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포암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글쓴이 localhi 날짜 2011.03.27 15:22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포암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천안중학교 사회과 교사(향토사학자, 시인)  신상구                    

                1. 이백하 선생은 구한말 충남 천안에서 출생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 선생은 구한말인 1899년 4월 17일에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석곡리 목골 433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주이씨(全州李氏) 가문의 덕천군파(德泉君派) 17세 손으로 심재(審齋) 이건표(李建標)와 박노희(朴魯姬) 사이의 3남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조부인 오당(堂) 이상수(李象秀) 선생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제자로 시문과 교육방법론에 능한 조선시대 말의 대학자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백하 선생은 조부의 유지를 이어받아 일평생 항일독립운동과 초?중등교육에 헌신하다가 1985년 2월 16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한다.

                      2. 독학으로 한국학과 한의학에 정통함 

  그는 10여 세에 한시를 지었을 만큼 총명했으나 집안이 가난해 정규교육은 초등교육 밖에 받지 못했지만, 부친인 심재(審齋) 선생이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독학으로 한의학과 문학에 정진하여 박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문장력이 뛰어나 시도 수십 편을 창작했고, 역사학에도 관심이 많아 동양사와 한국사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3.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기초

  기미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탑골)공원에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하여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퍼져나가자 그의 가슴 속에는 항일 애국심이 활활 불타올랐다.

  그리하여 그는 천직인 오송보통학교 교사직마저 미련 없이 사직하고 고향인 성남면 석곡리 목골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면서 성남면의 유림(儒林) 대표로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먼저 동지들의 의견을 모아 종합적인 거사계획을 세우고, 유관순(柳寬順) 열사가 서울에서 은밀히 몸에 숨겨 가지고 온 파고다(탑골)공원에서 선언된 독립선언서가 어려운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 난해하고 너무 길어 지루하므로, 그것을 참고해 308자의 쉬운 한글로  기록된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를 구국동지회 명의로 초안하고 미농지(美濃紙)에 철야 복사해 배포했다.

  그리고 그는 김구응(金球應), 조인원(趙仁元), 유중무(柳重武), 김교선(金敎善), 한동규(韓童圭), 이순구(李旬求), 유관순(柳寬順) 등과 함께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항일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 특히 그는 혈기왕성하고 애국심이 강한 유관순 열사를 잘 지도해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나, 결국은 일제에 검거되어 1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4. 해방 후 충주중과 청주고에서 많은 훌륭한 제자 양성     

  해방 직후 그는 교사로 초빙을 받아 초등교육계와 중등교육계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하면서 항일독립사상 고취는 물론 주체의식 함양에 진력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충북의 명문교인 충주중, 청주고, 청주여중에서 15년 동안 재직하면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다고 한다. 

  충주중 재직 시에는 문학평론가 유종호(柳宗鎬, 80세)씨와 17대 충주시장과 충북 부지사를 역임한 홍순기(洪舜基, 86세)씨 등을 양성했고, 청주고 재직 시에는 내무장관과 국회 부의장을 역임한 김종호(金宗鎬, 81세)씨?농수산부장관과 정무장관을 역임한 정종택(鄭宗澤, 81세)씨 등을 양성했다고 한다.

  그는 1949년 6월 20일부터 1961년 2월 말까지 무려 12년간 청주고에 재직한 적이 있는데, 애교심이 남달리 강해 청주고 교가를 직접 작사하고, 한국전쟁 때에는 피난도 가지 않고 홀로 남아 학교를 안전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수업준비를 철저히 하여 학생들의 수준에 알맞은 수업을 하는가 하면, 국어와 한문 담당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어 학생들로부터 인격이 높고 실력이 있는 훌륭한 교사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그는 틈나는 대로 자기의 항일독립운동 체험담을 유관순(柳寬順) 열사와 관련시켜 들려주고, 독립선언서를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또한 그는 1955년 2월 7일에 중학교 교감 자격증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 평교사로 정년퇴임을 하고,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촌지나 선물을 절대로 받지 않았는가 하면, 내신 성적 조작을 홀로 거부한 것 등으로 미루어 보아 올바른 교육자의 길을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그는 다년 간 국어와 한문 교사로 재직해서 그런지 평소에 말을 아껴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살아 실수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자기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면서 규칙적인 생활과 청결과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여 타에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불심이 강해 팔만대장경을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불경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청주시 상당구 수동의 우암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용화사의 법회에 참여하여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설법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가끔 청주고 동문들이 모이면 이백하 선생에 얽힌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학창시절의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고 한다.

