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바로 우봉 임강빈 시인 서거 4주년을 맞아 그의 시비 제막식이 열린 것이다. 평소 그를 따르던 후배 문인들과 가족, 친지 100여 명이 모여 고인의 시 정신을 기리고, 추모의 정을 나눴다.

  임강빈 시인은 충청권이 배출한 걸출한 문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31년 공주시 반포면 봉암리에서 출생해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대전신흥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56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그는 문학성 높은 서정시를 꾸준히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중부권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힌 그는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사는 시를 발표했다. 절제하는 삶,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선비정신으로 올곧은 삶을 산 그는 85세를 일기로 2016년 영면했는데, 생전 20여 권의 시집·시선집 등을 간행했다. 생전에도 이미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전국에 걸쳐 몇 군데 시비가 세워졌을 만큼 시인으로서의 문명(文名)을 널리 떨치며 요산문학상, 충남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시비는 생전 교분이 두터웠던 최종태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가 제작했다.

  최 교수는 “시인의 인품과 시 세계가 소박하고 고요하고 단정하며 ‘고귀한 단순’으로 보였다. 그것을 상징하기 위해 가장 한국적인 화강석을 취재키로 했고, 돌의 물질성을 극대하게 살리면서 시인의 이미지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형상화했다”고 제작 취지를 밝히는 등 품격 있는 시와 탁월한 조각이 조화를 이룬 시비가 돋보였다.

  필자는 임강빈 시인과 사제 간의 연이 닿아 학생 시절부터 존경하는 스승으로 모셔 왔기에 더욱 시비 제막식에 참석한 감회가 깊었다. 필자는 시비 건립을 계기로 시공을 초월하는 임강빈의 향기 나는 시가 앞으로 독자들에게 더 읽혀지고, 공감대를 높여주길 바란다. 또 후배 문인들에게 그의 시 정신이 계승돼 문화 융성에 크게 이바지하길 간절히 빈다. 그런 마음으로 시비에 새겨진 시 ‘마을’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옹기종기 / 노랗게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 기웃거리지 마라 / 곧게 자라라 / 가볍게 / 더 가벼워져라 / 서로가 다독거리며 사는 / 민들레라는 따스한 마을이 있다

   차제에 임강빈 시비가 세워지기까지의 속사정을 밝히고자 한다. 제작비 3000만 원은 대부분 유족이 쾌척해 일시에 해결됐다. 또 그를 따르던 후배 문인들과 제자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조금씩 보탰다. 그 과정이 참 아름다웠다. 시비를 세울 부지 확보는 대전시의 허가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도시공원 관리에 관계되는 법령에 가로 막혀 거의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황희순 시인 등 후배 문인들의 힘을 모아 가까스로 해낼 수 있었다.

  임강빈 시인의 시비가 사정공원에 세워져 독자들은 그의 시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며, 시민들의 정서 함양은 물론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임강빈 시인은 한 시대를 이끌어간 훌륭한 시인이었으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될 시인이다. 한용운, 김관식, 박용래 시비도 함께 만날 수 있는 그 사정공원에서 임강빈 시인의 시비가 건립됐음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과 함께 그의 시 정신을 기리고 싶은 뜻에서 필자는 이 글을 쓰고 있다.

  대전 문단을 포함해 한국 문단 전체를 통해 더러는 문학을 창작하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문단 정치를 하는 흠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럴수록 임강빈 시인의 삶과 시 정신이 돋보이는 것만 같아 사정공원 쪽 그의 시비를 향해 삼가 머리가 숙여진다.

                                                                                            <참고문헌>

    1. 김영훈, "우봉 임강빈 시비(詩碑) 제막식을 다녀와 쓰는 편지", 금강일보,  2020.8.19일자.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