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에게 외투를 나눠주는 마르탱 성인 - 헝가리 출신의 마르탱은 로마 군인이 되어 프랑스의 아미앵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벌거벗고 덜덜 떠는 걸인을 본 마르탱은 군복 외투의 반을 잘라 걸인에게 주었다. 고대와 중세 종교는 빈(貧)을 긍정적 가치로, 부(富)는 부정적 가치로 봤다. 투르의 마르탱(316~397) 성인의 일화를 성화로 표현한 엘 그레코의 작품. 외투 일부를 건네는 마르탱이 걸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위키피디아
빈민에게 외투를 나눠주는 마르탱 성인 - 헝가리 출신의 마르탱은 로마 군인이 되어 프랑스의 아미앵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벌거벗고 덜덜 떠는 걸인을 본 마르탱은 군복 외투의 반을 잘라 걸인에게 주었다. 고대와 중세 종교는 빈(貧)을 긍정적 가치로, 부(富)는 부정적 가치로 봤다. 투르의 마르탱(316~397) 성인의 일화를 성화로 표현한 엘 그레코의 작품. 외투 일부를 건네는 마르탱이 걸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위키피디아   

                       


                                           부(富)와 빈(貧). 이 중 어느 것이 더 높은 가치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빈보다 부를 높이 칠 테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빈이 긍정적 가치, 더 나아가서 신성한 가치이고, 부는 지극히 부정적 가치였다.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는 반면 빈민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라는 위로를 받았다. 예수와 성인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같이 가난한 걸인들이었다. 투르의 마르탱 성인(316~397)의 일화를 보자. 헝가리 출신의 마르탱은 로마 군인이 되어 프랑스의 아미앵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벌거벗고 덜덜 떠는 걸인을 본 마르탱은 군복 외투의 반을 잘라 걸인에게 주었다. 그날 밤 꿈에 예수가 나타나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라, 마르탱이 나에게 이 옷을 입혀주었노라.

    대저 고대와 중세 종교는 빈의 종교다. 교회는 부자들에게 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가르쳤다. 돈을 버는 행위는 위험한 일이다. 10세기 말, 어느 수도사가 신학자 페트루스 다미아누스에게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지 물었을 때 그의 답은 “무엇보다 먼저 돈을 버려라” 하는 것이었다. “돈에 대한 사랑이 모든 악의 근원”(디모데전서 6:10)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태도가 지속되었다면 근대 사회는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상인, 금융업자, 기업인 등이 모두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으리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자본주의가 발전하겠는가. 가난한 걸인이 찬양받는다면 어떻게 노동계급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 분명 중세 말과 근대 초 사이에 부와 빈을 보는 시각, 인간과 재물 간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어떤 과정을 거쳐 청빈이 이상인 사회에서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사회로 진화해 갔을까?

   우선 빈민과 걸인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 갔다. 성스러운 빈곤이란 단지 영적인 덕목일 뿐, 현실의 빈민들은 경멸을 피하지 못했다. 사지가 멀쩡한데 일하지 않고 노는 ‘사악한 빈민’들은 결코 성스럽지 않으니, 이런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면 받은 사람뿐 아니라 베푼 사람도 죄인이 된다. 몸이 성치 않아 일하기 힘든 ‘정직한 빈민’만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다. 부자들은 이처럼 선별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죄를 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선은 죄를 씻어주는 수단이 되었다. 빈민은 물질적 도움을 받고, 부자는 자선을 통해 죄를 갚는 일종의 계약 행위인 셈이다. 이렇게 하여 부자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부를 추구하는 행위가 정당하다는 신학적 해석이 필요하다. 상인들이 어떤 물품을 원래 가치보다 더 비싸게 파는 것이 합당한가? 아퀴나스는 이렇게 답한다. ‘정당한 가격(just price)’보다 비싸게 파는 것은 전적으로 죄에 해당한다. 이웃을 속여 해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 원칙을 곧이곧대로 적용한다면 이 세상에 상인은 아예 존립할 수 없다. 물건을 산 가격 그대로 되팔기만 할 뿐, 이윤을 남기면 이웃을 해치는 죄인이 된다고 하면 도대체 누가 장사를 하려 하겠는가?

