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본소득, 복지효과 낮아 글쓴이 신상구 날짜 2021.02.11 02:12

                                                                                    기본소득, 복지효과 낮아

   최근 여론조사에서 기본 복지 시리즈로 무장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이재명식 기본소득에 대해 여권 경쟁자인 여당 대표와 총리가 포퓰리즘이라 공박하는 한편, 오히려 보수 야당들이 기본소득을 만지작거리면서 대선 가도의 핵심 이슈로 부상 중이다. 코로나로 민생이 휘청거린 지난 총선 과정, 여당이 전격 지급한 전 국민 재난소득이 ‘약발'을 받았다는 분석 끝에 벌어지는 한 편의 촌극이다. 이런 분석은 실체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최근 들어 반대에서 찬성으로 역전된 형국이다. 총선 이후 재정 문제를 이유로 선별 지급으로 돌아섰던 여당이 4월 재보선을 앞두고는 다시금 보편 지급을 기획 중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선거철, 전 국민 현금 지급이 우리네 선거판의 승리 공식이 된 듯하다.

높아지는 기본소득 찬성 비율 / 현금복지 대 서비스복지 비율 변화. 그래픽=백형선
                                               높아지는 기본소득 찬성 비율 / 현금복지 대 서비스복지 비율 변화. 그래픽=백형선

   기본소득의 유행이 뜬금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사실 그 뒤에는 무시 못 할 상황적 요인이 자리한다.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한국은 여전히 ‘작은’ 복지국가다. 국내총생산 기준 OECD 국가들의 복지 지출 평균값이 20%를 훌쩍 넘는 데 비해 한국은 고작 10%에 불과한 나라다. 선진형 경제로 바뀐 이후 고도성장의 불은 꺼져버렸고, 시장에서의 자유만으로는 불평등과 양극화의 해결이 요원하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민생고와 사각지대의 약자들을 보호할 처방전이 부족한 대한민국. 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의 현금 복지가 지니는 정치적 휘발성은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1. 현금 지급이 선거 승리 공식?

   현대 복지국가(welfare state)는 양차 대전 직후 전쟁국가(warfare state)와 파시즘에 대한 반성 속에서 탄생하였다.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는 공산주의 독재에 대비되는 자본주의의 민주적 구원투수로서 자본 진영의 우월한 정당성을 견인하였다. 시장경제를 통한 성장에 더불어 불평등의 시장 실패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교정해낸 자본주의의 승리는 복지국가의 현명한 활용법에 관한 역사적 증거 사례다.

   글로벌 경쟁과 저출산 고령화로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 복지국가는 새천년 전후로 위기에 봉착한다. 복지 확대의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서도 약자를 위한 복지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는 데 민주 정치가 효과적일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갑론을박이 존재한다. 버클리대 폴 피어슨 교수는 필요한 복지 개혁을 완수하지 못하는 ‘정치 실패’의 경향성을 ‘생색내기(credit-claiming)’와 ‘비난 회피(blame avoidance)’로 설명한다. 선거 승리와 집권에 목매는 정치인들은 현금 복지의 달콤한 공약은 선점하려 들지만, 정작 복지에 필요한 증세나 복지 삭감의 공약은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 피어슨 교수의 분석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모 아니면 도’가 결정되는, 이른바 ‘다수제’ 민주주의의 폐해다.

   한편, ‘합의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몇몇 나라들에서는 복지국가의 합리적 전략 창출에 성공한 경우가 없지 않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이 복지국가에 관한 책임정치를 구현한 좌파 정치가들의 리더십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상적 모델로 추켜세우는 복지국가 스웨덴. 재정 위기의 목전에서 자유주의 연금 개혁을 누구보다 먼저 이뤄낸 주축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민당이었다. 현금 복지 줄이기에 대한 노조와 노인들의 반대는 간병 등 노인 돌봄 서비스를 강화하고 그를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방책으로 무마할 수 있었다.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가 이끈 ‘하르츠 개혁’도 현금 복지를 줄이고 서비스 복지를 통해 고용을 창출해낸 좌파 주도의 성공 스토리다. 장기적인 국가 발전의 청사진 속에 방만한 복지국가를 고쳐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좌파의 결단. 그들이 주도했던 국민 설득과 합의의 정치는 이후 좌파 정당의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파마저 칭송하는 ‘장엄한 성공’으로 역사에 남았다.

                              2. 유럽선 좌파 정권이 방만한 복지 ‘대수술'

   좌·우파 교차 집권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 현금 복지 늘리기 끝에 침몰한 남유럽 나라들(PIGS)은 정반대의 반면교사다. 국가부도 사태의 홍역을 치른 후에도 이들 나라의 현금 복지는 늘어가고 있다. 2010년 대비 2017년 한국의 복지 구성도 현금 복지가 39%에서 41%로 증가했고, 문재인 정부 시기 소득 주도 성장의 이름으로 확대되는 각종 현금 급여를 포함하면 그 비중은 오늘도 확대 중이다.

   개혁에 성공한 선진 복지국가의 요체는 두 가지다. 첫째, 복지의 사회투자에 힘써서 고용을 통한 성장 친화성을 확보했다. 선거에서 인기가 좋은 현금 복지가 아니라 고용 유발 효과가 높고 취약 계층의 일자리로 기능하는 보육이나 간병 등 서비스 복지를 확대해야 할 이유다. 둘째, 복지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직성과 공정성을 견지했다. 증세 없는 복지, 빚내서 하는 복지를 넘어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있는 국민 설득과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이유다.

   현금 복지의 대표 격인 기본소득은 성공한 복지국가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엄청난 재정 투입에 비해 사회적 약자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효과가 떨어지는, 이른바 표적 효율이 낮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예산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더 좋은 복지 정책이 많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4차산업발(發) 노동시장 일자리 감소의 대응책으로서 현금 복지 대비 서비스 복지가 효과적이란 증거 또한 한둘이 아니다.

   한국형 복지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지금, 재원은 나 몰라라 하고 기본소득을 필두로 한 단편적인 현금 복지에만 매달려서는 일을 그르칠 공산이 크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지속 가능한 복지 시스템의 재구조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차세대의 행복은 없다. 정치인들이 책무성을 깨닫고 백 년짜리 복지 전략에 관한 합의를 이뤄야 할 오늘, 다수제의 극한 대립에 익숙한 정치판 잠룡들에게 정답을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남은 것은 깨어있는 대중의 힘이다. 자본주의의 공정한 성장과 합리적인 복지 전략에 관한 국민적 학습과 시민의 선택이 중요한 순간이다.

                                                                                        <참고문헌>

    1. 안상훈, "기본소득, 막대한 재정 들지만 복지 효과는 낮아", 조선일보, 2021.2.10일자.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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