연구>, <공연문화의 전통 악·희·극>)에서 고려부터 조선 시대까지 궁과 시정 등의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의 연희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런 노력은 탈춤이나 판소리 정도로 치부되는 한국의 전통공연에 대한 통념을 깨부수는 데 기여했다. 궁중 광대 공길과 장생의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이 사 교수의 강의노트에서 출발한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2008년 국립국악원이 광화문 앞 전통축제 ‘산대희’를 되살려 공연한 것도 그가 열정적으로 파고들었던 산대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 조선 시대 원행 나갔던 임금의 환궁 행렬이 광화문에 도달하면 거대한 산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산을 본떠 만든 가설 공간인 산대는 춤과 노래, 놀이 등 종합예술 연희가 펼쳐지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무대 배경이었다. 선조 때는 광화문 좌우에 모두 8개의 산대를 세워 사계절 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 교수는 우리 전통연극을 악·희·극의 갈래로 나눠 셋이 경쟁하며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발전했다는 학설을 새로 제시하기도 했다. 악은 노래, 희는 놀이, 극은 이야기가 중심인데, 정재와 탈춤, 판소리가 악·희·극의 대표적인 공연 양식이다. 그는 전통연희 연구가 주로 ‘희’에만 치중했고, 근대극 연구는 ‘극’ 중심이었다면서, 셋을 모두 균형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내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엄청난 공연문화 전통이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면서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아내의 꿈은 우리나라 전체 역사를 관통하는 한국연희사를 쓰는 것이었어요.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연극사까지 쓰고 싶어했죠. 준비를 많이 했는데….”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83학번으로 사 교수의 1년 선배인 남편 주 대표는 “직장 다닐 때 서울대 도서관에 갔다가 매점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아내를 우연히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 하늘빛 눈이 너무 매력적이었다”고 추억했다.

주 대표는 40대 초반에 직원 2천명의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 사장을 지낼 정도로 잘나가던 경영인이었다. 아내의 병세가 위중해지자 회사를 그만두고 1년가량 전북 무주로 내려가 간병을 했다.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인 사 교수는 노래 부르기를 무척 좋아했다. 2013년 부부는 한겨레 평화의 나무 합창단 오디션(6기)을 통과해 알토와 베이스로 화음을 맞추기도 했다. 그가 2년 전 서울시 산하 재단법인 서울산업진흥원 대표에 공모한 것도 아내의 권유 때문이었다. 아내 임종 한달 전쯤 임기 3년의 대표직에 취임했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돈의 가치만 추구하지 말고, 사람과 사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영을 하면 어떻겠느냐고요. 그 충고를 따랐지요.”

그는 아내가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교수 시절에 함께 미국의 박물관을 찾아다녔던 기억을 떠올렸다. “피보디박물관에서 아내가 한국 전통공연 그림을 찾아내고 ‘내 생각이 맞았다’며 무척 기뻐했어요. 한국에 엄청난 공연 문화가 있었다는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주는 자료였거든요. 서울 도심에서 빛으로 꾸민 축제 조형물을 볼 때마다 산대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그는 전집을 본 공연기획자들에게서 아내의 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보겠다는 연락이 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만 자족하지 않았어요. 공부가 다시 현대 문화콘텐츠로 재생산되는 데 많은 신경을 썼어요. 또 이전에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주목하지 않은 분야를 개척한 학자입니다. 그가 그렸던 로드맵에 비춰 보면 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아요. 후학들이 이어받아야겠지요.”(최원오 교수)

최 교수는 오는 12월 부산교대에서 열리는 한국공연문화학회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전통공연 문화와 교육’을 주제로 사 교수의 연구 업적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북 무주에서 요양중이던 사진실 교수(앞줄 가운데)가 암 투병을 위문하러 온 지인·중앙대 제자들과 함께한 모습.
전북 무주에서 요양중이던 사진실 교수(앞줄 가운데)가 암 투병을 위문하러 온 지인·중앙대 제자들과 함께한 모습.

                                                                              <참고문헌>
   1. 강성만, "아내는 말기암 고통에도 밤새 논문 쓰던 ‘투철한’ 학자”,  한겨레신문,  2017.7.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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