   그렇지만 아퀴나스는 곧이어 상인들에 대한 비난을 완화하는 논리를 제시한다. 우선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작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상인이 왜 그런 수고를 하겠는가. 또 자기 나라에 필요한 물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창출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도 합당하다.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웃 나라에서 곡물을 들여오는 사람이 어떻게 죄인인가? 결국 아퀴나스는 원론적으로는 이윤을 남기는 상업 행위가 죄라고 선언했지만, 각론에 들어가서는 상업 행위가 ‘효용’을 지니며 공공선에 이바지하므로 상인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그에 따르면 부에 대한 모든 욕망이 죄가 되는 게 아니라 부에 대한 ‘부적절한’ 욕망이 죄가 된다. 다시 말해 합당한 정도의 욕망은 지옥에 떨어질 죄악이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돈을 빌리려면 살을 담보로 내야 한다고 요구한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고리대금업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돈을 빌리려면 살을 담보로 내야 한다고 요구한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고리대금업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상품 거래보다 훨씬 정당화하기 어려운 것은 고리대금업, 오늘날로 치면 금융업이다. 고리대금을 비난하는 대표적인 논리는 돈 자체가 생산력이 없다는 것이다. 돈은 돈을 낳지 않는다(Nummus non parit nummos). 그런데 무슨 근거로 돈을 빌려준 다음 이자를 받는가? 고리대금업자가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결국 시간적 여유를 갖도록 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준 시점과 이자를 붙여서 되돌려 받는 시점 사이에 시간이 흘러간 점 말고는 돈놀이꾼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결국 고리대금업자는 시간을 팔아먹은 셈이다.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한 시간을 팔아먹은 고리대금업자는 하느님의 재산을 훔친 것이다. 그렇기에 개념적으로 고리대금업자는 도둑이다.

   만일 이런 논리가 극단적으로 적용되면 금융업이라는 게 발전할 수 없다. 이자를 부정하고 그 결과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가 망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럴 때 다시 신학자의 정당화가 필요하다. 아퀴나스는 우선 대금업이 적법하지는 않으나 실제로는 유용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한다. 다만 이자 수취가 과하지 않아야 한다. 중세 유럽 각국에서는 대체로 연 33.5%가 허용된 최대치다. 이 이하의 이자율을 적용하는 경우 최소한 고리대금업자라는 오명은 면한다. 그렇다 해도 어쨌든 이자를 받으면 하느님의 시간을 훔쳐 팔아먹는 죄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자를 받는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정당성이 필요하다.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는 몇 가지 근거를 댄다. 빌려준 돈으로 더 유리한 투자를 했을 때 벌어들일 수 있었던 합법적인 이득을 포기했다는 점(lucrum cessans, 곧 기회비용을 가리킨다), 빌려준 돈은 과거에 힘들게 번 결과물이므로 이자는 그때의 노동에 대한 보수라는 점(stipendium laboris), 위험을 안고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는 복잡한 계산을 하는 행위가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이라는 점(ratio incertitudinis)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렇게 해서 고리대금업자까지도 구원의 길이 열렸으니, 부의 추구는 확실한 승인을 받았다.

   신학자의 해석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다. 근대 초 경제 성장 과정에서 부자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빈민은 더 심한 가난에 몰렸다. 고향에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유랑민이 되어 도시로 몰려왔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사회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빈자와 걸인은 하느님이 보낸 사자’라는 식의 고상한 담론은 설 자리가 없어졌고, 반대로 부는 정당화되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장기적 흐름의 정점에 우리가 서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 17국 시민을 대상으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어본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는 뜻밖이다. 다른 나라들은 대개 ‘가족’과 ‘직업’을 먼저 꼽은 반면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K낙타’는 능히 바늘귀를 뚫고 천국에 오를 기세다.

    이제 와서 중세에 그러했듯 가난을 신성한 가치로 높이 칠 수는 없다. 프루동(프랑스의 무정부주의 사상가)처럼 ‘모든 재산은 도둑질한 물건’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리에 안 맞아 보인다. 차라리 당당하고 깨끗한 경제적 노력을 인정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을 내미는 자세를 갖도록 방향을 잡아가는 게 온당해 보인다.

                                                      [근대 서구, 빈민을 억압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선 빈민과 유랑민들 구금… 강제로 중노동시켜

   ‘신성한 가난’이라는 종교적 이념을 벗어던진 후 근대 서구 사회는 빈민들에 대해 가혹한 태도를 취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는 빈민과 유랑민들을 구금하여 노역을 시키는 라습하위스(rasphuis)라는 기관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재소자들에게 브라질나무(brazilwood)를 대패로 깎는 일을 시켰다. 선명한 붉은색 염료의 재료가 되는 이 나무는 재질이 너무 단단해서 대패질이 극심한 중노동이므로 누구도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빈민들에게 이 일이 돌아갔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대패질을 하도록 시킨 다음 저녁에 결과물의 양을 재서 기준량을 채운 사람에게는 식사를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식사량을 줄이든지 아예 굶겼다. 붉은 먼지가 몸에 붙어 마치 온몸에서 피가 나오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재소자들은 오직 저녁 한 끼 얻어먹기 위해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해야 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수용소 ‘라습하위스’에서는 빈민과 유랑민들이 브라질나무(brazilwood)를 대패로 깎는 일을 비롯해 각종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위키피디아
17세기 네덜란드의 수용소 ‘라습하위스’에서는 빈민과 유랑민들이 브라질나무(brazilwood)를 대패로 깎는 일을 비롯해 각종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위키피디아


 

  이런 기관에서 교정이 안 되는 빈민은 물이 차오르는 지하 감옥으로 보냈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간단한 펌프 하나를 주어서, 익사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야 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다시 일어나 펌프를 움직여야 한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었으니 노동의 소중함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이 감옥의 명분이었다. 근대 초입에 빈민은 성인은커녕 구금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종의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