  아무튼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 선생은 명문대가에서 태어나 일평생 항일독립만세운동과 초?중등교육에 헌신하다가 1985년에 87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그의 유해는 지금 대전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특히 그는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면서 구국동지회 명의로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배포하여 3.1독립만세운동의 지역화(localization)를 기하여 우리나라의 항일독립운동사에서 불후의 업적을 남김으로써 1990.12.26일에 국민훈장 애족장 제1862호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5. 아우내 장터에 이백하 선생 동상 건립해야

  포암 이백하 선생은 일평생 조부인 오당(堂) 이상수(李象秀) 선생을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s)로 인식하고 살았는데, 그의 재주와 업적이 오당 선생에 미치지 못함을 늘 아쉬워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포암 이백하 선생은 상기한 바와 같이 암울했던 일제시대에는 오송보통학교에 근무하다가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해방 후에는 충북의 충주중?청주고?청주여중 등 중등 교육계에서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여 우리 조국이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거쳐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여 걸출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화여대와 연세대에서 석좌교수를 역임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柳宗鎬,72세) 교수는 자기 저서인 ?나의 해방 전후?(민음사,2004.8)에서 충주중학교 1학년 재학 때 은사였던 이백하 선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고 한다.

  “이백하 선생은 인품으로나 실력으로나 단연 돋보이는 교사였다. 서당에서의 한문 수학이 유일한 학력이란 점도 이채로웠다. 독립운동의 전력 탓도 있었겠지만 선생은 우리 말과 역사를 기회있을 때마다 열의 있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는 또 지난 1985년 2월 16일 이백하 선생이 노환으로 87세를 일기로 별세하자 충청일보의 글 청탁을 받고 다음과 같이 추도사를 써 주었다고 한다.

  “이백하 선생의 작고에서 나는 한 시대의 종언을 느꼈다. 좋았던 옛날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황량한 세월이었으되 선생같은 분이 계심으로 해서 그리움의 녹지를 간직하고 있는 한 시대의 종언을”

  이처럼 포암 이백하 선생은 충청지역의 항일독립운동과 중등 교육계에서 많은 업적을 남김으로써 제자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고 있는 애국지사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던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고,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해, 그가 한국의 항일독립운동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므로 천안시가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92주년을 계기로 하여 전국적으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운동’을 전개하고,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동원해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히는 한편, 2008년 5월부터 2009년 9월까지 천안시 병천면 병찬리 288번지 일원에 4,430m2 규모로 조성해 놓은 아우내 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에 이백하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고, 그가 기초한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전문을 새겨 놓은 비석을 세움으로써 우리 후손들이 그분의 항일독립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암 이백하 선생이 기초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전문>

    2천만의 민족이 있고 3천리의 강토가 있고 5천년의 역사와 언어가

 뚜렷한 우리는 민족자결주의를 기다리지 않고 원래 독립국임을 선포하

 노라.

   민족의 대표 33인이 선봉이 되었으니 13도 2천만 민중은 뒤를 이어

 때를 잃지 말고 궐기하라. 분투하라. 인도 정의의  두 주먹으로 잔인

 무도한 일본의 총칼을 부수라.

   정의의 칼날 앞에는 간악한 창과 방패가 굴복할 것이다.

   하늘은 의로운 무리를 도울 것이며 귀신은 반드시 극악무도한 자를 멸할 것이니 동포여 염려할 것 없고 주저할 것 없이 오늘 정오를 기하여 병천시장에 번득이는 태극기를 따르라. 모이라. 잃었던 국토를 다시 찾자. 기회를 놓지면 모든 복도 가느니 두 주먹을 힘차게 쥐고 화   살같이 모이라.

   반만년의 문화민족이 노예시 야만시 하는 일본의 굴욕을 감수할 것이랴.

                                            기미년 4월 1일

                                        구국동지회 대표


                                          <필자 약력>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4개월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아우내 단오축제』,『흔들리는 영상』(공저시집, 1993),『저 달 속에 슬픔이 있을 줄야』(공저시집, 1997)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홍양호 선생의 생애와 업적”, “대전시 상여제조업의 현황과 과제”, “천안지역 상여제조업체의 현황과 과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조건 심층탐구” 등 65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통일문학상(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대전 <시도(詩圖)> 동인,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 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보문산세계평화탑유지보수추진위원회 홍보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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