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경성형무소(마포 공덕리)에서 감옥생활을 한 당싣죄수ㅡ(애국지사 항일독립투사) 거의 죽거나 병들고 맞아죽거나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경성형무소 들어오면 살아 나가기 어렵다고 한말이 진실이였답니다. 젊은나이에 일제의 모진 탄압과 고문에도 굴하지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고 죽어겄던 역사의 장소이자 현장입니다.그런데도 아직도 거증자료 부족이라는 명분으로 명에가 묻혀가고 있거나 잃어버린 애국이 되어가고 있어 가슴아픕니다. 당시 민족의 암흑기에 아무나 독립ㅈ운동하ㅣ겠다고 나선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내놓고 가족을 등지고 나섰던 용기있는 행동이자 애국입니다.
일제강점기 악명높던 마포 공덕리 경성형무소 모습
마포 공덕리 105번지 경성형무소
이곳에 민족혼이 서려있고 민족독립의 성지이다. 이고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독립투사분들이 일제에 항거 모진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시다 복숨을 잃은 역사의 현장이다.
일제강점기 악면높던 마포 공덕리 경성형무소 모습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일제의 모진 고문과 탄압에 목숨을 잃고 그 공적이나 명예가 잊혀지거나 역사속에 잃어버린 애국이 되어가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제 이곳을 바로세워 경성형무소역사관을 건립하여 후세들에게 일본의 만행과 고문탄압을 보여주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산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이곳에서 증조부 (정용선선생) 1928년5월20일 오후3시15분 옥사
이곳이 일제강점기 악명높은 경성형무소(경성감옥)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서대문형무소가 경성형무소라고 말하는 학자나 기자들은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곳 경성형무소(마포 공덕리)에서 감옥생활을 한 당싣죄수ㅡ(애국지사 항일독립투사) 거의 죽거나 병들고 맞아죽거나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경성형무소 들어오면 살아 나가기 어렵다고 한말이 진실이였답니다. 젊은나이에 일제의 모진 탄압과 고문에도 굴하지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고 죽어겄던 역사의 장소이자 현장입니다.그런데도 아직도 거증자료 부족이라는 명분으로 명에가 묻혀가고 있거나 잃어버린 애국이 되어가고 있어 가슴아픕니다. 당시 민족의 암흑기에 아무나 독립ㅈ운동하ㅣ겠다고 나선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내놓고 가족을 등지고 나섰던 용기있는 행동이자 애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