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호락논쟁의 역사적 의의와 창조적 계승 방안 글쓴이 localhi 날짜 2012.12.01 18:45
 

                 호락논쟁의 역사적 의의와 창조적 계승 방안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신상구                     

                                1. 호서학파의 계보

 조선시대 성리학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년)과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을 대표로 하는 영남학파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년)를 대표로 하는 호서학파의 사림들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경기와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호서학파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로 이어지면서 정통 성리학을 충실히 계승·발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2. 외암 이간의 생애와 업적

  숙종 3년인 1677년에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서 부호군 태형(泰亨)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 또는 추월헌(秋月軒)이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며,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이다.

   31세 되던 해에 관선재(觀善齋)를 건립하고 윤혼(尹?)과 도학을 강론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숙종 36인 1710년에 순무사 이만성(李晩成)에 의하여 장릉참봉(莊陵參奉)으로 천거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716년 다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자의가 되었는데, 이 때 그의 나이가 적은데도 계급이 뛰어오름을 논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717년 종부시정을 제수받았고, 영조 1년인 1725년에 회덕현감·경연관을 거쳐 충청도 도사 겸 해운관·익위사익위를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특히 외암 이간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서 학문과 예술에 정진하여 문장에 조예가 깊고 서예를 잘 그렸다.

  저서로는 『외암유고(巍巖遺稿)』와『미발변(未發辯〉』등이 있는데, 홍성 출신의 남당 한원진과 호락논쟁을 벌여 조선 성리학사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다.

  영조 3년인 1727년에 51세를 일기로 타계하여 향리인 외암 마을 오른쪽 산기슭에 묻혔다. 

  정조 1년인 1777년에 이조참판·성균관좨주에 추증되고, 순조 때 이조판서가 증직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고, 온양의 외암서원(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현재 외암 마을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외암 마을 안쪽에는 외암 이간의 뜻과 학문적 유업을 기리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외암 이간 선생이 사망한 음력 3월 14일에 불천위제사를 지내고 있다.

  한편 권선재에는 이간의 둘째아들인 이병(?炳)이 영천군수로 재임하였을 때 아버지의 유서(遺書)를 판각한 문집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3. 호락논쟁의 역사적 의의

  조선 후기 성리학이 발전하면서 18세기 초에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에 대한 동질 여부에 대하여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 논쟁은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인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인간과 동물 혹은 식물의 본성이 같다고 주장하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과 근본적으로 서로의 본성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으로 나뉘었다.

  인물성동론의 대표 주자는 주리론을 신봉한 이간(李柬)이고, 인물성이론의 대표 주자는 주기론을 신봉한 한원진(韓元震)이다. 이재(李縡)·박필주(朴弼周)·어유봉(魚有鳳) 등 인물성동론을 주장하는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서울 지방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낙학(洛學) 또는 낙론(洛論)이라 하였고, 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기정진(奇正鎭)?윤봉구(尹鳳九)·최징후(崔徵厚)·채지홍(蔡之洪) 등 인물성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충청도지방에 살고 있어 호학(湖學) 또는 호론(湖論)이라고 칭하였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벌어진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논쟁을 호락논쟁이라고 한다.

  호락논쟁의 쟁점은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동이(同異)와 미발심체(未發心體)의 선악(善惡) 두 가지로 집약된다.

  호락논쟁은 현실 사회의 실용적인 논쟁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인성과 물성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간의 주체성과 도덕의식을 함양하는데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그리고 호락논쟁은 18세기 초 수도권과 충청권 지식인 사회를 뜨겁게 달구면서 조선 전역으로 확산되는 바람에 16세기에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사이에 격렬하게 벌어졌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함께 조선 성리학계의 최대 논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4. 외암 이간의 인물성동론의 영향

  고려대 철학과 윤사순 교수는 온양문화원에서 2008년 11월에 발간한『외암유고((巍巖遺稿)』 역주본인『외암 이간의 철학과 삶』에서 외암 이간의 자연친화적인 인물성동론은 병자호란 이후 오랑캐로 인식되어 북벌의 대상이 되었던 청나라에 대한 융화책의 근거가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차별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인권(人權)을 신장시킬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외암사상연구소장인 이원직 선생은 외암의 인물성동론(人物性同異論)과 미발심체순선론(未發心體純善論)은 한양 노론의 근본사상으로 발전하고, 후일 담원(湛軒) 홍대용(洪大容),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등 북학파로 전해져 전통적인 화이론 극복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대 철학과 이승환 교수는 외암 이암의 인물성동론은 영조(英祖)의 탕평책(蕩平策)에 영향을 주고 조선시대 유학사상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했다고 한다.   

                         5. 호락논쟁의 창조적 계승 방안

  아산시가 앞으로 호락논쟁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난 2012년 10월

19일에 홍성 소재의 청운대학교가 남당학연구소를 개설한 것을 계기로 하여 아산 소재의 순천향대학교가 이간학연구소를 개설해 경쟁적으로 남당 한원진과 외암 이간을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조사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청운대학교와 순천향대학교에 호락논쟁 동아리를 만들어 호락논쟁을 진지하게 재현하여 호락논쟁의 역사적 의의를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 또한 아산 유림들이 외암사상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홍성 유림들과 서로 교류하면서 호락논쟁을 보다 창조적으로 깊이 있게 벌여 호서유학을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향토사학자?시인?칼럼니스트)

.1950년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63번지 담안 출생

.백봉초, 청천중, 청주고, 청주대학 상학부 경제학과를 거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사회교육과에서 “한국 인플레이션 연구(A study of Korean inflation, 1980)”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UBE) 국학과에서 “태안지역 무속문화 연구(A study of shamanic culture in Taean, 2011)"로 국학박사학위 취득

.한국상업은행에 잠시 근무하다가 교직으로 전직하여 충남의 중등교육계에서 35년 동안 수많은 제자 양성

.주요 저서 : <대천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아우내 단오축제> 등 4권

.주요 논문 : “천안시 토지이용계획 고찰”, “천안 연극의 역사적 고찰”, “천안시 문화예술의 현황과 활성화 방안”, “항일독립투사 조인원과 이백하 선생의 생애와 업적”, “한국 여성교육의 기수 임숙재 여사의 생애와 업적”, “민속학자 남강 김태곤 선생의 생애와 업적”, “태안지역 무속문화의 현장조사 연구”, “태안승언리상여 소고”, “실학자 홍양호의 생애와 업적” 등 50편

.수상 실적 : 천안교육장상, 충남교육감상 2회, 충남도지사상, 국사편찬위원장상, 한국학중앙연구원장상, 자연보호협의회장상 2회, 교육부장관상, <문학 21> 신인작품상, 국무총리상, 홍조근정훈장 등 다수

.한국지역개발학회 회원, 천안향토문화연구회 회원, 천안교육사 집필위원, 태안군지 집필위원, 천안개국기념관유치위원회 홍보위원, 대전문화역사진흥회 이사 겸 충청문화역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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